뉴욕 야경과 석양을 보러 떠나다

맨해튼 배터리 파크 &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항상 무료)

by 김지수

2020년 10월 9일 금요일


IMG_1768.jpg?type=w966 맨해튼 야경


매일 황홀한 석양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해는 뜨고 지는데 매일 석양을 보러 가긴 어려운 현실. 코로나로 암담하고 답답하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요즘은 전과 달리 공연과 전시회와 축제 이벤트도 드물어서 모처럼 힘내어 석양을 보기 위해 전망 좋은 맨해튼 배터리 파크에 도착해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해가 지는 시각을 기다렸다. 야생화 꽃 향기 맡으며 새들의 노랫소리 들으며 아름다운 허드슨 강 전망 보는 시간은 행복하다. 딸은 일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볼링 그린 역(지하철 익스프레스 4/5호선)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맨해튼 배터리 파크 석양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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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740.jpg?type=w966 맨해튼 배터리 파크에서 석양을 바라보다. 구글에 6시 21분 석양이 진다고 나왔지만 실제 더 빨리 지더라.


원래 우리 계획은 석양이 질 무렵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를 타려고 했는데 딸이 일을 마치고 플러싱에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오는데 시간이 꽤 걸려 만약 페리를 타면 이미 해가 질 거 같아서 배터리 파크에서 만나기로 했다. 배터리 파크에 이민자들의 절규하는 모습이 새겨진 이민 조각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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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750.jpg?type=w966 맨해튼 배터리 파크 석양이 질 무렵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으니 모든 게 낯설기만 했고 배터리 파크를 알게 된 것은 아들이 대학에 입학해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배터리 파크에서 만나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갈 예정이라고 하는데 어디에 배터리 파크가 있는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는데 세월이 흘러가니 이젠 맨해튼이 아주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가 문을 열 수 없는 공간들이 너무나 많다. 맨해튼 빌딩은 낯선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신분증 없이 통과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처음 뉴욕에 와서 놀랐던 부분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까 아들 덕분에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배터리 파크 볼링 그린 역에 도착했는데 아침 무렵 전망도 무척이나 아름다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허드슨 강도 예쁘고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곳에 안개 가득하니 그림이 되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배터리 파크에서 매년 여름 8월 중순 무렵 댄스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터넷으로 관람할 수 있었지만 허드슨 강에서 석양이 질 무렵 열리는 댄스 축제와 비교할 수가 없다.


뉴욕에서 석양을 볼 수 있는 명소로 유명한 곳이 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에서, 브루클린 덤보에서 맨해튼 시티로 향해 브루클린 다리를 걸을 때, 배터리 파크, 센트럴 파크 저수지 등등.


플러싱에 살면서도 거의 매일 맨해튼에 나들이를 갔지만 황홀한 석양이 지는 모습은 자주 보지 못했다고 아들에게 말하니 놀라서 난 웃었다. 수년 동안 거의 매일 맨해튼 나들이하면서 수많은 축제와 공연과 이벤트를 봤지만 아름다운 석양은 몇 번을 봤는지 기억이 흐리다. 아들은 엄마가 자연을 사랑하는데 왜 석양을 자주 보지 않았는지 의문이 갔던 모양이다.


며칠 전에도 딸과 함께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려고 브루클린 덤보에서 브루클린 다리로 들어가 맨해튼을 향해 걸었지만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가을날보다 여름날 석양이 장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러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를 타기로 했다. 브루클린 다리보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 야경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코로나 전에는 맨해튼에서 열리는 공연과 축제를 보느라 바빠 석양을 볼 기회가 자주 없었다. 해마다 이맘때 즈음 줄리아드 학교와 카네기 홀 등에서 공연 보느라 바빴다. 올해는 라이브 공연은 꿈속에서.


딸은 일을 마치고 엄마를 위해 스시를 가져와 공원에서 식사를 하며 황홀한 석양을 바라보았다. 우리네 인생이 석양처럼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하루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삶은 복잡하고 가슴 아픈 일이 많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정말 슬픈 것은 침묵으로 남겨둔다. 죽기 전에는 침묵을 깨뜨릴 기회가 올까. 심장이 터질 거 같으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요즘 매일 뉴욕 명소를 찾아다니며 자연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가슴속에 쌓인 아픔과 슬픔을 덜어낸다. 아픔과 아픔 속에서도 절망과 절망 속에서도 위기 한가운데서도 쉬지 않고 달렸다. 어느 날 날개 하나 부서져 수 천 마일 떨어진 곳으로 날아와 새로운 삶을 개척하니 비포장 도로처럼 힘들기만 하다. 보통 이민자들이 안정하기까지 30여 년 세월이 걸린다. 우리 가족은 이제 애벌레 시기를 벗어났으니 나비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당연히 삶이 덜커덩 덜커덩거린다.


2020년 노벨 문학상은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77세)이 받았다. 10대 7년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다고. 또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눈물꽃/류시화 번역)로 시작하는 시를 읽으면 아픔이 많았던 시인으로 짐작이 된다.


아픔이 없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저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통과 절망과 아픔의 무게가 다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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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를 타고 석양이 질 무렵 허드슨 강을 바라보았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는 무료다. 하루 이용객이 7만 5천 명 정도라고. 페리를 타고 25분 정도면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도착한다. 24시간 운행하는데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평소 페리를 타면 아주 복잡한데 승객이 많지 않아 조용했고 난 늘 전망을 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나보다 더 늦게 탑승한 승객들이 내 앞을 막아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없었는데 코로나 전과 달라 좋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코로나 전에는 여행객들이 많아서 페리도 복잡했나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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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지만 꺼지지 않는 불빛의 의미를 안다면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속에는 아픔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맨해튼 월가는 1주일에 100시간 일한다. 코로나로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전히 하늘에 맞닿을 듯한 맨해튼 빌딩에서 밤늦도록 일하는 사람도 많다는 의미다. 페리를 타고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도착 잠시 휴식하다 다시 페리를 타고 맨해튼으로 돌아오며 아름다운 브루클린 다리의 불빛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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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반스 앤 노블 서점, 그린 마켓, 공연


딸은 집에서 일하고 늦게 맨해튼에 도착하고 난 먼저 유니온 스퀘어에 도착해 꽃 향기 맡으며 거리 음악가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에서 그린 마켓이 열리는 날(월수 금토)이 더 좋다. 꽃 향기 맡으니까 좋고 거리 음악가 공연도 좋으니까. 거리 음악가들의 의상은 연예인처럼 멋지지 않지만 노래 실력은 대단하다.


탭댄스를 추는 남자 실력도 대단해 수년 전 아들과 함께 뉴욕 시티 센터에서 봤던 Fall For Dance Festiva 댄스 축제가 생각났다.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축제라서 티켓 구입하기는 무척이나 어렵고 몇 시간 동안 기다려도 구입이 어렵기도 하다. 댄스는 세계적인 수준이고 티켓은 저렴(15불)하니까. 뉴욕은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그런다. 공연 예술을 사랑하는 뉴요커들도 무척이나 많은 도시. 매년 가을이 되면 기다리는 댄스 축제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열리지 않았다


그린 마켓에서 거닐다 북 카페에 들어가 잠시 책의 향기를 맡으며 시간을 보내다 스트랜드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지하철을 타고 배터리 파크에 가서 딸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픔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빛으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


IMG_1769.jpg?type=w966 코로나로 뉴욕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여전히 맨해튼 야경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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