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8일 일요일
센트럴파크 근처에 살고 싶은데 어떡하지. 마법 램프에게 부탁을 할까.
"램프야 램프야 센트럴파크 옆에 가장 멋진 아파트를 구해다오. 매일 센트럴파크에서 산책하고 싶어."
혹시 마법 램프가 "주인님 주제 파악하고 사세요. 여기 뉴욕이에요.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라고 하면 어떡해. 그런데 마법 램프도 없다. 누가 마법 램프를 갖고 있을까. 산타 할아버지에게 마법 램프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야지.
영화처럼 예쁜 컨서바토리 가든!
지난주 일요일 딸과 함께 방문했던 센트럴파크 컨서바토리 가든에 나 혼자 갔는데 국화꽃에 반해 버려 그곳에 살고 싶더라. 어퍼 이스트 사이드 아파트 렌트비가 저렴하면 얼마나 좋을까.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센트럴파크. 어퍼 이스트 사이드 뮤지엄 마일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과 뮤지엄이 있고 센트럴파크가 가까우니 피할 수 없는 유혹 아니겠어. 그러니까 아파트 값이 비싼가 보다. 코로나로 맨해튼 빌딩값이 약간 하락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은 쳐다볼 수도 없는 하늘 같은 가격.
센트럴파크 컨서바토리 가든, 웨딩 사진 촬영 장소로 명성 높다.
알고 보니 난 시골쥐였다. 런던, 파리, 베를린 프라하, 하이델베르크, 시드니, 동경... 세계 여행도 자주 다니고 뉴욕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시골쥐다. 뉴욕도 정말 나만큼 사랑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거의 매일 뉴욕시를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어느 빌딩 화장실 화장지 질이 좋은지 안 좋은지도 안다. 기관 재정이 좋으면 화장지 질이 좋고 아닌 경우는 형편없다.
국화꽃은 센트럴 파크만큼 예쁜 곳은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국화꽃을 봤지만 센트럴파크와 달랐다. 오늘 처음으로 다양한 파스텔톤 색의 국화꽃을 보았다. 지난주는 국화꽃이 만개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
오래전 딸과 함께 컨서바토리에 갔는데 명성만큼 매력적이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 후 자주 방문하지 않았던 거 같다. 뉴욕시에는 볼 게 무진장 많으니까. 그런데 코로나로 내가 사랑하는 웨이브 힐도 유료로 변해 방문을 미루고 있고, 브루클린 식물원도 무료입장 시간이 사라져 버려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다 컨서바토리가 떠올라 방문했는데 국화꽃이 핀 가든에 반해 버렸다.
첫인상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나의 첫인상이 별로라서 그 후로 자주 방문하지 않았는데 난 이제 컨서바토리 가든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늦었는가. 정말이지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만 번도 더 생각했다.
센트럴파크 컨서바토리 가든을 보면서 롱아일랜드 Old Westbury Gardens이 떠올랐다. 역시나 아주 명성 높은 곳인데 난 명성만큼 감명을 받지 못했다. 아들과 함께 방문도 하고 나 혼자도 방문했던 곳인데 지금 생각하니 가든이 가장 예쁠 때 방문하지 않았던 거 같다. 첫인상이 그저 그래서 자주 방문하지 않았는데 문득 올드 웨스트 베리 가든도 그립다. 뉴욕이 가든 문화가 발달했다. 정말 멋진 가든이 많아. 마크 트웨인과 토스카니니 지휘자가 살았던 웨이브 힐도 내가 무척이나 사랑한 곳인데 코로나로 방문객 숫자를 제한하니 무료입장 시간에 예약도 할 수 없어서 슬프다.
영화 같은 컨서바토리 가든, 플루트도 연주하고 그림도 그려.
그림처럼 예쁜 컨서바토리 가든에서 웨딩 사진을 촬영하더라. 지난주 세 번이나 내린 가을비에 장미가 떠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피어 있어 반가웠다. 너무너무 예쁜 국화꽃을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벤치에 앉아서 휴식하는 뉴요커들도 많고 연인끼리 산책하는 커플도 많았다. 아름다운 플루트 연주도 들려오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많았다. 플루트 선율도 얼마나 아름답던지. 혹시 뉴욕필에서 활동하는 연주가는 아닐지도 몰라.
영화 같은 센트럴파크! 가든도 멋지고 멋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꿀벌 요정들이 사랑하는 국화꽃 속으로 나도 들어가고 싶더라.
내 마음은 국화꽃 속에 들어가 놀았다.
아름다운 시월. 일주일 만에 센트럴파크에 갔는데 저수지와 컨서바토리 가든만 보고 돌아오기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30일 무한 메트로 카드 기한이 이미 지났고 다시 충전하지 않아서 맨해튼 나들이가 불편하다. 1회 비용이 2.75불. 왕복이면 거의 6불. 무한 교통 카드가 있으면 편리하게 마음대로 사용하는데 없으니 두 다리가 교통 카드 역할을 했다.
컨서바토리 가든에서 쉽 메도우까지 걸었다. 넓고 넓은 공원이라 오래오래 걸었다. 오늘 종일 2만 3 천보 걸었다. 아침 모닝커피 마시러 간 것과 저녁 운동하는 거 포함해서.
센트럴파크 쉽 메도우에서 90세 노인 화가 할머니를 만났다.
아직 햇살이 남아 있어서 어쩌면 노인 화가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정말 그분처럼만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더도 말도 덜도 말고 그분처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9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은 축복 아닌가. 거기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니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센트럴파크에 마차가 돌아와 반갑다.
어쩌다 지갑도 없이 맨해튼 외출을 했는지 몰라. 지난주 컨서바토리 가든 분수에 동전을 세 개나 던지며 소원을 빌었는데 오늘은 소원을 빌 수도 없었다. 맨해튼 렉싱턴 애비뉴 86가 지하철역에 내려 뮤지엄 마일로 향해 걷는데 홈리스가 내게 돈을 달라고 하니 웃고 말았다. 플러싱에서 7호선을 타고 달리는데 낡고 오래된 가방을 여니 지갑이 안 보여 아들에게 집에 엄마 지갑이 있나 확인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변이 없고 전화를 해도 안 받았다. 컨서바토리 가든에서 산책할 때 아들이 엄마 지갑이 집에 있다고 연락을 했다.
가끔 급히 맨해튼에 가다 보면 일어나는 실수다. 최소 커피 한 잔 값은 있어야 하는데. 1센트도 가방에 없는데 홈리스에게 무얼 주겠어. 웃으며 파크 애비뉴를 향해 걷는데 거리 쓰레기통에서 빈 병과 캔을 담는 홈리스를 만났다. 맨해튼에 도착하자마자 날 반기는 사람은 홈리스 두 명. 참 슬픈 일이지.
나도 모르게 오늘은 파크 애비뉴 빌딩을 쳐다보았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는 부촌이다. 한국에도 <파크 애비뉴의 종족들>로 잘 알려진 바로 그 파크 애비뉴. 하늘 높은 아파트 빌딩은 무척 많은데 왜 내가 살 곳은 없담. 누가 누가 살고 있을까.
거리 화단에 핀 예쁜 국화꽃도 보며 구겐하임 미술관 근처를 지나다 오래전 내게 "당신 운명이 서서히 바뀌고 있어요."라고 말한 점성술사가 기억이 났다. 그날 춥고 추운 겨울날 기부금 입장 시간을 이용해 전시회를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점성술가가 내게 다가왔다. 내 운명의 시곗바늘은 어디만큼 가고 있을까. 알고 싶어요. 하느님! 알려 주세요.
내 운명의 바늘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가나 보다. 운명의 바늘을 더 빨리빨리 돌려야겠어. 그럼 고생 끝나고 낙원에 도착할까.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뉴욕에 오니 마법이 펼쳐졌지. 한국에서 있던 그 모든 게 다 사라지고 텅텅 빈 방뿐이었다. 두 자녀의 침대와 책상과 의자를 조립하는데도 무려 1달이나 걸렸던 정착 초기 시절 추억은 잊으래야 잊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눈물로 눈물로 걸어가는데 넘고 넘어도 넘어야 할 장벽은 또 얼마나 많은지. 조금만 도와주면 그래도 더 나을 텐데... 아무도 없다. 돌아보면 아득한 길이었다.
2년 전이었던가. 플러싱에서 만난 한인 택시 기사는 서울대 음대 출신인데 혼자 벌어서 뉴욕에서 살려니 숨만 쉬고 산다는 표현을 하셨다. 그 기사분 친구는 부모님이 도와주니 집도 사고 편히 살더라 하면서. 그날 우리 가족이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고 늦어서 공연 보고 집에 가는 길이라 하니 "공연도 보고 사네요" 하면서 깜짝 놀라더라. 뭐 나야 뉴욕 방랑자이니 매일매일 꿀벌처럼 맨해튼 하늘을 날며 보물을 찾아다녔는데.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다녔어. 나의 사랑하는 보물섬이 코로나로 잠들어 버려 몹시도 애석하지.
센트럴파크 저수지, 조깅 장소로 명성 높다.
구겐하임 미술관 근처를 지나게 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저수지를 보기 위해서. 센트럴파크가 정말 넓다. 세계에서 가장 명성 높은 공원에 속하는 센트럴파크 면적만 3.4㎢(102만 8500평). 짐작에 맨해튼 넓이의 1/4 정도가 되나. 호수와 바다를 사랑하는데 센트럴파크 저수지도 사랑스럽다. 오늘은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하늘 높은 빌딩을 바라보았다. 그 높은 빌딩에 누가 누가 살고 있을까 생각하며.
아, 맞다. 깜박 잊을 뻔했다. 오늘 센트럴파크 저수지에서 컨서바토리 가든을 향해 걷다 제프리 앱스타인과 정말 비슷한 중년 남자를 봤다. 테니스 라켓을 들고 걷더라. 혹시 살아있나. 작년 8월 10일 사망해 지구촌이 떠들썩했는데. 그의 스토리 읽으면 정말 007 영화는 공룡 시대다.
일요일 아침에 딸과 함께 모닝커피 마시러 갔다. 딸 덕분에 라테 커피 마시며 음악 들으며 황금빛 가로수 보며 이야기 나누다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 브런치를 준비했다. 오늘 메뉴는 닭죽. 딸이 먹고 싶다고 해서 끓였다. 기운이 없을 때 닭죽이 최고야. 닭 한 마리를 반으로 나눠 두 끼니를 먹는다. 한 마리 가격이 6불. 반마리는 3불. 3불의 행복을 느꼈다.
깊은 바다 밑으로 숨은 내 잠든 에너지가 조금 깨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