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주. 일

by 김지수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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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토요일. 나의 기록은 지난 월요일부터 멈췄다. 몸도 마음도 잠시 휴식이 필요했나 보다. 지난 일요일 아침 프랑스 오픈 보고 오후 센트럴파크 컨서바토리 가든에 가서 국화꽃 향기 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금세 시간이 흘렀다. 집이 센트럴파크 옆이라면 매일 산책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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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카페로 출근한다.



매일 아침 딸과 모닝커피 마시러 가곤 했다. 동네 카페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들으며 창가에 비친 황금빛 단풍을 본다. 이맘때 즈음 한국 시골 황금빛 들판이 그립다. 멀리 떠나오니 더 그립다. 설악산 단풍도 내장산 단풍도 한라산 단풍도 그리운데 언제 가 보나.











오늘 아침 문밖을 나가니 겨울처럼 추워 말없이 가을이 떠난 줄 알았다. 가로수가 노랗게 빨갛게 익어가는 아름다운 시월. 아직 센트럴파크의 단풍도 뉴욕 식물원 단풍도 보지 않았는데 서둘러 가을이 떠나면 섭섭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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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내내 세 번이나 가을비가 내렸다. 가을비에 시월의 장미가 안녕하고 떠날 거 같은데 지난주 수요일 식물원에 방문할 수도 있었는데 슬프게 나의 에너지는 바다 밑으로 잠수했다. 세 번이나 내린 가을비에 어쩌면 장미는 정말 떠났는지 몰라. 내가 사는 동네 플러싱 주택가에는 아직 장미꽃이 펴 반갑지만 시월의 장미는 여름 장미와 느낌이 다르고 빛바랜 듯 약간 차갑게 느껴진다.



기다리는 레터는 오지도 않는다. 날마다 기다리는데 아직도 함흥차사다. 누가 가져갔을까. 분실했으면 어떡하지. 수년 전 우체부가 내 은행 데빗카드 가져가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놀라 달려갔다. 세상에~~~ 어떻게 남의 우편물을 훔쳐가나. 한국에 몇 주전 보낸 소포가 이틀 전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코로나로 우편배달도 늦어지나 보다. 이래저래 힘들기만 하다.



아침 쓰레기를 비우니 기분이 좋았다. 매일매일 쌓이는 쓰레기. 버리면 기분이 좋다. 나 몰래 마음에도 쓰레기가 쌓여 있을까 걱정이다. 그럼 안되는데. 마음의 쓰레기는 병이 된다. 빨리빨리 버려야 한다. 근심 걱정은 독이 되더라.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비결이 뭘까.



토요일 오후 2시경 황금빛 햇살이 비출 때 아들과 함께 산책을 가려고 낡고 오래된 재킷을 입으려고 하는데 지퍼가 고장이 났다. 십 년도 더 지나서 그런가. 진즉 버릴걸 그랬나. 한번,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안 되니 포기하고 다른 재킷을 입었다. 낡고 오래된 것이 좋으면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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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황금빛 햇살이 좋다. 일광욕하며 꽃 향기 맡으며 걷다 장 보러 마트에 가서 양파 두 묶음과 달걀을 사 왔다. 아, 인상된 물가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감자와 양파 등 기본 식품비도 인상되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물가가 인상되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더 많이 인상되었다. 서민들은 죽어야 하나.



IMG_1882.jpg?type=w966 동네 마트 장식도 예쁘다.



아들은 산책하면서 코로나는 신이 만든 작품이 아닌 거 같아라고 말하며 만약 신이 만들었다면 나쁜 사람만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 코로나로 파리는 야간 통금이 생겼으니 얼마나 무섭나. 파리는 오늘부터 통금이란다. 애완견 데리고 산책하는 것은 예외가 된다고 하니 파리에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파리 여행 가니 길거리에 있는 똥은 치우지 않아야 한다고 가이드가 말해 웃었다. 왜냐면 그걸 치우는 직업이 사라진다고. 21세기 무슨 통금이야. 집안에만 갇혀 지내니 이혼율도 높아져 변호사 수입이 좋다는 기사도 있더라. 참 이상한 세상이야. 그때 만난 가이드는 아직 파리에 살까. 긴 바바리코트를 입은 단발머리 청년이 파리에 산지 10년이 지났다고 했는데 우리 가족도 10년이 더 지났다. 그때는 10년이란 세월이 참 길다고 느껴졌는데 외국에서 사니 10년이 금방 흘러가더라. 이제 겨우 번데기 시절 지나니 나비가 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세월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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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덕분에 케이크도 자주 먹는다.



코로나로 서부에서 일하는 딸이 뉴욕에 와서 함께 살게 되니 식탁이 풍성해졌다. 평소 배고프지 않게 먹는데 산해진미를 맛본다. 생선회, 갈비찜, 엘에이 갈비구이, 삼겹살, 닭볶음탕, 김치찌개, 생선 구이, 전복구이, 전복죽, 닭죽... 오늘은 동네 카페에서 딸이 케이크도 구입했다. 생일날 먹는 케이크인데 딸 덕분에 자주자주 먹는다.



며칠 전 한인 마트에서 찜용 갈비를 구입했는데 어찌나 맛이 좋던지. 약간 추운 계절은 갈비찜 맛이 좋다. 가격도 너무 착했어. 갈비값도 너무 인상되어 그림의 떡인데 저렴한 갈비를 구입해 요리했는데 두 자녀가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저렴한 갈비는 운이 좋아야 살 수 있다. 가격이 얼마냐고? 놀라지 마라. 11불 주고 샀다. 우리 가족 세 명이 두 끼를 먹었으니 얼마나 저렴해. 저렴하지 않은 갈비는 너무너무 비싸 정말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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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 주택가 할로윈 장식



며칠 전 두 자녀와 함께 동네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공원 벤치에 앉아 거북이 떼와 기러기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택가 정원에서 핼러윈 장식을 보았다. 주택가 정원에서 많은 유령들을 만났지. 언제 봐도 무서운 유령들. 내게는 자주자주 찾아와 날 흔들어 버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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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 동네 호수


2008년 경제 위기가 찾아오자 롱아일랜드 주택가도 변했다. 경제 위기 찾아오기 전 핼러윈 장식이 무척이나 예뻤는데 위기가 참 무섭더라. 한바탕 폭풍이 부니 장식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뉴욕은 전기세도 무척 비싸다. 그런데 경제 위기 전 밤새 내내 가게에 전기불을 켜놓아 이상했는데 위기가 찾아온 후는 밤에 불이 켜진 가게가 드물었다. 2008년 경제위기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갈수록 빈부차가 커지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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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 앤 노블 북 카페 & 5번가 (메디슨 스웨커 파크 근처)



지난 월요일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에도 가을비가 내렸다. 그날부터 아파트 난방을 해주니 살 거 같아. 딸과 함께 맨해튼에 나들이 갔는데 비가 내려갈 곳이 없어서 휴식 하기 좋은 서점에 갔다. 코로나로 실내 영업을 하지 않은 곳이 많아서 불편한데 서점은 문을 열어서 좋지. 잠시 책을 읽다 집중이 안되니 서점을 나와 우산을 쓰고 5번가를 걸으며 갤러리를 찾아갔는데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는 그대. 한 번, 두 번, 세 번 누르다 포기했다.


그러다 매디슨 스퀘어 파크 근처 레고셥에 들려 구경하다 이탈리아에서 온 식품과 와인과 빵과 커피 등을 파는 Eatly 매장에 갔다. 보스턴에도 같은 매장이 있는데 딸은 뉴욕 매장은 처음. 뉴욕이 보스턴 보다 규모가 더 크다. 딸의 눈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데 가격이 무척이나 비싸. 파운드당 90불 하는 소고기도 있고... 눈 감아야지. 비싼 소고기는 그림이야. 그러다 딸이 엄마 저녁 랍스터 먹을까? 하는데 비싸니 다음에 먹자고 달랬다. 맨해튼은 부동산값이 비싸니 뭐든지 비싸다. 딸은 랍스터 대신 굴을 사더라. 돈이 많다면 사고 싶은 거 다 살 텐데 참아야지. Rosemary (로즈메리)와 바게트와 굴을 사 왔는데 굴 껍데기 벗기기가 쉽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사 먹거나 아니면 껍질 벗겨진 굴을 사 먹었는데 딸이 쉽게 벗길 줄 알았는데 전문가 나이프가 필요했나 봐.



맨해튼에 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는데 이웃집에 재즈를 전공하는 학생이 있는 듯. 매일 라이브 재즈 음악을 듣는다. 전에는 저녁 식사할 무렵에만 연습하던데 요즘 연습 시간이 늘어서 더 자주 듣는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매일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 가서 공연 볼 텐데... 아래층 할아버지는 뭐가 좋은지 가끔 콧노래를 부른다.






가을비 내리지 않은 날에는 국화꽃 향기 맡으며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운동을 했다. 별들은 지구를 보며 뭐라 소곤소곤할까. 갑자기 추워져 오늘 처음으로 실내에서 양말을 신었다. 이제 서서히 겨울이 다가오나 봐.

대서양 아래로 숨은 잠든 에너지를 어떻게 꺼내올까. 마법의 두레박이 필요해. 잠든 에너지를 꺼낼 수 있는.



IMG_1865.jpg?type=w966 노랗게 물들어 가는 시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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