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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Nov 24. 2020

제약회사의 어두운 그림자


이원영 / 논설실장 

[LA중앙일보] 발행 2017/07/12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7/07/11 21:40



거대 제약회사들의 횡포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신약의 부작용은 가급적 축소하고, 효능은 최대한 포장하는 방법으로 지속적인 이득을 꾀하는 '기업'이다. 사람들은 의사·약·병원·의료보험이라는 의료 시스템에 대해 일종의 '자선단체' 비슷한 좋은 느낌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현대 의료시스템은 철저하게 기업의 이윤을 위해 작동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류의 건강과 기업의 이윤이 충돌한다면 제약회사들은 어느쪽을 택할까. 인류의 건강을 위해 무던히도 연구하고 애쓰는 제약회사이기에 일반회사와는 좀 다르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역사적으로 제약회사들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한 도박'도 서슴없이 벌여왔다. 수많은 약들이 세상에 나왔다가 심각한 부작용으로 퇴출되는 과정이 반복되어온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아프리카에는 '수면병'이라고 알려진 트리파노소마병 이라는 열대성 전염병이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36개국에서 6000여 명이 위협 받을 정도로 위험한 병이라고 한다. 원충이 혈관으로 들어가면 중추신경을 자극하고, 심한 두통과 신경질환을 야기하면서 혼수상태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많은 제약회사들이 수면병 치료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마침내 암치료제로 사용되던 에플로니틴이 수면병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약은 '기적의 부활을 위한 약'이란 별칭을 얻으며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약을 만들던 제약회사 훽스트 마리온 러셀은 '이윤을 얻지 못한다'는 이유로 약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지금은 수면병을 치료할 약이 없어 수만 명이 질병 위협에 무방비 상태다. 심지어 개발도상국가들에는 각종 전염병이 만연되고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약회사들이 약 개발을 포기하고 있는 반면 오히려 돈벌이가 쉽다는 이유로 애완견 치매 치료제는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이다.

제약회사의 비리와 부도덕성을 고발한 책 '의약에서 독약으로'는 세계적인 의료 전문가 12명이 파헤친 현대의료산업의 충격적인 보고서다.

이 책에 따르면 거대 제약회사들의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은 2002년 4000억달러, 2008년 7750억달러, 2011년 9560억달러 등 해마다 급성장하고 있으며 이는 제약회사들이 주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의료보험과 정치권의 묵시적 카르텔 아래 제약산업은 현재 가장 장사가 잘 되고 많은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돈벌이' 예는 또 있다. 심장마비 환자의 회복제로 쓰이던 이소프로테레놀이라는 약은 2000년도에 생산이 중단됐다. 해당 제약사인 아메리칸 홈프러덕츠의 홍보 대변인은 '(중단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생명을 살리는 데는 공헌했지만 1회 사용에 그쳐 돈벌이가 안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제약사들은 장기고객(환자)을 확보하는 것이 이윤을 챙기는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지난 30년 동안 생명에 지장이 없는 질환과 관련된 장기복용 약품을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당뇨약·고혈압약·역류성 위염·우울증약 등등.

또한 2007년 한 해에만 제약사가 미국 의원들에게 뿌린 로비 금액만 1억8900만 달러에 이를 정도며 이 때문에 제약회사의 비리나 부도덕성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부작용에 대한 고민 없이 매일 서너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제약사의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주변에 많다. 과연 그 약들은 내 몸을 지켜주는 것인지, 아니면 제약사 주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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