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4 수요일
뉴욕 관광청에서 레스토랑 위크 축제를 2월 말까지 한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식사비가 무척이나 비싼 뉴욕 맨해튼에서 식사하기가 겁나지 않을 수 없다. 음식비 + 팁+ 세금. 그리고 와인을 마시면 훨씬 더 비싸다.
뉴욕은 생각 없이 지출하긴 어렵다. 서민들 지갑은 폭풍을 맞기에. 커피 한 잔 값도 엄청 비싸니 평소 난 비싼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딸이 사주는 커피를 제외하곤.
맨해튼 북카페에서 레귤러커피 한 잔이면 종일 책과 놀 수 있으니 좋았지. 유니온 스퀘어 북 카페에 간지도 정말 오래되었는데 지난 밸런타인데이부터 실내 영업을 하니 북카페도 다시 오픈했을까. 추운 겨울이라서 자주 맨해튼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 시골쥐가 되어가나. 보고 싶은 전시회도 많은데 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수년 전 갑자기 친정아버지가 하늘로 떠난 후 내 마음도 변하긴 했다. 삶이 참 허망하단 것을 느끼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에서 아버지 사망하셨단 전화를 받고 그날 처음으로 단편 소설 작가 오헨리 단골이던 피츠 태번에 아들과 함께 갔다. 식사비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지만 아주 고급스러운 음식은 아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단골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들과 함께 방문하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한 중년 남자를 보곤 했다.
뉴욕에 오던 첫해 크리스마스 두 자녀와 함께 처음으로 맨해튼 버스 투어를 했을 때 한인 타운에서 비빔밥을 딱 한 번 먹은 뒤로 그 후 처음이었다. 오헨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집필했던 곳이라고 한인 관광 회사에 예약하고 버스 투어를 할 때 들었지만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후였다.
하루아침에 이민생활은 안정하지 않는다. 특히 보통 사람에게는. 더구나 난 뉴욕 싱글맘. 이민 1세+40대 중반 유학생+싱글맘의 무게는 내 숨통을 꾹 눌렀다. 여기서 "1+1+1=3"이란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경험한 자만이 아는 삶의 무게.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무게. 그러니까 신의 축복을 받는 자만이 느낄 수 있다. 뉴욕에 올 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백지상태였다. 하나하나 귀한 정보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열정을 쏟았나. 우리 가족을 도와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험생 두 자녀와 함께 낯선 땅에서 괴물 언어로 공부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갔다.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데 언제 장미 정원에 도착할까. 뿌렸던 무수한 눈물에서 장미꽃이 필까.
우리 가족도 뉴욕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랐다면 그 많은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의 회오리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뉴욕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눈물로 시작 눈물로 끝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초기 롱아일랜드에 살 때는 맨해튼이 멀었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롱아일랜드에서 운전하고 맨해튼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주차비도 무지무지 비싸고 뉴요커들 운전이 사납고 거칠기에. 만약 교통사고만 난다면 큰일이기에. 그래서 맨해튼은 멀었다. 에너지 넘친 사람들은 차로 맨해튼에 출근하기도 한다고. 사람마다 다르다. 난 내 한계 내에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를 알고 아들과 함께 가끔 방문하곤 했다. 딸은 멀리서 지내니 함께 음식 축제를 이용할 기회가 드물었다. 이번은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테이크 아웃을 하니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고 싶은 마음과 현실은 동떨어져 있다. 맨해튼에 살고 형편이 넉넉하다면 매일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 좋겠지.
가끔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해 올려진 포스팅을 보면 저렴한 가격 그리고 훌륭한 식사에 놀라곤 한다. 한국과 뉴욕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한국 음식 문화는 좋다. 정착 초기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때 피자 가격이 무척 저렴해 배달을 시켰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피자 가격과 배달원이 요구한 가격이 달랐다. 알고 보니 피자 가격+ 팁+세금+배달료. 아, 충격! 피자를 먹으면 간편하니 좋은데 결코 아주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코로나로 작년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가 열리지 않아 섭섭했는데 올 겨울 축제를 연다고 해서 놀랐는데 테이크 아웃만 한다고. 당연 배달료를 줘야 한다.
점심 식사를 하고 호주머니에 겨울 철새들 먹이를 담고 공원에 갔다. 모처럼 화창한 날이라 몇몇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서 휴식하고 있고 겨울 철새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내가 먹을 토스트용 빵을 잘게 썰어 비닐봉지에 담아 겨울 철새들에게 주니 좋아하더라. 평소 자주 먹이를 주진 않는다. 공원에는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라는 푯말이 적혀 있다. 먹이가 귀한지 요즘 기러기들 체중이 많이 줄었더라. 배고프다고 괴성을 지르니 내 마음이 아파서 냉장고에 든 식빵을 가져가 주었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공연을 볼 텐데... 안타까운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대학 시절 꿈꾸던 보물섬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매일 공연과 전시회를 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멋진 맨해튼. 그런데 코로나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아들과 함께 롱아일랜드 제리코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줄리아드 학교에서 학사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오케스트라 수업도 받고 함께 줄리아드 음악 예비학교에서 오디션도 봤는데 상당히 힘들어서 아들은 포기하고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그 친구는 예비학교를 포기하고 나중 줄리아드 음대에 진학했다. 자주 줄리아드 학교에 다닐 무렵 우연히 아들 친구가 공연한다는 것을 보고 연주를 듣곤 했다. 그리운 줄리아드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