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6 금요일
뉴욕 맨해튼 누 갤러리에서 금요일 오후 5시에 이작 펄만 스튜디오 연주를 들어보라고 연락이 와서
기다렸다. 전에도 수차례 이메일을 받곤 했는데 다른 일로 바빠 놓치고 말았다. 오랜만에 듣는 클래식 음악은 역시나 좋았다. 세계적인 대가들 연주만 좋은 게 아니라 학생들 연주도 정말 좋다.
코로나 전 매일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와 매네스 음대에서 공연을 보곤 했는데 한동안 자주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지 않았다. 아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메트 오페라 보라고 하는데 작년 무료 온라인 스트리밍 연주를 보곤 했는데 며칠 전 웹사이트에 접속하니 유료로 전환이 되어 아쉬웠다.
두 자녀가 어릴 적 바이올린 특별 레슨을 받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바이올린 교수님과 인연이 되어 빈으로 유학 오라고 권하셨는데 그때는 기러기 가족이 될 마음이 없어서 빈으로 유학을 떠나지 않다 운명의 회오리바람이 불자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줄리아드 학교가 떠올라 뉴욕으로 건너오려고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줄리아드 학교 웹사이스트에 접속해 오디션 곡을 보니 두 자녀가 지원해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독일에서 오랫동안 유학했던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오디션 곡을 보여주며 의향을 물었다. 처음 두 자녀가 줄리아드 학교에서 주말 공부하면 그냥 쉽게 미국에 올 줄 알다 나중 알고 보니 예비학교 학생은 학생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다고 하니 다시 계획을 변경했다.
암튼 뉴욕에는 가야 하겠단 생각이 들어 내가 유학 준비를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변했지만 계획을 현실로 바꾸기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필요했다. 20대 30대도 아닌 40대 중반 유학 준비는 결코 쉽지 않았다. 기적 같은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가슴에 눈물이 흘렀다.
뉴욕에 오기 전 딸은 엄마 형편이 어려울 거 같다고 레슨을 중지했고 아들 혼자만 서울 예종에 레슨 받으러 다녔다. 매주 주말 고속버스를 타고 왕복 10시간 이상 달려 서울에 도착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때 얼마나 고생했던가. 뉴욕에 와서 주말 토요일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하루 종일 오케스트라 수업과 이론 수업받고 개인 레슨까지 받고 기차를 타고 롱아일랜드 제리코 집에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아들에게 토요일은 혹독한 트레이닝이었다. 이런 얘기를 전에도 언급했는데 어느 날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공연 보고 66가 링컨 센터 지하철역에 도착 타임 스퀘어 역에 가는 1호선을 기다리는데 낯선 분이 내게 다가오셔 정중히 인사를 하셨다. 난 처음 뵈는 분인데 내게 혹시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분 아니냐고 물었다. 망설이다 그런다고 하니 내 브런치 글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아서 딸이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단 말씀을 하셨다.
예비학교 학생들 부모님 님들이 대개 멋쟁이가 많은데 그분 따님에게 날 소개하면서 인사하라고 하니 약간 놀란 눈치였다. 내 브런치에 한 번도 답글을 남기지 않아서 난 모르고 있었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기뻤다. 그분 따님과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뉴욕에서 살지 않으니 주말 토요일에 학교에 수업받기 상당히 힘든데도 즐거운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예비학교 추억은 먼 훗날 멋진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오랜만에 아들이 고등학교 때 매일 연습하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조슈아 벨의 연주로 들어보았다. 언제 들어도 좋은 곡. 좋은 것은 항상 좋다. 차이코프스키가 뉴욕 카네기 홀 개막할 때 왔다는 것도 뉴욕에 와서 알았다. 어릴 적 무척 고생했던 카네기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나중 미국을 위해 자선 사업도 하고 공공 도서관, 카네기 멜론 대학, 카네기 홀 등 수많은 곳에 지원금을 냈다. 카네기 홀 덕분에 세계적인 대가들이 뉴욕에 와서 공연하니 음악 애호가들에게 얼마나 멋진 도시였는가. 코로나가 끝나고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저렴한 티켓 사려고 추운 날에도 몇 시간 기다리곤 했는데 한국 수필가 피천득 씨도 보스턴에서 저렴한 티켓 사려고 나처럼 금요일 아침 오래오래 기다렸단 이야기를 수필집에서 읽고 웃었다.
평소대로 점심 식사를 하고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호수가 스르르 녹기 시작하니 수련꽃 피는 연못이 생각났다. 기러기들도 좋은지 샤워도 하고 물장구를 치며 놀아 멋진 그림이 되었다. 항상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예쁜 날개를 펴면 날개 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날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흰기러기는 날 기억하는지 날 쳐다보는 눈빛이 어디선가 봤던 눈빛으로 느껴진다.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하면서 응시한다. 겨울 철새에게 먹이 주는 동네 할아버지가 나타나면 금세 모여들어 먹이를 먹는데 멀리서 먹이를 먹으러 날아오는 기러기들이 도착하면 이미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먹이도 없는데 어떡한담. 마치 직원 채용하는 광고를 보고 달려드는 구직자를 떠오르게 한다. 좋은 직장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참 달라진 세상. 갈수록 경쟁력은 높아지고 기회는 드물고 생활수준은 높아지고 이래저래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