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월을 보내며

by 김지수

2021. 2. 28 일요일


6tbLs8zVNTUyucndzug7kjrqV7g 우아한 흰기러기


어느새 2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며칠 전 호수가 사르르 녹기 시작해 기러기들이 물장구치고 노는 모습이 너무 예뻐 쉬지 않고 셔터를 누른 바람에 자정 무렵까지 했던 사진 작업이 무리가 되었는지 하루 종일 감기 몸살 기운에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고 집중력도 떨어져 휴식을 했다. 그날뿐 아니라 매일 사진 찍고 작업하는 일은 무척 힘겹다.


JL2GYmyLikVRxF3EAvEOZmsVTJY 하얀 눈 속에 핀 황설리화 예쁘다.


아들은 엄마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 새우 볶음밥을 만들어 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다. 코로나 전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볼 때 저렴한 티켓 사려고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가까웠다. 그때 커피 한 잔 먹고 맨해튼에서 지내는 엄마를 위해 아들이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함께 먹었다. 가끔은 새우 볶음밥을 준비해서 도시락에 담아 맨해튼에 가져와 함께 식사를 하고 공연을 보곤 해서 그때 추억이 떠올랐다.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카네기 홀은 특별한 선물이었는데 코로나로 잠들어 버려 아쉽기만 하다. 좋은 공연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비록 하늘 꼭대기 같은 좌석이라 자리도 비좁아 몹시 불편하지만 그래도 비싼 티켓 구할 형편이 아니라서 늘 저렴한 티켓을 사곤 했다.


IMG_3018.jpg?type=w966 사랑스러운 겨울 해님



뉴요커 삶이 나만 힘든 게 아니란 것도 카네기 홀에서 만난 지인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민 3세도 힘들다고 하면 이민 1세는 어떠하겠는가. 이민 1세와 3세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크다. 언어와 신분 장벽이 없는 3세는 1세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뉴욕 시립대 교수, 콜럼비아대 교수, 프린스턴대 교수, 은퇴한 변호사, 작곡가, 오페라 지휘자, 모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는 뉴욕 문화인데 음악을 사랑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만나면 금세 친해져 버린 것도 신기하다. 바쁜 뉴요커들 남의 일에 관심도 없고 남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음악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개 여행도 사랑함을 느꼈다. 오페라 공연 보기 위해 밀라노, 파리, 부다페스트 등에도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뉴욕에 올 때 꼭 보고 싶은 발레 공연이 있었는데 내게는 기회가 없었다. 다름 아닌 영화 <백야>에 출연했던 미하일 바리니시코프 공연. 그랑 같은 지역 출신이라고 했던 러시아 이민자 할머니는 브루클린 쉽헤드 베이 지역 근처에 산다고 했다. 러시아에서도 자주 공연을 보러 다녔단 할머니는 카네기 홀과 메트에서 오페라를 자주 본다고. 쉽헤드 베이(Sheepshead Bay)는 내가 사랑하는 백조 떼가 사는 곳. 석양이 질 무렵 정말 예쁘다.


2월은 딱 4주. 28일이라서 무척 짧게 느껴진다. 매일 산책하러 호수에 가서 사진 찍고 작업해서 브런치에 올리고 다시 지우고 반복하곤 했다. 참 힘든 사진 작업을 왜 하는지 나도 의문점이 든다. 좀 편하게 살아도 될 텐데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른다.


돈 안 되는 것만 사랑한단 말도 자주 들었는데 타고난 걸까. 보통 사람과 다르다. 또, 매일 글쓰기를 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기억들. 전과 달리 이제 기억력도 점점 쇠퇴하는 듯 느껴진다. 대학 시절 기억력이 너무 좋아 스스로 놀라곤 했는데 나의 기억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글을 쓰면서 내 삶을 돌아본다. 삶은 한 치 앞도 모른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뉴욕에 올 줄도 상상도 못 했을 뿐 아니라 친정아버지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지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뉴욕에 초대했더라면 마음이 덜 아플 텐데 정착 초기 숨쉬기도 힘들기만 했다. 그때는 뉴욕 문화커녕 지리도 잘 몰랐다. 대학 시절과 다른 전공을 뒤늦게 대학원 과정에서 하니 눈물겹기만 했다. 대개 한국에서 석사 과정 마치고 미국에 유학 와서 같은 전공을 석박사로 하는데 난 기초도 없는 전공을 선택했으니 간이 우주만큼 컸다.


짧았던 이월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우리 가족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 구정은 올해도 역시 쓸쓸하게 보냈고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가 열렸는데 맨해튼에 살지 않고 배달 서비스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이용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지난 1월 딸이 구입한 스마트 티브이로 호주 오픈 테니스 경기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뉴욕필 공연과 이작 펄만 스튜디오 공연과 맨해튼 음대 공연도 보곤 했다. 바쁘지 않다면 더 많은 문화 행사를 누릴 텐데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뉴욕 문화 행사를 다 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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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센트럴 파크에 다녀왔는데 그립다. 며칠 전 딸이 엄마에게 왜 요즘 센트럴 파크에 가지 않냐고 물었다. 코로나로 뉴욕 분위기가 무섭다. 지하철에서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아시아인 폭행 사건이 일어나니 외출이 두렵다.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간다고 했을 때 빈 대학 바이올린 교수님이 뉴욕은 무서운 곳이라고 하면서 빈으로 유학 오라고 하셨는데 뉴욕에 왔다. 두 자녀를 무척 아꼈던 음악가. 레슨 할 때 아들이 천천히 하면 '빨리빨리'란 표현을 하면 웃었다. 실은 아들은 '빨리'란 표현을 싫어하는데 외국인 교수님 표현이라서 웃고 말았다. 그분을 뵌지도 정말 오래되었다.


604mn9777-JyWCsrkamR2oksamQ 뉴욕 플러싱 /눈폭풍



뉴욕의 2월은 눈폭풍으로 시작해 겨울비로 끝났다. 3월이 시작되는데 브루클린 식물원 매그놀리아 꽃 제전도 보고 싶은데 코로나로 무료입장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말아 슬프다. 뉴요커가 누린 혜택들이 말없이 사라지고 있다. 눈폭풍이 자주 와서 아들과 함께 조깅을 하지 못했다. 평균 하루 1만 보 이상 걷는데 2월은 약 7 천보를 걸었다. 봄이 오면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 3월은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뉴욕 센트럴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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