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열리다
2021. 3. 1 월요일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딸이 사용한 아이폰을 내게 주었다. 딸은 새로운 휴대폰을 구입했다. 꽤 오래전 구입한 내 아이폰이라 수명이 다해간다고 그냥 공짜로 사용하라고 하니 염치없이 받았다. 휴대폰 값이 저렴하면 좋을 텐데 왜 그리 비싼지. 아이폰 수명이 다해가는지 배터리 수명도 아주 빨리 사라진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정착 초기 추억도 생각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공부하기 시작하니 수업 준비하느라 바쁘고 두 자녀 학교에 픽업하는 일과 살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전공 공부를 해야 하니 휴대폰이 없더도 되겠다고 생각해 구입하지 않고 버텼다. 물론 휴대폰 가격이 저렴하고 사용료가 저렴하면 그냥 구입했겠지만.
그런데 휴대폰 없는 설움이 엄청 컸다. 미국은 주별로 다르고 뉴저지처럼 한국 면허증을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뉴욕주는 아주 까다롭고 어렵고 서류 등 준비할 것도 많다. 운전 면허증 시험에 필요한 서류 준비하고 필기시험 보고 주행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첫 번째 시험은 학원 차를 대여해 시험장에 갔는데 상업용 보험이 아니라 일반 보험에 가입했단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억울함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지. 롱아일랜드는 차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서.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차 없이 살기 힘든 곳. 참 슬픈 세월을 보냈지. 두 번째 시험을 치르러 간 날 자동차 학원 강사가 미리 주행 연습하고 가자고 학교 주차장에서 아침에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날 폭우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강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난 휴대폰이 없어서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폭우 속에 기다리다 학교 수위에게 전화 한 통만 하자고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냥 기다렸는데 시험 보기 30분 전 도착해 내게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고함을 치니 어처구니없었다. 미리 연락을 하면 얼마나 좋아. 그날 아침 갑자기 법원에 갔다고 핑계를 댔다. 다른 것도 아닌 법원이라면 미리 스케줄이 나왔을 텐데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폭우가 쏟아져 유리창이 안 보이는데 내가 운전하고 달려가 합격했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휴대폰이 없는데 어떻게 전화를 받냐고. 휴대폰이 없다고 하니 그제야 강사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세상에... 요즘 휴대폰 없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얼굴 표정이 말했다. 돈, 돈 돈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얼마나 절약하고 살았나. 뉴욕에 오기 전 한국에서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극과 극으로 바뀐 뉴욕 환경.
정착 초기 우리 가족은 휴대폰 없이 살았다. 나중 스마트폰이 나오고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두 자녀도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모른 체했다. 어려운 형편이라 아들이 4년 풀 장학금을 주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했다. 입학 선물로 맥노트 북도 받아 기뻤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엄마 휴대폰 없는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어요. 학교 숙제를 하려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평소 아들은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숙제 하기 불편하다고 말하니 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랬구나. 남들은 비싼 학비 내고 공부하는데 장학금으로 공부하는데 휴대폰 하나 사주지 못해 미안했다.
한국과 달리 뉴욕은 전화 한 통 하기도 어려우니 휴대폰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휴대폰 이용료가 비싸니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딸 덕분에 새로운 아이폰을 받아 기쁜 하루였다.
점심 식사 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산책을 가면서 이번에는 사진을 찍지 말자고 다짐 다짐했는데 호수 풍경을 보자마자 유혹에 넘어가고 말아 쉬지 않고 셔터를 누른 덕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사진 작업하면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바보 같은 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되는데 자꾸만 유혹에 빠진다.
오후 두 자녀와 함께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김치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몇 번 먹으니 벌써 김치가 동이 났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마트에 가면 나도 모르게 산다. 두부, 고등어, 소파, 당면, 고구마, 김치, 홍합 등을 구입했는데 얼마나 비싸던지. 야생 동물처럼 살 수도 없는데 왜 식품비도 그리 많이 드는지. 10년 전에 비하면 물가가 너무 많이 인상되어 서민들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홍합을 살까 말까 하면서 상인에게 "신선해요?"라고 물으니 옆에서 아들이 "장사꾼에 물으면 어떡해요? 다 싱싱하다고 말하지요."라고 하니 우리 모두 함께 웃었다. 그냥 구입해서 집에 돌아와 홍합을 끓였는데 싱싱했다.
늦은 오후였나. 미국에 온 지 30년 정도 되신 분이 내게 역이민에 대해 문의하셨다. 코로나로 본의 아니게 실직자로 변해 고국에 돌아가야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힘든 이민 생활에도 잘 적응하는 분도 있지만 대개 이민 1세의 삶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언어와 신분 장벽이 하늘 같기에.
그분에게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라고 답했다. 내 마음이 편한 곳이 좋다. 자녀 교육위해 이민 와서 자녀 교육 마치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인들도 아주 많다고 들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분도 많다고. 한국도 집값과 생활비가 비싸니 무작정 돌아가기도 어렵다고. 돌아갈 곳이 없으니 그냥 미국에 눌러사는 분들도 많다고.
부자 나라 미국 이민자는 모두 잘 사는 게 아니라 한국 외국인 노동자와 비슷한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했더라도 미국에 이민 오면 사회적 신분이 사라지니 언어 능력이 안되면 아무 직업이나 해야 하니 말 그대로 막노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 슬프지만 이민의 현실이다.
이민 생활은 생활 적응력도 개인차가 커서 한 마디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낭만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어느 나라든 보통 사람이 생존하기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운이 좋아 부모의 재산을 많이 받거나 등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참 힘든 세상.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야지.
눈 깜짝할 사이 두 달이 지나고 3월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