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닭백숙

by 김지수

2021. 3. 2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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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는데 여전히 추운 뉴욕. 체감 온도가 영하 11도까지 떨어져 온몸이 꽁꽁 얼어갔다. 매서운 꽃샘바람까지 부니 휴대폰 셔터를 누르기도 힘들었다. 코로나 전에는 매일 맨해튼 나들이 갔는데 뉴욕이 잠들어 버려 매일 동네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곤 한다. 습관의 힘이 무섭다. 나도 모르게 호수에 찾아가곤 한다. 혼자 조용히 산책하면 좋을 텐데 예쁜 풍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사진 작업을 나 대신 로봇이 해주면 좋을 텐데 삶은 언제나 셀프서비스. 누가 내 대신 일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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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 꽁꽁 얼어 있었는데 하얀 눈이 스르르 녹기 시작 호수도 가장자리는 다 녹았다. 유모차에 어린 아들 태우고 온 엄마가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멀리서 달려온다. 어찌 알고 찾아오는지. 엄마에게 밥 주라고 하는 거 같아. 어린 아들은 하얀 갈매기가 먹이 먹는 것을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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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로 오랜만에 닭죽을 끓였다. 몸이 안 좋을 때 생각나는 메뉴다. 식당에 가면 너무 비싸니까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으니까 가끔씩 먹는다. 지난 2월 내내 사진 작업하느라 힘들었는지 봄이 오는 길목 감기 몸살에 걸렸다. 아프면 안 되는데... 아프면 서럽다. 닭 한 마리를 반으로 나눠 먹는다. 반 마리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기에.


닭죽을 끓여 먹으며 오래전 아들과 함께 가서 식사했던 미슐랭 스타 아이피오리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아들 고등학교 친구가 디저트를 만든다고 하니 아들에게 우리가 도착했으니 더 맛있는 디저트 보내주라고 연락해보라고 농담을 했다. 아들이 웃으며 그럴까 하다 연락하지 않았다. 뉴욕대 졸업한 친구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인기가 없던 친구였다고. 그때 아들이 메뉴에서 리조또를 골라 주문했다. 이탈리아어를 잘 몰라서 한 번도 먹지 않아서 주문했는데 한국 죽과 비슷했다. 괜히 주문했어라고 살짝 후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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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끼고 절약하는데 삶은 곤궁하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뉴욕 환경에도 적응하고 살아가는 두 자녀가 고맙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안에서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멀리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고난의 길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은 가시밭길이다. 끝없는 눈물을 뿌리면서 꿈을 키워가는 우리 가족. 언제 우리 가족의 꿈이 필까. 무슨 죄가 있다고 어린 두 자녀까지 고생을 해야 하는지. 평생 내 의무를 다 했는데 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두 자녀 아빠 뒷바라지하고 두 자녀 특별 교육하고 두 자녀 조부모님 중형 아파트 사 드리고 매주 토요일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내 작은 몸에 짊어지는 십자가의 무게에 숨통이 막힐 거 같아도 견디고 참고 지냈다. 보통 사람과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지. 얼마나 사랑받는 막내며느리였나. 내가 가출하니 두 자녀 할머니는 쓰러졌다고... 평생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모르는 운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남의 나라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 멀리서 보면 뉴욕 삶이 아름답게 보이는데 얼마나 많은 도전을 했는지. 삶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제였나. 내게 역이민에 대해 묻었던 분은 미국에서 30년가량 사셨는데 미국 동부 메일랜드 주에 살다 하와이에 산지 10년이 지났다고. 그분도 하와이에 그리 오래 살 줄 몰랐다고 하셨다. 따님은 명문 NYU Stern MBA 과정을 부모 도움 없이 졸업했다고. 얼마나 자랑스러운 따님인가.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으니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지 아닌지 생각 중이라고. 코로나로 꽤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에 실망해 한국에 돌아갔단 기사도 종종 읽었다. 나이 들면 의료비 걱정. 고향도 생각나고 이래저래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분도 많다고. 자녀 교육 위해 미국 이민 왔지만 세월이 흐르니 고향이 좋다고 말한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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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후 일 보러 뉴욕 총영사관에 가려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미리 전화를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래오래 기다려 겨우 연결되었는데 온라인 예약제로 변했다는 직원의 말. 목소리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래 기다려 통화했지만 최대한 빨리 끊으려는 직원. 전화받는 사람이 즉석에서 예약을 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한 마디로 거절. 할 수 없이 구글에서 영사 민원 24를 검색하고 예약하려니 3월은 이미 다 찼다. 당장 급한데 어떡한담. 코로나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은행에 가서 6불짜리 머니 오더를 만드는데 수수료가 무려 5불. 비싼 미국 서비스 요금. 부자 은행은 서민들 눈물을 먹고사나... 언제나 복잡한 문제들이 다 풀리고 편안히 숨 쉬고 살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없었다면 진즉 하늘나라로 떠났겠지. 나의 구세주는 음악과 그림과 책과 산책 등. 요즘은 맨해튼 나들이 대신 동네 공원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코로나 언제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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