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3 수요일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와 기쁜 하루였다. 새들도 봄날이 좋은지 아파트 창가에 찾아와 노래를 더 자주 부른다. 딸이 무척 사랑하는 빨강 새 노래 들으며 파란 우체통에 레터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세탁을 하러 아파트 지하에 갔다. 낡고 오래된 세탁기라서 그런지 고장 난 세탁기와 건조기도 있었지만 무사히 세탁을 마쳐 기분 좋은 날. 세탁물이 약간 덜 말랐지만 세 번만 갔으니 감사했다. 만약 건조기가 멈췄다면 한 번 더 가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세탁을 하는데 일주일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점심 식사 후 호수에 산책하러 갔는데 날씨가 좋아 공원에 산책하는 주민들이 아주 많았다. 야외용 의자를 가져와 일광욕을 하는 노인들도 보이고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젊은 아빠도 보였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는 이제 거의 다 녹고 하루하루 달라진 호수 풍경에 놀라곤 한다.
봄이 찾아와 그런지 청설모도 더 많이 보인다. 겨울 내내 먹이가 부족했는지 체중이 빠진 듯. 기러기들 기억력이 좋은지 유모차 끌고 산책하는 분에게 다가가 먹이 달라고 하니 "없어. 저리 가."라고 말하니 그제야 한인임을 알아챘다. 중국인과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지만 가끔 그리스어와 러시아어도 들려온다. 다인종이 거주하는 뉴욕이라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파란색 옷을 입는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다시 기러기들이 달려가 먹이 달라고 떼를 쓰니 웃었다. 자주자주 먹이 주는 사람은 기억한 듯 보인다.
매일매일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호수가 아름답다. 갈매기도 잠시 호수에 와서 다시 멀리 날아가니 호수 풍경은 항상 다르다. 햇살에 따라 호수 빛도 달라진다.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사진 작업하다 오후 3시경 아들과 함께 조깅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공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트랙은 이용할 수 없어서 동네 주택가를 거닐었다. 매년 봄이 되면 복수초와 함께 인사를 하는 연보랏빛 꽃이 피어 있다고 딸이 말해서 아들과 내가 찾아가 보았다. 작약꽃이 피는 주택가 근처라서 기억한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꽃이 피니 신기하다. 식물이 추위를 견디는 힘이 인간과 다른 듯 짐작이 된다. 모처럼 아들과 함께 조깅하니 약 1만보를 걸었다. 운동하지 않으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수면 부족 등으로 몸이 아프기 시작한 듯. 20대와 달리 이젠 수면이 부족하면 바로 신호가 온다. 그런데 앤서니 파우치는 하루 4시간 내지 4시간 반 수면을 취한다고 하는데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3월 3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라서 기억난다. 뉴욕에 와서 약 반년이 지난 후 롱아일랜드 딕스힐에 살다 제리코로 이사를 했다. 포장 이사가 아니라서 무척 힘든 이사였고 롱아일랜드는 아파트가 많이 없고 정보가 귀해서 힘든 면도 있고 공부하던 무렵이라 혼자서 다 처리해야 하니 힘들었다. 제리코에 이사를 해서 짐을 풀기도 전에 두 자녀와 함께 기차를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찾아갔다. 3월 3일 3시에 학교에서 바이올린 선생님을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길이니 무척 피곤했다. 집은 난장판인데 그대로 두고 맨해튼에 펜스테이션에 도착.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링컨 센터에 찾아가는데 로컬 1호선을 타고 66가에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익스프레스를 타고 72가에 내려 낯선 곳이라 당황해 선생님에게 전화하니 조금만 내려오라고 하는데 지리를 잘 아는 사람 마음과 달리 우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학교에 도착했는데 수위가 우리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통제하니 놀랐다. 시골쥐라서 그랬다. 방문록에 기록을 하고 선생님을 기다렸다. 잠시 후 바이올린 선생님이 나타났는데 새끼손가락이 다쳐 레슨을 할 수 없다고. 우린 레슨 받으러 갔는데... 다음 주부터 레슨을 시작하자고.. 그렇게 줄리아드 학교와 인연이 되었다. 각방마다 Steinway & Sons 피아노가 놓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들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오디션을 보고 딸은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해 오디션을 봤는데 둘 모두 1차 오디션은 통과했지만 2차 관문은 쉽지 않았다. 딸이 피아노 3 중주곡을 작곡하라고 하니 엄마가 첼로 레슨 받았던 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 웃었다. 늦게 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니 절대 음감이 있는 재능 많은 두 자녀와 다를 텐데 환경은 자녀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짐작이 된다. 작곡 교수님은 딸에게 작곡 노트를 버리지 말라고 간직하라고 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없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딸. 고등학교 시절에는 랍스터 요리, 치즈 케이크 등 자주 요리를 만들어 우리 가족은 즐거웠다. 지금은 무척 바쁘니 요리할 시간이 없다. 나의 첼로는 거실에서 산산조각으로 변해 안개 걷히자 두 자녀 데리고 뉴욕으로 떠나왔다. 참 가슴 아픈 세월이었지.
나중 줄리아드 학교에서 매년 약 700회 공연을 연다는 것을 알고 거의 매일 가서 천재들 공연을 보곤 했다. 댄스와 연극 등은 유료가 많아서 보고 싶은 마음과 달리 보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댄스와 연극 공연도 무척 좋다. 맨해튼에 사는 노인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는데 코로나로 잠들어 버려 모두 무얼 하고 지낼까.
날씨가 풀리니 서서히 맨해튼에 가봐야 할 텐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 회복될 때까지 좀 기다려야겠다.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정말 큰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