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수 Mar 02. 2021

늘어나는 역이민.. 약속의 땅은 없었다.


 주진우 (ace@sisapress.com)


 승인 2003.10.14 00:00



이민자 셋 중 한 명 국내로 ‘유턴’…일자리 부족한 캐나다 가장 심해


이민 역사 1백1년. 이민 열풍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폭발적인 때도 일찍이 없었다.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 9천5백75명 가운데 ‘여건만 허락하면 이민 가겠다’는 사람이 63.1%에 달했다. ‘계속 한국에 살겠다’고 한 사람은 26.1%에 그쳤다. 또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는 20·30대 가운데 72%가 이민을 꿈꾸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직·신세대 등 사회의 기둥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이민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만삭인 몸으로 원정 출산에 나서는 것도 이민의 사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이 딸린 너른 집에 큰 차, 영어와 과외 걱정 없는 학교 교육, 그림 엽서처럼 펼쳐진 이국적 풍경과 깨끗한 환경…. 이민 하면 이런 단면들을 떠올리지만 실제 이민자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전직 펀드매니저는 편의점에서 돈을 거슬러야 하고, 전직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공장에서 하루 종일 볼트를 조여야 하며, 선생님은 학교 수위가 되어 있는 것이 이민자의 현실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이민자도 부지기수다.



이런 이유로 이민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되돌아온 역이민자는 지난 한 해 3천2백84명. 2001년 2천6백19명에 비해 무려 25.4%가 늘었다. 지난해 해외 이민자가 1만1천1백78명이니 이민자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되돌아온 셈이다. ‘이민 실패자’라는 멍에 때문에 쉬쉬하고 있는 사람과 가족을 현지에 두고 귀국해 경제 생활을 하는 ‘기러기 아빠’의 수치까지 더하면 실제 역이민자는 통계치의 두 배 이상이라는 것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귀띔이다.특히 전체 이민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캐나다 이민자들의 유턴 현상이 가장 심하다. 직장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1998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떠났던 김부호씨(54)도 이민의 꿈을 접고 되돌아온 사람이다. 박사 연구원으로서 충남 대덕연구단지에서 20년 동안 태양 에너지를 연구하던 김씨는 캐나다 몬트리올 연구소에서 6개월간 연수를 마친 뒤 이민을 결심했다. 김씨는 “국내에서 연구원 신분으로는 미래가 불안했다. 무엇보다 5천만원 연봉으로는 두 딸 교육비로도 부족해 매월 100만원이 적자였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 해 12월 명예퇴직을 하고 이민을 떠났다. 김씨에게는 남다른 자신감이 있었다. 우선 태양 에너지 전문가라는 주특기가 확실했고, 영어 실력도 뛰어났다.



한국 교민끼리 ‘사기 도미노’ 현상 벌어지기도



그러나 그의 자신감이 산산조각나기까지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태양 에너지 개발이 활발하지 않아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섣불리 이민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김씨는 국내 기업이 캐나다에 진출하는 것을 돕다가 유턴을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전경무씨(48)와 함께 1년여 시장을 조사한 끝에 지난해 11월 이화여대 앞에 ‘기로스’라는 그리스 음식점을 냈다. 박사님이라는 체면은 내다버린 지 오래. 요즘 김씨는 앞치마에 모자를 쓴 채 음식을 만들고 쟁반을 나른다. ‘기로스’를 국내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로 키우는 것이 김씨의 꿈이다.



2001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났던 유제원씨(35)도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통업을 하던 그는 외환 위기 때 사기를 당해 ‘욱’하는 심정으로 비행기를 탔다. 캐나다가 살기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가보니 먹고 살 만한 것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씨는 캐나다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했다. “처음에는 여유 있게 이민온 사람들도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정이 말라 버린다. 한국 이민자들끼리 사기 치고, 사기당한 사람이 또 사기를 치는 식으로 사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한국 사람끼리 서로 경계한다.”



유씨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부모의 인생을 모두 투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바로 귀국했다. 이민 생활 2년 동안 돈과 시간을 허비했지만 유씨가 얻은 것이 아예 없지는 않다. 유씨는 캐나다 현지에서 배운 선진 교육 시스템을 들여오겠다며 영어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그는 국내에서 초등학교에 영어 원어민 강사를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캐나다 이민자는 언어 문제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하지만 1995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떠난 김을수씨(51)는 영어에 자신이 있었다. 영문과 출신으로서 20여년 영어 강사를 한 덕분이다. 게다가 김씨는 공고 출신이어서 전기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었기에 구직을 확신하고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김씨의 영어는 원어민과 거리가 있었고, 캐나다 현지에서 한국 자격증은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편의점 판매원으로 새 삶을 시작했지만 평생 학생을 가르쳐온 그에게 판매는 적성이 맞지 않았다. 1997년 캐나다 현지에 영어 학원을 차렸지만 이마저 외환 위기 때 한국 학생들이 귀국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김씨는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는 각오로 배수진을 쳤다. 공장 노동자·학교 수위 등 여덟 차례나 직업을 바꾸어 가며 캐나다에 정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러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한 공고 선생님이 캐나다로 건너와 얼음 나르는 일을 했는데 부인이 남편의 갈라진 손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결국 아내가 돌아가자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교편을 잡아 행복하게 산다는 말을 듣고는 나도 짐을 쌌다.” 김씨는 지난 1월 아내와 자녀 둘을 캐나다에 남겨두고 귀국해 인천시 부평구의 한 입시 학원에서 부원장으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역이민자 60~70% 다시 이민 떠나



이렇듯 영어 실력이 웬만큼 있고 확실한 특기를 지녔어도 이민에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이민자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이민 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막연하게 이민에 나서는데, 그럴 바에는 한국에서 열심히 사는 편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한울의 캐나다 이민 담당 김재윤씨(38)는 “캐나다·호주·뉴질랜드는 살기는 좋지만 한국인이 할 만한 마땅한 비즈니스가 없어 곤경에 처하면 역이민을 택하게 된다. 철저한 준비와 냉정한 판단 없이 이민업자들이 심어준 환상에 농락당한 것이다. 캐나다 가서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역이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역이민자 대부분이 되돌아와 한국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선진 교육 시스템을 맛본 아이들이 한국 교육을 따라 가지 못하고 방황해 가정 불화를 겪는 가정이 많다. 이혼도 흔히 일어난다. 그래서 역이민은 대개 ‘역역이민’으로 이어진다. 이민 전문 노영호 미국 변호사는 “역이민자 가운데 다시 이민을 떠나는 비율은 60∼70%인데, 대개 할 일이 많은 미국으로 떠난다. 이들은 이민을 가지 않으면 낫지 않는 지독한 이민병을 앓고 있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게 미국인가"…실망 역이민 급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