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6 토요일
하늘이 흐린 토요일 오후 며칠 전 본 야생화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갔지만 딱 두 송이 꽃만 피고 나머지는 잠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봄이 왔나 싶더니 다시 추운 겨울로 돌아가 호수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어린 아들 데리고 온 중국인 가족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니 난 옆에서 조용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하얀 갈매기는 날 위해 춤추지는 않는다. 한 장 한 장 사진 보기는 무척 쉽지만 반대로 사진 찍기는 땀과 노고가 든다. 매일 정오가 지나서 찾아가는데 매일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호수. 내 마음에 예쁜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다 주택가 앞에 버려진 포장지를 보고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사용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집에 가져오지는 않았다.
꽤 오래전 맨해튼 월가에서 특별 이벤트를 보러 갔는데 내가 빌딩에 놓여 있는 꽃이 예쁘다고 하자 화원에서 일하는 분이 트럭에서 화분을 꺼내 내게 주셨다. 처음 보는 분이 주니 약간 고민하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받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화분만 주니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
그날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열리는 특별 이벤트를 보러 가야 하는데 화분을 들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지하철을 타고 콜럼버스 서클 역에 내려 홀 푸드에 가서 휴대용 종이 가방 두 개를 구해 화분을 담고 도서관에 갔다. 그러니까 월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미드타운으로 와서 다시 어퍼 웨스트사이드 링컨 센터로 갔다. 승객도 무척 많은 지하철에서 화분을 들고 있으니 무척 불편했는데 참았다.
공연 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수 차례 환승해야 하는 입장. 링컨 센터 역에서 타임 스퀘어 역으로 가고 다시 7호선에 환승 플러싱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 화분 하나 들고 소동을 피우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딸이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디서 났어?"
"월가에서 일하는 분이 주더라."
"뭐? 여긴 뉴욕이야. 위험해. 당장 갖다 버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난 종일 애쓰고 집에 가지고 왔는데... 좀 난처한 표정을 지을 때 딸은 화분을 들고 아파트 지하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왔다. 뉴욕이 참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그날 그분은 월가 빌딩 화단에 식물을 심고 화분을 놓고 남은 게 있다고 하면서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내게 주셨다.
미국 포장지 값이 무척 비싸다. 그래서 살짝 유혹도 받았는데 딸이 생각나 가져오지 않았다. 정착 초기 미국 대형 문구점에 가서 비싼 가격에 충격을 받았다. 한국과 다른 미국을 또 한 번 느꼈다. 개학 준비를 하는데 수 백 불이 드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미국 학비도 비싸고 책값도 비싸고 보험료도 비싸고 렌트비도 비싸고... 옷값은 저렴하다.
산책은 언제나 즐겁다. 잠시 혼자 산책하고 즐기면 좋을 텐데 사진 찍어 작업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사진 작업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말아 집에 돌아오면 바쁘다.
오후 블로그 지인 남편이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단 슬픈 소식을 블로그에서 읽고 놀랐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사는 분인데 오래전부터 가끔 안부를 전하는 사이다. 그분의 귀여운 아드님이 올리브 동산에서 꽃을 꺾어 엄마에게 선물했다고 하니 내 아들에게도 가끔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아들에게 그분 소식을 전하자 위로의 말을 했어요,라고 물었다.
"응, 놀라서 간단히 안부 적었어."
그분 삶도 참 특별하다. 대학 시절 아버지 사업이 망해 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힘든 형편이었다고. 나중 일본에 유학 가서 혼자 힘으로 돈 벌며 지내 학위를 마쳤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 후 대학원 논문 위해(오래전 기억이라 약간 흐리지만 그런 거 같다) 이탈리아에 갔다고. 피렌체에서 이탈리아 남자와 인연이 되어 결혼하고 사는데 통역과 강사 생활을 하다 작년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구했는데 일본어 강사라고 하니 재주가 얼마나 많은 분인가. 외국에서 산지는 거의 30년이 되어간다고 들었다. 일주일 후에 그분 남편 건강 검진 결과가 나온다고.
나이 드니 무엇보다 건강이 염려가 된다. 젊을 적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 힘든 레지던트 과정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 받고 군 복무하다 뇌종양 선고를 받고 치료를 받던 지인도 떠오른다. 한국을 떠난 지 꽤 오래되어가니 그 후 소식은 듣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6개월 시한부라고 했지만 꽤 오래 살았다. 친정아버지도 책을 집필하다 무리하다 당뇨병이 찾아왔다. 평소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가끔 잊고 산다. 그래도 아들과 함께 운동을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데 지난 2월은 너무너무 추워 운동하기는 어려웠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과 영양분이 가장 기본이다. 마음 건강도 중요하다. 복잡한 마음 훌훌 털어버리고 살자. 마음이 아프면 큰 병이 생긴다. 참 복잡했던 내 삶.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병이 나서 하늘로 떠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된다. 슬픈 일도 무진장 많지만 참고 견디고 기다리고 산다.
무척이나 추운데 봄날이라 플러싱 주택가에 매화꽃이 피어 반가웠다. 망원 렌즈도 없고 이웃집 뜰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사진 찍기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