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7 일요일 맑음
교회 종소리 들려오는 일요일 오후 호수에서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며칠 겨울처럼 추워 다시 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었다. 3월인데 겨울보다 더 추워 마음의 온도가 추운 걸까 생각했다. 혹한 덕분에 사르르 녹았던 호수가 다시 얼어 있는 부분이 있어서 전날과 다른 호수 풍경을 보여주었다.
하얀 갈매기는 내 모델이 아니라서 날 위해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니고 지맘대로 행동을 한다. 모델료 줄 형편도 아니다.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이 좋다. 마음 편해 좋고 만나면 즐겁다.
갈매기는 가끔은 하늘을 날고 가끔은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난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일요일이라서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이 더 많았다.
세 명의 어린아이들이 호수에 빠진 테니스 공을 나뭇가지로 주우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여 옆에서 지켜보다 내가 도와주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공을 집어 올리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공이 호수에 빠진 지 오래되었는지 꽤 무거웠다. 집중하고 기를 모아 힘껏 들어 올렸다. 세 명의 어린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떻게 했어요?"라고 말하니 웃었다. 어려운 일 많이 하면 생기는 마음의 힘이라고 말하려다 미소만 지은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백인 남자가 내게 다가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난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먹이 주는 사람들도 더 많아 야생동물이 신났다. 하얀 갈매기 나는 속도는 어쩌면 비행기 속도와 비슷할까 짐작할 정도로 빠르다. 본능일까. 먹이 주는 사람이 보이면 내가 모른 사이 재빨리 날아간다. 그제야 멀리 먹이 주는 사람이 온 것을 알아챈다.
며칠 상당히 추워 쿨쿨 잠든 야생화를 다시 보러 갔는데 여전히 춥지만 햇살이 따스해 혹시나 하고 갔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며칠 하루도 빼지 않고 찾아갔다. 꽃은 피면 대개 열흘 정도 가니까 금세 시들어 버릴지 모르니까 마음이 초조하다. 꽁꽁 언 땅에서 피는 봄에 피는 야생화라서 더 예쁘다. 눈물 속에서 역경 속에서 꿈을 이뤄하는 사람들이 더 아름답듯이.
일요일 아래층 그리스 이민자 노인 부부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중세 음악 같은데 어쩌면 종교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옆집에서는 재즈를 연주한다. 덕분에 음악 속에 산다.
일요일 아침 아들이 딸에게 "누나 행복해?"라고 말했다. 딸이 큰 회전의자를 부둥켜안고 나사로 조립하고 있었다. 아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의자를 조립하다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누나에게 부탁했다. 둘 모두 열심히 하더니 "이건 불량품이야."라고 말했다. 창고에 있는 공구가 오랜만에 힘든 일을 했다. 쉬다가 하니 힘들었을 거야.
조립식은 더 저렴하지만 직접 만들어야 하니 나처럼 손재주 없는 사람은 힘들고 불량품이 있으면 골치 아프다. 두 자녀 고생한 것을 보면서 난 혼자 호수에 다녀왔으니 염치없는 한량인가 보다. 호수에 가서 멋진 풍경 보면서 신선 같다고 하니 딸이 엄마가 신선인지 한량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얼마 전 말했다. 어렵고 복잡한 형편인데 모든 걸 딸이 책임을 지고 있으니. 엄마 대신 가장 역할을 하는 딸.
내 힘으로 회전의자 조립하지 못하니 혼자 호수에 다녀왔는데 이미 완성이 되어 있었다. 불량품이라 더 힘들었을 텐데 두 자녀가 힘을 모아 해결했나 보다. 아들이 "이건 엄마가 사용하세요. 힘들지만 엄마를 위해서 완성했어요."라고 말했다. 실은 아들 의자가 불편하다고 며칠 전 말했다. 딸이 그 말을 듣고 아마존에서 탁자와 의자를 주문했다.
정착 초기 구입한 IKEA 가구는 골동품으로 변했다. 박물관에서 전시하면 좋을 정도다. 다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가구로 변했다. 가격은 저렴한데 가구 수명이 짧다. 원래 아들 위해 조립한 의자는 아들 대신 엄마가 사용하라고. 나 역시 정착 초기 구입한 20불짜리 의자를 지금껏 사용하고 있었다. 여찌껏 사용한 게 신기하다. 혹시나 저렴한 의자 사용하다 허리 아프면 큰일이니 사용하라고. 어렵게 조립한 의자 대신 아들은 낡은 의자를 사용한다고. 정착 초기 조립식 가구값은 무척 싸고 반대로 학용품은 얼마나 비싸던지. 뉴욕은 한국과 다른 게 많았다.
있어도 없다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만든 사람들도 꽤 많다. 집도 의료보험도 매달 나오는 생활비도 있는데 하루 종일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들 보면 웃음이 나온다. 물론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다르니까 그러겠지. 우리 집은 그냥 산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루하루 산다. 새로운 땅에 새로이 태어나지만 않았으면 지옥 같은 고생을 하지 않을 텐데 운명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나. 날개 하나만 부서지지 않았다면, 부자 부모가 엄청난 재산을 준다면 삶이 확 달라질 텐데... 어떠겠어. 내 운명인걸. 인생이 뜻대로 되나. 가만히 있어도 하늘에서 복이 떨어진 사람도 있고 반대로 죽을 고생을 해도 안 되는 일이 많아서 슬픔 속에서 눈물을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 삶이 다 달라. 마음도 다 다르더라.
정착 초기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왔다. 한 달 동안 롱아일랜드 힉스 빌 IKEA에서 구입한 가구를 조립했다. 두 자녀는 눈만 뜨면 가구를 조립하기 시작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그때는 딸이 90% 정도 조립했다. 어린 아들은 자기가 사용할 침대만 조립했다. 무거운 조립 가구를 IKEA 선반에서 끌어내는 것도 얼마나 힘들던지!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눈물 눈물 눈물을 먹고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때 추억도 떠오른다. 한국에서 이삿집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고 뉴욕에서 새로 구입하기도 하니 집집마다 형편이 다르다. 나도 부자라면 새로 고급 가구 구입하면 편하고 좋았을 텐데... 로또만 당첨되면 전부 버리고 다 새로 살 거다. 기다려봐. 웃을 날도 오겠지. 눈물로 참고 견디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길더냐.
오후 아들이 만든 스무디도 먹었다. 비싼 스무디 재료는 딸이 구입했고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넣어 만드니 복잡해서 계량컵으로 재서 이거 저거 넣는다. 처음에는 딸이 스무디를 만들다 이젠 아들이 만든다. 두 자녀 덕분에 호강하고 산다.
멋진 봄 호수 풍경 보니 신선 같아서 좋고 꽁꽁 언 땅에서 피워 나는 야생화 꽃 봐서 좋고 멋진 회전의자 사용하니 좋고 스무디도 먹으니 좋았다. 종일 콸콸 솟는 행복의 샘물을 마시며 행복했다. 착한 일도 했다. 어린이에게 호수에 떨어진 테니스공을 꺼내 주었다. 보기와 달리 엄청 힘들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