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8 월요일 맑음
이상하게 갑자기 30년 전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맘때 즈음이었던 거 같다. 3월 초. 낯선 곳을 찾아가기 위해 혼자 고속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 볼륨을 크게 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운전하기를 무척 싫어하는데 낯선 곳을 찾아가려니 무척이나 힘들었다.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종이 지도 보고 찾아가니 답답하고 두려움이 앞섰다.
당시 유행했던 곡인데 뉴욕에 와서는 한국 가요를 잘 듣지 않는데 갑자기 30-40년 전 자주 들었던 곡이 듣고 싶었다. 한국 가요를 잘 듣지 않는 이유는 슬픔 속에 잠겨 헤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슬픈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힘든 이민생활을 견디기 힘들다. 고등학교 시절 자주 들은 폴 모리아 악단과 리처드 클라이더만 연주를 들으니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 삶이 얼마나 달라질지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꿈만 꾸며 살았는데...
함께 음악을 자주 듣던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학 졸업 후 소식이 끊어졌으니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내게 무척이나 친절했던 친구였다. 함께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흑백 사진도 찍었다. 그때는 사진이 무척이나 귀하던 시절.
함께 영화 보고 음악 듣던 친구들이 무척 그립다.
이십 대 삼십 대에도 난 세상을 몰랐다. 하고 싶은 것도 너무너무 많고 두 자녀 교육으로 너무 바빠서 일부러 모임을 피하기도 하니 더더욱 세상을 몰랐을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교사, 교수, 치과 의사 등 사회 활동을 한다.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되었으니 지금은 사직서를 제출했는지는 모르겠다.
대학에 입학 후는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나랑 취향이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딴 세상이었다. 취향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고 꿈도 다르고 결국 삶이 너무나 다르다. 대학시절까지 유럽에 열광했는데 뉴욕에 줄리아드 학교가 있어서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왔다.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 주위에 미국에 이민 간 사람은 없어서 이민이 뭔지 전혀 몰랐다. 미국과 인연 깊은 사람은 딱 한 명 박사 과정 학생이었다. 서울 스카이 대학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 과정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가 내게 뉴욕 롱아일랜드를 소개했다.
2월 약간 무리했는지 몸이 안 좋아 오늘은 푹 쉬었다. 루틴대로 호수에 찾아갔는데 주말과 달리 조용했다. 경칩이 되자 거북이들이 호수 중앙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어 반가웠다. 다른 날 보다 더 오래 호수를 바라보며 따뜻한 햇살을 받고 거닐었다.
늦은 오후 아들과 함께 400미터 트랙을 달렸다. 3월부터 맨해튼 나들이하려고 했는데 몸이 안 좋아 회복될 때까지 나들이를 자제해야겠다. 보고 싶은 전시회도 많은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아들과 내게 멤머십에 가입해 달라고 요청하는 레터가 도착했다. 오페라도 보고 싶은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한국에서는 오페라 볼 기회조차 없었는데 뉴욕에 와서 맨해튼 음대와 줄리아드 학교에서 보컬 공연을 자주 감상하다 보니 저절로 오페라에 관심이 가고 그렇게 인연이 되었다. 보면 볼수록 좋은 오페라. 작년 2월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 보니 메트 오페라 볼 시간이 없어서 3월부터 오페라 막을 내리는 5월까지 자주 오페라 관람하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찾아와 공연이 중단되었다. 뉴욕 문화 가운데 베스트가 아닐지. 카네기 홀과 메트를 가장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