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1 목요일
점심 식사 후 딸과 함께 파리바케트에 가는 길 매화꽃과 야생화 크로커스 꽃을 보고 기뻤지만 멈춰 사진을 찍지 못하고 커피 마시러 갔다. 최고 기온 19도까지 올라가 봄이 아니라 벌써 여름이 다가온 듯 무더워 아이스 라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 손님이 거의 없어 조용했는데 잠시 후 계속 문을 열고 손님들이 들어왔다.
커피 마시며 잠깐의 여유를 보낸 것도 참 좋은데 커피값은 솔직히 싸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딸 덕분에 고급 커피 마시지만 난 평소 맨해튼에 가면 레귤러커피 한 잔도 감사함으로 먹는다. 밸런타인데이 레스토랑 실내 영업이 가능하니 내가 사랑하는 반스 앤 노블 북카페도 오픈했을 거 같은데 맨해튼에 간지가 꽤 오래되어 간다.
센트럴 파크에도 봄빛이 무르익어 갈 텐데 가 봐야 하는데 시간만 흐른다. 2월 말부터 몸이 안 좋아 쉬어야지 하다 날마다 꽃 사진 찍고 작업하느라 쉴 틈이 없다. 꽃을 보고 즐기면 될 텐데 나도 모르게 렌즈에 담는다. 꽃 사진 찍으며 천경자 화백이 떠오른다. 학생 시절 무척 좋아했는데 뉴욕과 인연 깊다는 것은 내가 뉴욕에 온 후 알게 되었다. 그녀 수필집도 읽었는데 나의 기억 창고는 하얗게 변했다.
목요일 아침 글쓰기 하고 아들과 운동하고 크로커스 야생화 꽃 사진 찍고 식사 준비하느라 무척 바빴다. 날씨가 좋아 트랙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들의 합창 들으며 파란 하늘 보며 달리며 이야기를 했다. 파란 하늘 구름 보며 아들은 용 같다고 하고 난 거대한 새 같다고 하며 여행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딸이 보스턴에 머물 때 매년 2차례 정도 보스턴에 여행 가서 보스턴이 미국에서 제2의 고향처럼 친숙하게 되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달리면 최소 4-5 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도 미국 내에서 가까운 편이다.
벚꽃이 필 때는 워싱턴 DC기 인기 많은데 오래전 딱 한 번 방문했는데 한국 벚꽃이 더 예쁘단 생각을 했다. 잊을 수 없는 진해 벚꽃 축제. 교사로 재직할 때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가서 처음으로 구경했는데 별천지였다.
가끔씩 함께 일했던 교사들도 생각나니 나이가 들어가나 자꾸 지난 추억을 떠올린다. 음악을 좋아하니 친하게 된 성악 전공한 음악 교사. 비싼 레슨비 내고 교수님에 레슨 받으러 다닐 때 이해하지 못했는데 뉴욕에 와서 오페라와 사랑에 빠진 후 조금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교사 급여에 비해 너무 비싼 레슨비라서 난 놀랐다. 좋아하면 돈이 아까운 게 아니다 보다.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연거푸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을 해버렸단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어 가슴 아팠다. 탤런트처럼 곱고 예쁜 미모의 선생님이 내가 휴직계 내고 아이 아빠 따라 전방에 갈 때 혹시 복직 안 하고 사직서 제출하면 어떠나 걱정했는데 말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 여자에겐 육아와 출산 문제가 참 무겁다. 자녀 교육이 힘드니까 너 인생이니 자유롭게 키운 엄마들도 있더라만 교육학 전공한 난 생각이 달랐다.
크로커스 야생화 꽃은 오래전부터 뉴욕과 보스턴에서 봤는데 이름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꽃말이 후회 없는 청춘이라고. 후회 없는 청춘을 보내야 할 텐데... 무척 힘들었던 나의 젊은 날. 대학 시절 꿈만 꾸며 살았지. 캄캄한 세상에서 얼마나 답답했나. 힘든 숙제 하고 빈 시간에 클래식 기타 연습하고 책 읽고 가끔 친구들 만나고 아르바이트 몇 개 하니 무척 바빠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틈이 없었다. 매년 봄과 가을 정기 연주회 열리는 즈음에는 합주 연습하고 자정이 지나 집에 들어가곤 했다.
교직 발령을 받은 후도 무척 바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바이올린을 첫 급여받아서 레슨 받기 시작했으니 더 바빴다. 첫 출근할 때는 집에 오면 쓰러진다.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서 일본어도 공부하고 책도 읽고 레슨 받고 수업 준비하고 학교에서는 종일 수업과 보충 수업하고 사무 처리도 했다. 60명이 넘는 학생들 담임 맡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장이 어디에 있으리. 치열하게 살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소수 일 거다. 귀족으로 태어나 아무것도 안 해도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 나머지는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20대는 내가 뉴욕에 올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어느 날 운명의 바람이 불어 7천 마일 떨어진 뉴욕에 오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 오면 새로이 탄생하니 하루아침에 삶이 안정되지 않는다. 물론 운 좋거나 능력 많은 사람은 다르겠지만 보통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다. 언어와 신분 장벽도 높기만 하고 고국처럼 먹고사는 문제는 세상 어디나 다 마찬가지라서. 70년대 미국은 이민자가 와서 기회를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회 조차 없다. 점점 보통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딸과 집에 돌아온 후 나 혼자 다시 매화꽃 사진을 찍으러 갔다. 한국에서 본 꽃이라 더 반갑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해서 한동안 날 기쁘게 할 거 같다. 화사한 매화꽃 찍으며 봄 향기를 만끽했다. 연보랏빛 크로커스 꽃도 찍으며 꿀벌의 비행 소리도 듣고 호수에 갔다.
오후 3시 반 무렵 공원에 사람들이 많았다. 연 날리는 꼬마와 기러기 괴롭히는 꼬마들도 보았다. 호수 빛은 시시각각 변하고 난 조용히 호수를 바라본다. 사진은 빛의 예술. 찰나를 잡아야 한다. 봄햇살이 비추는 호수에서 마법이 일어난 순간 셔터를 눌렀다. 그때 한인 중년 두 명 이야기가 들려왔다.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었는데 쫄딱 망했어. 술도 마시고 골프도 쳤는데. 다섯 명 친구 가운데 똑 바른 놈은 한 명도 없어..."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플러싱은 중국 이민자와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 화사한 봄날이라 한인들도 많이 보였다. 한국어를 구사하면 그제야 한인이라고 생각한다. 외모로 구분하기는 점점 어렵다.
프랑스 소설 등에서 돈 많이 벌어 쫄딱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설이 그냥 상상이 아니라 삶에서 가져온 이야기란 것을 늦게 깨달았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내용이 궁금하지만 낯선 분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물을 수 없었다.
뉴욕 한인들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나뉜다. 능력 많고 돈 많은 부자들도 꽤 많이 산다. 반대로 힘들게 일하며 고달픈 인생을 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다. 이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브런치북 <미국 이민과 유학을 꿈꾸는 분들>에 적혀 있다.
가끔 한인 마트에서 그로서리 쇼핑하고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막걸리와 과자만 구입하는 한인도 보았다.
나도 이민에 대해 모르고 왔다. 애초에 두 자녀 교육을 위해 왔다. 주위 이민 간 사람이 없어서 몰랐다. 과거 이민에 대한 책도 영화도 드물어서 몰랐다. 보통 사람 삶이 3차원이라면 이민은 최소 5차원인 거 같다. 내 생각이다. 그만큼 이민은 어려움이 많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만 보인다. 남의 떡이 크게 보인다. 살아보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 어쩌다 성공한 사람 이야기 듣고 이민 가면 다 성공하나 보다 착각한 분도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처음 이민 올 때 영주권을 받든지 아니면 국제결혼으로 신분 장벽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 언어와 신분 장벽이 하늘처럼 높고 개인차가 크다. 학생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에는 좋은 성적 받아야지 하지만 실제 좋은 성적 받기는 쉽지 않다. 삶은 공부보다 훨씬 더 어렵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편히 쉬어야 하는데 종일 사진 작업하느라 바빴다. 한국도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을 하기 시작했는데 부작용으로 호소한 사람도 있는데 정부 보상받기는 무척 어려운가 보다. 코로나 팬데믹 선언한 지 1주년이 되어가는데 언제 코로나 전쟁이 끝날지 아는 사람은 없다. 파우치 말도 이랬다 저랬나 한다. 파우치는 몰라도 바이러스는 알고 있겠지.
지구촌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린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이면 좋을 텐데 전문가들은 앞으로 계속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세상이 공포의 실험실로 변해가고 있다. 어릴 적 공상 영화와 책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라도 읽어야 하나.
마음 복잡할 땐 산책이 최고의 선물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좋을 텐데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언제 공연을 볼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