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땅에서 초록빛 새싹이 트고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3월. 슬픈 일도 무진장 많아서 매일 꽃 향기 맡으며 위로를 받았다. 기억나는 일 몇 가지를 간추린다. 3월 첫날 딸에게 아이폰을 선물 받았다. 딸은 새로 구입하고 엄마에게 사용하던 아이폰을 주었다. 내 아이폰은 나이가 많아서 교체해야 한다고 하는데 미루고 미루다 선물 받아 감사했다. 휴대폰이 커피 한 잔 값이면 부담 없이 구입할 텐데 웬만한 컴퓨터 값이라서 부담이 된다.
정착 초기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는 휴대폰도 없이 살았다. 두 자녀 학교에 픽업하고 장 보러 가고 남은 시간은 전공책과 씨름을 해야 하니 전화받을 시간도 없고 전화 걸어 만나자고 할 친구도 없이 고독한 세월을 보냈다. 한국에서 늘 사용하던 게 없으니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며 세월을 보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해 휴대폰도 업그레이드되고 스마트 폰도 나오고 그 후로 아이폰이 나왔다.
아들은 4년 장학금을 주는 뉴욕 명문 대학교에 입학해 수업을 받기 시작했는데 숙제를 하려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휴대폰이 없다고 불평했다. 평소 아들은 불평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다른 거 몰라도 휴대폰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늦게 구입했다.
한국에서 누리던 그 모든 거 다 버리고 새로운 땅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우주여행처럼 무한도전이란 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다. 세상모르니 겁도 없었다. 용기와 꿈만 가지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뉴욕에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왔다.
또 새로운 의자 하나가 생겼다. 원래 아들이 사용하려고 구입했는데 이상하게 내게로 왔다. 딸이 동생을 위해 아마존에서 구입했고 아들이 힘들게 조립했다. 아들이 사용할 테이블과 의자를 딸이 주문했는데 테이블 높이가 너무 높아 수년 전 구입했던 의자를 사용해도 된다고 새로 조립한 의자는 엄마 몫이라고 말했다.
3월 서머타임도 시작했다. 한 시간 일찍 깨어나야 하니 초기 적응시간은 무척 피곤하나 해가 길어서 좋기는 하다. 매일 산책하면서 플러싱 이웃집 뜰에 핀 꽃들과 인사를 했다. 매화꽃이 가장 먼저 피고 야생화 크로커스 꽃도 꽤 빨리 피고 3월 말이 되어가니 보기 드물다. 3월 중순이 지나서 노란 수선화 꽃과 개나리꽃 피기 시작. 3월 말이 되니 별목련꽃이 피기 시작한다.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메트 뮤지엄, 브라이언트 파크, 센트럴 파크, 브로드웨이
딸과 맨해튼에 다녀오는 길 플러싱에서 진달래 꽃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뉴욕에서 귀한 꽃이라 더 반가웠다. 매화꽃, 수선화 꽃, 진달래꽃, 크로커스 꽃 등을 자주 보러 가서 작은 렌즈에 내 마음을 담아 기록했다. 한 장 한 장 사진에는 내 마음과 열정이 담겨있다.
두 자녀와 함께 메트 뮤지엄에도 방문해서 노란 개나리꽃 환영을 받았다. 그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상반신이 붙은 쌍둥이를 보아 특별한 날이다. 상반신은 둘 다리는 하나.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내 눈앞에 있으니 신기했다. 어떤 삶을 살아갈지 몹시도 궁금했다. 서로 취향이 다르면 누가 결정을 하는지. 쌍둥이라도 모든 게 다 같지는 않을 텐데...
쌍둥이 키운 게 정말 어렵다고 들었다. 대학 시절 동창도 쌍둥이였다. 노래 잘 부른 남자를 좋아한 친구는 의사랑 결혼해 미국 서부 텍사스 휴스턴에서 잠시 살았다. 내가 뉴욕에 온다고 할 때 중고차 구입하지 말고 꼭 새 차를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친구 여동생도 의사랑 결혼. 그 친구가 유대인 조심하라고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먹을 때 이야기해서 웃었던 추억도 떠오른다. 세상 사람 다 이혼해도 내가 헤어질 줄 몰랐다고 말했던 친구들. 나 역시도 몰랐다. 세상도 모르고 남자도 몰랐다. 뉴욕에 와서 반스 앤 노블 서점에 가면 내가 모른 책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딱 그만큼 난 세상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거의 모른단 말이다. 세상은 어릴 적 내가 꿈꾸던 곳이 아님을 늦게 깨달았다. 아픔과 고통이 날 깨어나게 한다.
5번가 성 패트릭 성당에 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와 타임스퀘어와 5번가와 센트럴 파크와 그리니치 빌리지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도 방문하고 몇 번 스시를 먹으러 일식 레스토랑에 가고 맨해튼 카페에 가서 이야기도 했다.
누 갤러리와 뉴욕 필하모닉과 맨해튼 음대 등에서 소식을 보내와 가끔 공연을 보기도 했다. 라이브 공연만큼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좋다. 코로나로 카네기 홀 공연과 메트 오페라와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 등에서 공연을 볼 수 없으니 뉴욕이 뉴욕이 아니다. 뉴욕의 최고는 공연 예술과 아름다운 자연. 뉴욕시에 공원도 많고 식물원도 많아서 자연을 사랑하는 산책자에게는 천국을 선물한다. 뉴욕을 사랑한 사람은 뉴욕에 살고 싶어 한다. 뉴욕은 천국과 지옥의 두 가지 빛을 모두 갖고 있다. 어떤 자는 지옥만 보고 산다.
3월 매화꽃을 자주 보러 가서 선비들이 왜 매화꽃을 사랑했는지 조금 이해했다. 퇴계 이황도 기생 황진이도 김시습도 사랑했던 매화꽃. 한국에서도 매화꽃을 보긴 봤는데 뉴욕에 와서 비로소 매화꽃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늦게라도 눈을 떠서 다행인가 모르겠다.
딱 한 번 늦은 밤 동네 호수에 가서 아름다운 야경을 봤는데 호수가 공사를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철새들과 호수 빛이 그리운데 언제 공사가 끝날까. 밤 호수 빛도 그날그날 다르다. 고흐 그림만큼 잊지 못할 추억을 주었던 호수 빛.
3월이 떠나기 전 퀸즈 식물원에도 다녀왔다. 브롱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과 브루클린 식물원을 더 자주 방문하고 내 집과 가까운 퀸즈 식물원은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식물원 규모도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장미 정원은 뉴욕 식물원과 브루클린 식물원이 좋고, 별목련꽃은 브루클린 식물원이 좋다. 소박하지만 퀸즈 식물원도 좋긴 하다. 한인은 드물고 중국인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야생화 꽃 향기 맡으며 산책하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폭풍이 휘몰이 치니 슬픈 일도 많았지만 향기로운 꽃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아름다운 3월을 보냈다. 매일 기도를 했다. 폭풍도 그치고 잠잠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