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_메트 뮤지엄과 센트럴 파크에서 추억들

소설 같은 하루였지

by 김지수

2021. 6. 10 목요일


또 하루라는 선물을 받았다. 24시간을 얼마나 멋지게 사용하는 것은 내게 달렸다. 상황은 항상 내게 좋은 쪽으로 흐른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불평불만만 하면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삶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아름다운 꿈을 꾸고 노력하면 언젠가 새로운 문이 열리리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 더 일찍 깨어난 것은 무더위 때문. 너무너무 더워 창가에 설치된 작은 에어컨을 켰다.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루틴대로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장미꽃, 수국 꽃, 옥잠화 꽃, 백합꽃, 인동초 꽃 등의 향기를 맡으며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다.


정오가 되기 전 아파트를 조사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지난 5월 프로비던스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그날 저녁에 아파트 슈퍼가 찾아와 말했다. 정확히 몇 시에 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다렸다. 오두막에 아침 10시 반 경 낯선 분이 작은 기기를 가지고 와서 벽에 대고 측정을 했다. 10분 후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하고 그녀는 떠났다.


그녀가 떠난 뒤 식사를 하고 외출을 했다. 맨해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본 목요일 하루였다. 나의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려는데 낯선 여자가 내게 다가와 "지난번 당신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니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아지트에서 롱아일랜드 포트 워싱턴에서 오래오래 살던 오페라와 스포츠와 록 음악 등을 사랑한 남자와 그분 지인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던 그날 날 보았다고.


내가 모르는 사이 날 지켜보았단 그녀의 말을 듣고 신도 종일 날 지켜보고 있나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날 관찰하고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을 관찰한다는 점도 재밌다.


콜럼비아 핫 커피 한 잔 마시고 책을 잠시 읽었다. 새벽 4시에 깨어나 피곤했는데 커피 한 잔 마시니 정신이 깨어나 책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코로나 전 보다 아지트에 손님은 많지 않아서 조용했다.


IMG_2283.jpg?type=w966
IMG_2308.jpg?type=w966 센트럴 파크 쉽 메도우



그리고 얼마 후 책을 덮고 아지트를 떠났다. 오후 3시에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에 방문 티켓을 미리 예약해서 센트럴 파크를 경유해 찾아갈 예정이었다. 하얀 말 까만색 말 초콜릿 색 말들이 이끄는 마차들이 숲 속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은 언제나 그림 같으나 사진을 찍지 않고 계속 걸었다. 사진 작업이 너무 피곤하니 앞으로 사진 촬영을 줄이자는 생각이 든다.


90대 여류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쉽 메도우에 도착했는데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서 고요했다. 피크닉을 하기도 하고,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노트북을 가져와 일을 하기도 하고, 눈을 감고 휴식을 하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는 공원.



IMG_2302.jpg?type=w966
IMG_2309.jpg?type=w966
IMG_2311.jpg?type=w966 센트럴 파크에서 90대 할머니 화가를 만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혹시 하얀색 옷을 입은 할머니가 왔는지 멀리서 봤는데 하얀색 옷은 보이지 않아서 화가 할머니가 오지 않은 줄 알았다. 카페 근처로 가까이 가니 할머니가 검은색 의상을 입고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날 공원에서 매일 그림을 그리는 분. 얼마나 놀라운가. 행복이 넘치는 분이다. 건강하고 좋아하는 일을 죽는 순간까지 하는 것은 축복이다.


생각하니 며칠 전 소나기 내릴 때 할머니 뵈었는데 그날 그린 그림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한 번도 그분과 말을 나눈 적은 없다. 할머니 눈빛은 쉽 메도우 풍경 와 캔버스에 집중한다.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반짝거린다.



IMG_2329.jpg?type=w966
IMG_2333.jpg?type=w966
IMG_2327.jpg?type=w966
낭만적인 센트럴 파크 호수 풍경은 언제 봐도 멋져.




그분을 뵈고 떠나 베데스다 테라스와 분수를 향해 걸었다. 새들도 더운지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하고 있어 웃었다. 기타 음악 소리 들리는 테라스와 분수를 거쳐 호수 앞에 도착하니 거리 음악가가 노래를 불러 좋았다.


서서히 깨어나는 뉴욕. 거리 음악가 노래도 들으니 좋다. 노래도 잘한다. 호수에서 수영하는 거북이 떼도 보고 여름날 낭만적인 추억을 만드는 보트 타는 사람들을 보며 메트를 향해 걷다 공원에서 빠져나와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가고시안 갤러리에 방문해 전시회를 보았다.


한때 거리에서 그림을 팔다 지금은 세계 최고 아트 딜러가 된 가고시안. 첼시에도 가고시안 갤러리가 있고 메디슨 애비뉴에도 있다. 바닥도 천정도 벽도 귀족 같은 갤러리가 내 집이라면 좋겠다. 그럼 매일 센트럴 파크에 갈 텐데...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테니스 코트를 그린 그림을 보고 다시 빨리 걷기 시작해 메트에 도착했다.


맨해튼 부촌 어퍼 이스트 사이드 거리에도 홈리스 할아버지가 보였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 같았지만 차마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 텐데... 홈리스가 된 사연이 궁금하지만 말을 걸기는 쉽지 않다.


IMG_2362.jpg?type=w966 코로나로 잠들다 다시 깨어난 메트 뮤지엄 앞 풍경


오랜만에 메트에 방문했다. 매일 갈 수도 있는데 게으른가. 뉴욕에 살며 좋은 점은 세계적인 박물관이 아주 가깝다는 점. 한국에서는 학생 시절 수학여행 가서 경주 박물관 등에 방문하니 박물관이 멀기만 했다.


무더위 피서하기 좋은 장소는 북카페와 뮤지엄이다. 메트에서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입구에서도 기다리고 루프 가든 전시회를 보기 위해 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위해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앨리스 닐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방문객이 많아서 티켓을 받는데도 꽤 오래 기다렸다. 내 앞에서 기다리는 두 분 할머니는 코스모스 꽃 같이 하늘하늘한 몸매. 친구랑 함께 뮤지엄에 방문한 것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내 뒤에는 젊음이 별처럼 빛나는 20대 아가씨 두 명이 기다렸다. 의상도 몸매도 예술이었다.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 기분 나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IMG_2365.jpg?type=w966
IMG_2380.jpg?type=w966
IMG_2420.jpg?type=w966 메트 루픈 가든은 한시적으로 연다. 사랑스러운 루프 가든에 올라가 봐라.


뉴욕 시민들은 뉴욕 주소가 적힌 신분증을 보여주면 약간의 기부금만 내고 입장할 수 있는 메트 뮤지엄. 티켓을 받아 루프 가든에 갔다. 엘리베이터를 바로 탑승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래오래 기다렸다. 메트 루프 가든은 한시적으로 연다. 작년에 코로나로 열지 않아서 볼 수 없어서 꽤 오랜만에 올라가 뉴욕시 정경을 바라보았다. 귀족들이 사는 하늘 높이 솟아나는 빌딩 숲. 센트럴 파크 근처 빌딩에 나도 살 날이 찾아올까.


가끔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는데 운명의 파도를 타고 멀리 수 천 마일 떨어진 뉴욕에 온 것도 어쩌면 어릴 때부터 꿈을 꾸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의 위기 한복판에서 탈출했지만 돌아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뉴욕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때는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슬픈 일이 많이 찾아올지 몰랐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40대 중반 아무도 없는 낯선 뉴욕에 와서 두 자녀 교육을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인생 전부를 건 대모험이었다. 비록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언젠가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매일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나.



IMG_2438.jpg?type=w966
IMG_2449.jpg?type=w966
IMG_2443.jpg?type=w966
다시 보러 가고 싶은 앨리스 닐 특별전/ 새치기 한 할머니 기억하기 위해 뒷모습 찍었다.



메트에서 오래 머물 여유가 없다. 왜냐면 난 플러싱에 살고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앨리스 닐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도 꽤 오래 기다렸다. 하마터면 보지 못할 뻔했다. 직원이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선은 그었다. 난 마지막이었다. 내 뒤에 예쁜 주홍빛 베레모를 쓴 할머니가 지팡이를 들고 와서 전시회를 보고 싶다고 했지만 직원은 이미 끝났다고 했다. 그런데 특별전을 보러 안으로 들어가니 나 보다 더 먼저 도착해 전시회를 보는 할머니. 그러니까 새치기였다. 특별전이라서 오래 보고 싶은데 시간이 촉박했다. 신데렐라는 자정까지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난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 일찍 돌아가야 하는데... 할 수 없이 뮤지엄을 나왔다.


메트에서 플러싱 집으로 돌아오는데 편도 4회 환승. 자주 환승할 경우 버스와 지하철 연결에 따라 교통 시간이 단축되기도 하고 반대로 오래오래 걸릴 수도 있다. 난 후자였다. 바로 연결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메트 앞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날 보고 1달러와 25센트 동전 있냐고 묻는 여자. 뉴욕 지하철 1회 교통비가 2.75불인데 모르니 당연 여행객.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오레곤 주에서 왔다고.


대학원 시절 만난 교수님이 오레곤 주로 가신다고 하셨다. 유대인 출신 교수님 부인도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셨지. 명성 높은 마크 로스코 화가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오레건 주 포틀랜드에 정착했다. 바로 거기서 뉴욕 여행 오셨다는 분을 만났다. 화사한 미소가 날 행복하게 했다. 자연이 무척 아름답다는 오레곤 주도 방문하면 좋을 텐데...


꽤 오래 기다린 후 시내버스에 탑승해 플라자 호텔 근처에 내려 지하철역에 갔다. 도착하니 막 떠나 다시 기다렸다. 다음에 오는 지하철을 타고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 도착해 다시 7호선을 기다렸다. 새벽에 깨어나 종일 움직이니 피곤하니 빈자리가 있으면 앉고 싶은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다음에 오는 익스프레스에 탑승했는데 운 좋게 가방이 놓인 빈자리를 발견하고 기뻤다.


그런데... 그녀는 가방을 치워주지 않았다. 까만색을 무척 사랑하는 그녀 의상도 운동화도 백도 가방도 양말도 모두 모두 까만색이었다. 내가 가방을 치워 달라고 하니 인상을 쓰고 거절하는 그녀. 그녀 마음도 시커먼 까만색이었나.


그녀도 나도 교통비를 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왜 두 사람 자리를 사용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험악한 인상을 보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좋은 사람도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끔은 피해야 하는 부류도 있다. 상대할수록 피곤한 사람은 차라리 피하는 게 좋다.


어렵게 플러싱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에 탑승해야 하는데 정류장에 도착하니 막 떠나고 있었다. 이미 늦어 다시 기다렸다. 그래서 모카 빵을 사러 뚜레쥬르에 갔는데 줄이 너무너무 길었다. 대개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많으니 빨리 사서 나오고 싶은데 너무너무 느리게 일을 처리했다. 내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날 보고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나랑 같은 생각을 한다는 말. 제발 빨리 처리해요, 란 말을 미소로 말했다.


빵을 사서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너무 늦어져 저녁 식사가 늦어질 거 같아서 아들에게 부탁했다. 중국집보다 더 맛있는 새우 볶음밥을 먹었다. 요리를 사랑하고 요리를 잘하는 아들 덕분에 호강한다.




IMG_2458.jpg?type=w966
IMG_2459.jpg?type=w966
IMG_2457.jpg?type=w966
내게 행복을 준 아이스 팥빙수와 아이스 딸기 빙수


저녁 식사 후 딸은 일을 마치고 산책을 가서 내가 무척 사랑하는 아이스 팥빙수와 아이스 딸기 빙수를 사 왔다. 무더운 여름날이라 빙수가 생각나야 할 텐데 난 잊고 지냈다. 세상에 내가 그리 좋아하는 아이스 팥빙수인데. 뉴욕 삶이 얼마나 힘들고 복잡했으면 빙수를 잊고 지냈나. 오래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 바이올린 선생님을 만날 때도 식사 대신 빙수를 먹었다. 플러싱 노던 한인 마트 근처에서 사 온 빙수 맛은 최고였다. 가격이 13불이니 꽤 비쌌지만 만족스러웠다.


뉴욕에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상실한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예술을 사랑하는 분에게는 천국이지만 가난한 서민의 현실은 지옥에 가깝다. 슬픈 지옥 속에서 꿈꾸고 산다.




플러싱 여름 정원


IMG_2258.jpg?type=w966
IMG_2260.jpg?type=w966
IMG_2257.jpg?type=w966
IMG_2259.jpg?type=w966
IMG_2275.jpg?type=w966
IMG_2274.jpg?type=w966
IMG_2240.jpg?type=w966
IMG_2279.jpg?type=w966
IMG_2241.jpg?type=w966
날 천국으로 안내하는 아침 산책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태양이 작열하는 오후_뉴욕 식물원 쿠사마 야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