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9 수요일 맑음
아들과 뜨거운 태양 열기 받으며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세탁물을 담아 아파트 지하에 내려갔는데 유령들 파티 장소 같았다. 청소라도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쓰레기통은 넘치고 바닥은 지저분해 뭔가 일이 곧 터질 듯한 느낌인데도 우리가 사용할 빈 세탁기가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세탁물과 세제를 넣고 동전을 넣고 집으로 돌아와 30분 후 건조기로 옮기려고 내려가 세탁기 뚜껑을 열었는데 날 놀라게 사건이 발생했다. 내 동전만 먹고 세탁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하필 뉴욕 식물원에 가려고 티켓을 예약했는데 세탁기 안에는 외출복이 들어있으니 난감했다.
아, 어쩌랴...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슈퍼에게 전화를 해서 세탁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니 동전을 돌려준다고 하더니 소식이 없다. 가끔씩 세탁기가 말썽을 부리지만 동전을 먹은 채 세탁이 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30분 후 다시 내려가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기고 1시간 후에 찾으러 가니 건조기에 든 이불은 마르지 않았다.
35년이 되었다고 했던가. 한국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상황을 뉴욕에 와서 경험한다. 가난한 서민의 설움을 누가 알까.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식사 준비를 하는데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참고해야지.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세탁물 찾아와 정리하고 식물원에 가려고 밖으로 나가니 시내버스는 스케줄보다 더 먼저 떠났다.
한바탕 세탁 소동을 벌이고 외출했는데 시내버스와 인연이 없어서 작열하는 태양의 사랑을 받고 걸었다. 집에서 약간 떨어진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멀리서 내가 타고자 하는 파란색 버스가 달리고 있다. 그럼 난 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말.
시내버스 정류장에 기다려 파란색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빈자리가 없다. 아... 그뿐만이 아니다. 에어컨이 전혀 시원하지 않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숨쉬기도 힘들었다. 승객이 많아서 그런가. 식물원에 갈 때 이용하는 시내버스 승차감은 지옥이다. 덜컹덜컹 움직이니 토할 거 같은데도 참아야지.
그런데 다시 환승해야 한다. 1차 목적지에 도착 다른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피곤해서 의자에 앉았는데 마약을 하는 흑인 여자가 내 옆에 앉는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더위라서 그늘에 앉았는데. 그녀를 피하기 위해 일어섰다.
얼마 후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그녀도 나와 같은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2차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려고 기다렸는데 그림자도 안 보여 그냥 걸었다. 태양이 활활 타오는 거리에서 방랑자처럼 걷고 걷다 뉴욕 식물원에 도착했다.
수요일 아침 나의 에너지를 바닥나게 하는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시러 카페에 들어가니 빈자리가 없다. 뉴욕 식물원 인기가 갈수록 높아만 가는가. 코로나 전에도 가끔씩 방문하긴 했지만 그렇게 방문객들이 많지 않았다. 요즘 정말 많아 복잡하다. 자연만큼 좋은 게 어디에 있을까. 숲 속에 들어가면 난 먼지 같은 존재란 것을 느낀다.
1929년 대공황 시절 일본에서 탄생한 쿠사마 야요이 화가 할머니 작품을 보러 티켓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처럼 티켓이 말썽을 부리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오후 태양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내가 사랑하는 수련꽃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햇살이 너무 강하니 사진 찍기도 어렵고.
쿠사마 야요이 갤러리를 보려고 티켓을 예약하려고 하니 인기 많아서 어려웠고 오후 입장 시간만 비어 있었다. 역시 오전이 좋은데...
뉴욕 문화가 특별하지. 식물원 티켓을 예약하기 어렵다는 것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뉴욕 식물원은 뉴욕 시민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코네티컷 주와 뉴저지주와 필라델피아 등에서 온 분들도 많다. 특별전이 열리니 인기가 많아서 더더욱 티켓 구입이 어려운 현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다. 90대 화가 할머니는 정신 건강과 투쟁을 하는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작가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물론 운도 따랐을 것이다. 운없이 성공하긴 어려운 세상이니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무명으로 살다 떠난 천재 작가들도 얼마나 많은가. 고흐도 생존 시 그의 작품이 잘 팔렸으면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지 않았을 텐데... 불운한 천재 화가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어렵게 어렵게 예약한 티켓으로 쿠마사 갤러리도 보고 록펠러 로즈 가든을 향해 걸었다. 사랑하는 장미를 보러 가지만 태양이 활활 불타오른 시각이라 마음 안에 갈등이 번졌지만 참고 로즈 가든에 도착하니 라이브 연주가 막 끝난 오후 4시였다. 뜨거운 여름날 누가 라이브 연주를 했나 보다. 방문객들도 많지 않고 장미꽃들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시들어 가고 있었다. 1주일 전 화사하게 핀 꽃들이 말없이 작별 인사 중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식물원을 찾아가니 상당히 피곤하지만 참는다. 수요일 저녁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뉴욕필 공연이 열리는데 나의 에너지는 바닥이라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록펠러 가든에서 출구로 나오는 데까지도 상당히 오래 걸린다. 그리고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또 오래 걷는다. 땡볕 아래 걷고 걷고 걸어서 식물원에 다녀왔다.
참 견디기 힘든 상황에도 무사히 세탁을 하고 식물원에 다녀왔다. 플러싱에 도착 한인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요즘처럼 무더위 식사 준비도 가볍지 않지만 매일 레스토랑에 갈 형편이 아닌데 참고 살아야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무진장 많다. 만약 내가 아침 소동에 기분이 언짢아 식물원 방문을 포기했더라면 천국의 풍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참 멀기만 하다.
가만히 있으면 행복이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불행은 말없이 찾아오지만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매일매일 지옥 같은 현실에서 행복 찾기 놀이를 한다.
꿈꾸며 행복하게 살자.
뉴욕 식물원 록펠러 로즈 가든에서 '어린 왕자', '에펠탑', '파리의 달빛', '여름날의 추억', '포세이돈' 등 다양한 장미꽃을 봤지만 6월 초인데 전성기를 지나 시들어 가고 있었다.
두 번째 보랏빛 사진은 포세이돈 장미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