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영상 6도. 정말 며칠 전 혹한에 추워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며칠 사이 기온이 많이 올라 놀랍다. 하늘은 흐리고 우울한 멜랑꼴리 노래를 부른 것 같다. 멀리서 겨울새 소리 들려온다. 오랜만에 겨울 아침 새소리를 들어본다.
어제 아침 날 성가시게 하는 인터넷. 한국에 비해 비싼 인터넷 사용료를 지불하나 가끔씩 연결이 안 되고 어제도 그랬다. 혼자 랩톱 인터넷 버튼을 켰다 껐다 몇 차례 해보고 인터넷 연결 장치 전원도 켰다 끄고 반복했으나 꼼짝도 안 하고 작동이 멈췄다. 정말 짜증 도수가 올라가는 순간. 다른 일도 많은데 말이다. 아들 방에 가서 침대에 잠든 아들을 보고 인터넷 연결이 안 되니 도움을 달라고 하니 얼굴에 부처님 미소가 감돌았다. 아들 역시 미국 인터넷 정말 싫어하면서 서비스가 이리 안 좋은가 하면서 자주 불평을 한다. 아들도 인터넷 연결을 해 봤지만 그대로 멈춰 있고 나중 알고 보니 제설 작업이 범인이었다고. 어제 오전 내내 플러싱 전체 인터넷 연결이 멈췄다고.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설거지통에 쌓인 설거지하고 브런치 준비하고 부랴부랴 식사를 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몇 차례 환승해 맨해튼에 갔다. 지난 월요일부터 계속 맨해튼에 외출을 했고 줄리아드 학교 체임버 페스티벌을 보고 있다. 지난 월요일 공연 티켓만 미리 구해서 다른 공연 볼 수 없을 확률이 높았지만 월요일 공연이 좋아서 다른 공연도 보고 싶어서 난 계속 시도를 했다.
줄리아드 학교 웹페이지에서 공연 티켓을 구할 수 있으나 매진이라고 떠도 가끔 늦게 표가 남은 경우도 있다. 나의 특기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미리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을 만큼 시도를 한다. 결국 어제와 그제 공연 티켓을 구했다. 평소 들을 수 없는 낯선 작곡가 곡이나 한 번도 듣지 않은 곡도 듣게 되고 어제는 특별한 일이 두 가지나 있었고 하나는 남자 음악가가 하프를 연주하는 것.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세상에 태어나 남자가 하프 연주를 하는 것은 어제 처음 봤다. 뉴욕에 살아도 낯선 풍경에 충격을 받는다. 하물며 보지도 듣지도 않은 일은 글로 읽으면 잘 이해가 안 올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비밀이 풀렸다. 맨해튼 지하철역에서 만난 거리 음악가였는데 외모가 보통 사람과 달리 무슨 병에 걸렸는지 영화에나 등장할 외모나 정말 슬프겠단 생각이 들었고 호기심이 부풀어 갔는데 어느 날 줄리아드 학교에서 첼로를 어깨에 메고 밖으로 나오려다 나랑 마주쳤다. 그는 날 모르고 난 그를 알고 순간 그가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인지 아닌지 다시 두 가지로 나뉘고 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줄리아드 학교 학생일까 아니면 레슨 받으러 줄리아드 학교에 왔을까 하면서. 그런데 어제 체임버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첼로 연주를 하니 놀랐고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대학 시절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친구들이 슈베르트 숭어를 기타곡으로 연주를 했는데 어제 그 곡을 듣게 되었다. 순간 대학 친구들도 무얼 하고 지내는지 궁금했다. 내가 뉴욕에서 지내니 지인들 가운데 홈스테이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외국에서 살면서 그런 일에 관여한 자도 많으나 난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랑 다른 가정에서 자란 자녀를 사춘기 시절 데리고 지내다 불협화음이 생기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난 언제나 내 방식대로 살고 그런 게 다른 사람과 맞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닐 수도 있다. 좋아하는 문화생활하려고 다른 모든 욕망은 줄이고 지내고 생활에 필요한 것 역시 눈을 감는 경우가 많기에. 암튼 그 친구는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려 했고 난 홈스테이에 관심이 없었고 미네소타 주에 있는 학교로 보냈다. 그때 내게 유학에 대해 물었으나 난 반대의 입장을 표현했다. 난 뉴욕에서 두 자녀 교육을 하면서 왜 남의 자식 유학은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분도 있을 거다. 왜? 상황이 다르니 반대한 거다. 사춘기 시절이라 예민한 시기고 부모 없이 홀로 유학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립학교 유학 비용도 정말 많이 들고 홈스테이 비용도 정해진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서비스 나라'고 모든 서비스에 요금이 지불된다. 어디로 픽업하면 그에 따른 비용을 추가하고 등 하나하나 모든 게 다 비용이다. 그래서 한 달 홈스테이 비용이 2500불이면 그 외 추가 요금이 아주 많다. 교육비( 음악 튜터, 런치 등) 1천 불, 주 2회 과외비 약 480불, 학교 애프터 스쿨 월 370불, 생일잔치 200불, 땡스기빙 데이 선생님 선물 비용... 등이 추가되고 이 비용은 인터넷에 올려진 하나의 예이고. 이렇듯 잘 알지 못한 비용이 끝도 없이 들어가나 부모처럼 아이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한 내 생각과 달리 친구는 결국 미국에 아들 유학을 했으나 환율이 갈수록 올라가니 1년이 지나 다시 한국에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미국에서 지낸 동안 특별한 경험을 했을 거나 여러 면에서 상당히 힘들었을 거라 짐작을 한다.
오랜만에 슈베르트 숭어 곡도 들으며 대학 시절 추억도 떠오르고 정말 좋았다. 연주도 훌륭하니 더 좋았고. 오후 4시 반 공연이었고 어제 오후 1시 체임버 페스티벌 공연도 봤다. 앨리스 툴리 홀에서 연주를 했고 역시 백발노인들이 아주 많이 오셨다. 두 개의 공연 사이 쉬는 시간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 1층 카페에 가서 잠시 쉬었다. 나랑 동선이 같은 90세 할머니가 지팡이를 들고 오셔 커피와 빵을 드셨다. 멋쟁이 할머니는 음악을 아주 사랑하고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사신다고 하셨다. 사랑스러운 공간에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고 모처럼 중국어도 들려오고 젊은 남자는 중국어와 영어로 이야기하며 모기지에 대해 말하고 자신 수입이 더 적은데 뭐라 뭐라 하면서. 그곳에서 중국인 남자는 보기 드문데 차츰차츰 변한 듯.
지난 월요일부터 매일 맨해튼에 외출하나 아직 적응이 안 된 상태고 피곤해 저녁 연주는 안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고 플러싱에 도착해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며칠 계속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 양파라도 있으면 좀 더 버틸 수 있는데 양파 하나도 없었다. 생선, 삼겹살, 두부, 상추, 파, 양파, 김치 등을 구입하니 내 신용 카드는 작동을 안 해 또 잠시 멍하고. 택시를 불러 타고 집에 돌아왔다. 멀리 시애틀에서 뉴욕에 온 지 25년이 지났다는 한인도 만나고. 런던 날씨처럼 자주 비가 내린다는 시애틀. 잠 못 이루는 시애틀의 밤도 생각이 나고. 빌 게이츠 집이 시애틀에 있다고 하고 지인도 남편이 미국에서 1년 교환교수로 지낼 적 시애틀에서 머물렀고 내게는 낯선 곳이다.
지난 화요일 기억이 머나먼 나라 같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체임버 페스티벌을 봤고 그날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난 시니어 중국인도 만나고 가끔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만나는 할머니도 만나고. 지난번 힐러리 한 공연을 안 보고 보스턴에 간다는 중국인에게 여행 잘 했냐고 물으니 여행이 아니라 친척 장례식에 참석했노라고. 미국에 30년 전인가 이민을 와서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다 지금은 은퇴하고 맨해튼에 살면서 문화생활을 한다고. 자주 카네기 홀에서 만나나 줄리아드 학교 공연을 잘 몰라 내가 알려주었다.
그날 아들이 좋아하는 핫초코를 사려고 콜럼버스 서클 타임 워너 지하 홀 푸드에 갔고 어렵게 샀는데 퇴근 시간이라 매장에 손님이 정말 많아서 계산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시간 낭비일 거 같아 커피를 사고 커피 파는 곳에서 함께 계산을 했다. 시간 절약을 했으니 루루 랄라 하면서 기분 좋게 나와 줄리아드 학교로 가면서 나중 생각하니 핫초코를 놔두고 나와 다시 돌아갔다. 홀 푸드 매장에서 독일 베를린에서 뉴욕에 온 교수와 영화 전문 기자랑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샐러드로 식사를 했고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가끔 보는 이마에 혹이 난 할아버지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본 장소. 교수와 기자랑 이야기하면서 둘의 대화는 코믹 북에 대해 뭐라 뭐라 하고 뉴욕에 와서 한 번도 읽지 않은 거라 난 하나도 몰라 멀뚱멀뚱 이야기를 듣다 나중 맨해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둘은 맨해튼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 서로 입장이 달랐다. 거의 매일 맨해튼에 가는 맨해튼이 그리 낯선 장소가 아니나 대부분 맨해튼에 대해 모른 분이 아주 많다. 영화 기자는 너무 바쁘게 지내니 모른다 하고 베를린에서 온 교수는 매년 뉴욕에 2차례 정도 오나 관광객이라 잘 모르고. 홀 푸드에서 알레그로 커피를 사 마셨는데 아다지오를 좋아하는 나랑 뭐가 안 맞았는지 실수도 하고 다시 링컨 센터로 갔다.
저녁 6시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영화 상영을 한 줄 알고 방문했는데 난 그날 이상한 일만 연거푸 벌어지고 나의 실수였다. 결국 저녁 7시 반 사이 빈 시간 동안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 줄리아드 학교 옆에 있는 뉴욕 공립 도서관에 가서 뉴욕 타임지와 에세이 책 한 권 꺼내 들고 잠시 읽었다. 저녁 7시 문을 닫고 나중 보니 내 뒤편에서 언젠가 "함께 춤을 출래요?"라 말한 뉴요커 남자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만난 분이고 며칠 동안 그분도 날마다 공연을 보러 오신다. 화장기 없는 시들어 간 내게 그런 말을 해서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날 공연은 밤늦게 막을 내렸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니 거의 자정이 되어갔고 '브런치'에 올린 답글을 봤다. 글을 보니 뉴욕 문화에 대해 잘 모른 분이라 짐작을 했다. 맨해튼에 오래 거주해도 문화에 관심 없는 경우라면 잘 모를 수밖에 없고 뉴욕에 온 지 40년이 지나도 모른 분이 많다. 뉴욕도 모르는데 하물며 한국에서 뉴욕 상황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본 세상 안에서 판단하고 느끼니 그런 표현을 했을 거라 짐작을 했다. 거꾸로 입장이 바뀐다면 그분은 뭐라 답글을 했을지 궁금하다.
얼마 전 한국과 뉴욕 문화 차이점에 대해 간단히 적었고 브런치는 많이 읽고 네이버는 소수가 읽어서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가 상당히 다름을 느끼고 노인 문화 역시 한국과 뉴욕은 다르고 그에 대한 포스팅 역시 브런치는 많이 읽는다.
목요일 아침 브런치 식사 준비하면서 메모하고.
2018. 1. 11
목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