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쇼팽 첼로 소나타와 노란 숲

새벽 바다 보러 가서 죽는 줄 알았어.

by 김지수

2021. 12. 12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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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708.jpg?type=w966 줄리아드 학교 공연 보러 가는 길에 담은 링컨 센터 Metropolitan Opera House


일요일 오후 5시 반 줄리아드 학교 폴 홀에서 첼리스트 연주를 들었다. 이름으로 보아 한인이라고 짐작을 한다.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면 잠시 고통과 근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즐겁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무대에서 연주하는 첼리스트는 오랫동안 연습했을 텐데 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다. 연주가와 청중은 정반대 입장.


석사 과정 연주였으니 세월이 꽤 되었을 거 같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거 없지만 음악의 길이 어렵기만 하다. 타고난 재능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고 좋은 선생님과 부모의 재력과 관심 없이 힘드니까. 또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학생의 열정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길.


눈만 뜨면 첼로 연습해도 유명 대학 졸업해도 직업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든 세상...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과거는 명성 높은 대학 졸업하면 쉽게 직장 구했지. 지금은 아냐. 그래서 음악가들도 고민이 많다.





쇼팽의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 폴란드에서 탄생해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예술가는 조르즈 상드와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폴란드에 여행 간지 20년도 더 지났다. 추운 겨울날 폴란드에 도착해 폴란드 쇼팽 공원에서 산책도 했던 추억도 떠오른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해 충격받은 기억도, 소금 광산에 방문했던 기억도, 별로 맛없던 음식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또 비운의 운명을 맞은 폴란드계 유대인 대학 강사도 생각난다. 브루클린 병원에서 의사 남편 만나 네 명의 자녀를 출산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인간으로 변했으니 어찌 말로 참담한 상황을 표현하겠는가. 정말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언어로 표현하긴 참 어렵다. 영화배우처럼 미모의 강사의 안부도 궁금하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아직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계실까. 40대 중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와서 살고 있단 내 이야기를 듣고 그분도 놀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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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오스본 아파트 (사진 위 오른쪽/홀리데이 시즌 화단), 뉴욕 거리 화단도 참 예쁘다.



그리고 카네기 홀에서 만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온 저널리스트는 언론계에서 일한다고 했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본 날 만나 함께 커피와 빵을 먹으며 이야기 나눴다. 카네기 홀 맞은편 오스본 아파트에서 미국 지휘자 버나드 번스탸인이 살았고 미국의 역사적인 유적지라고 하니 할머니가 기뻐하시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분 나이는 아마도 80세 정도에 가까웠나. 퀸즈 지인 집에 머물며 뉴욕 여행하면서 공연 보러 왔다고 하셨다. 오래전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친분이 있었고 번스타인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했다고 했던가. 꽤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할머니 저널리스트가 혼자 뉴욕 여행 오셔 매일 공연을 보러 다니셔 기억에 남는 분이다.


평소 화장기 없고 미장원에 가지 않아 내 사진을 잘 찍지 않는데 그 할머니는 카네기 홀에서 내 사진을 꼭 찍어야 한다고 하셔 거절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가끔 생각이 난다. 특히 오스본 아파트를 지나 칠적마다.


한국에는 아파트 문화가 늦게 들어왔는데 오스본 아파트는 19세기 지어진 럭셔리 아파트다. 뉴욕과 한국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지.


줄리아드 학교에서 첼리스트 공연 외 챔버 뮤직 공연도 들었다. 줄리아드 학교 재즈 공연과 댄스 공연 역시 좋다. 다만 유료라서 눈을 감는다. 하지만 팬들이 많아서 학기 말 공연 시즌 줄리아드 학교는 늘 복잡하다. 뉴욕의 문화가 다르다.


아주 오랜만에 새벽에 바다를 보러 다녀왔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 새벽에 중국인 마트에 들려 커피 한 잔 마시고 시내버스 정류장에 가서 에콰도르에서 20년 전에 뉴욕에 온 분과 이야기를 했다. 지난여름 거의 매일 새벽 바다를 보러 갈 때 늘 같은 시각에 본 남자다. 함께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니 에콰도르라고.


새벽에 일터로 가냐고 물으니 그런다고. 놀랍게 베이사이드 한인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주급이 750불이라고. 전에는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서 일했는데 그때는 렌트비가 비싸 지금이 더 좋다고. 퀸즈 베이사이드는 한인들이 선호하는 조용하고 깨끗하고 학군 좋은 동네다. 맨해튼과는 좀 떨어져 있지만.


뉴욕에서 만난 세 번째 남자. 한 분은 퀸즈에 사는 거리 음악가, 다른 분은 예술가(조각가).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본 날 커피 한 잔 마시다 우연히 이야기를 했는데 뉴욕에서 역사 깊은 빌딩 보수 공사를 한다고. 그 조각가는 내게 바다를 좋아하냐고 물으며 함께 바다에 가자고 해서 웃었다. 함께 갈걸 그랬나. 가끔씩 날 웃게 한 남자들이 있다.



eckTL6o_31CRm7OOan1ifibJ-00 겨울 연못과 새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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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공짜가 아냐. 죽을 고생을 하며 찍었다.




새벽 바다를 보러 갈 때 기대가 컸다. 혹시나 근사한 바다 빛을 볼 수 있나 하고. 그런데 기대만큼 실망이 컸다. 황홀한 바다 빛은커녕 쌩쌩 몰아치는 찬바람만 맞았으니. 얼마나 춥던지 다시 안 가고 싶을 정도다. 아마 한동안 방문하기 어려울 거 같다. 너무너무 추워 온몸이 얼음으로 변할 거 같았지만 참고 사진 몇 장 찍고 근처 연못에서 우연히 새 한 마리 보고 조금 위안을 받았다. 여름과 겨울은 너무나 달랐다. 수련꽃 피는 연못을 봤는데 한동안 방문하지 않는 동안 어느새 겨울이 찾아와 텅 빈 느낌이었다.



바다에서 혹시나 백조를 볼 수 있나 기대를 했지만 볼 수 없어서 약간 실망했지만 학도 아니고 백조도 아닌 새를 보았다. 대개 새가 바로 멀리 날아가 사진 찍기가 어려운데 날 위해 모델을 해주니 감사한 마음이었다. 자연이 좋다. 내 마음에 평화 가득 안겨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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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520.jpg?type=w966 동트기 전 노란 숲



연못 옆 숲도 황금빛. 아직도 황금빛 낙엽 위를 걸을 수 있어서 사치스러웠다.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자주 읽었지만 내 이야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사실 한국에서는 노란 숲도 보지 못했다. 울긋불긋 치장한 단풍은 많이 봤지만. 어쩌다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뉴욕에 왔을까.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네.
안타깝게도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서운함에
한 길이 수풀 뒤로 구부러져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멀리 굽어보며
한참을 서 있었네.

그리고 한 길을 택했네.
똑같이 아름다웠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더 나아 보이는 길을.
사실 지나간 발길로 닳은 건
두 길이 정말 비슷했다네.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히지 않는 낙엽에 덮여 있었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놓았네!
그러나 길은 길로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 함을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지는 않았네.

먼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하리.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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