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센트럴 파크, 줄리아드 학교
2021. 12. 11 토요일
토요일은 줄리아드 음악 예비학교 학생들 연주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코로나전 매주 토요일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공연 봐야지 했는데 코로나로 중단되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공연을 자주 보고 싶단 생각을 하고 우선순위로 스케줄을 만든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기 전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가서 전시회를 봤다. 추운 겨울날 토요일 오후 갤러리에 방문객들이 많아서 놀라웠다. 내게는 전시회 작품보다 복잡한 갤러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뉴욕의 3대 화랑에 속하나. 데이비드 즈워너는 할아버지도 아트 딜러, 부친도 그림을 사고파는 화상이었다고.
전시회 보고 뮤지엄 마일 5번가 근처 센트럴 파크에서 어린아이들 뛰어노는 것 보고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생각에 잠겼다. 어릴 적 행복한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거다. 신나게 놀던 추억은 아주 많지는 않다.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아버지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녀 전학을 하게 되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친구를 사귀려고 하면 다시 이사하고.. 낯선 곳에 가서 정들려고 하면 다시 움직이고...
잠시 후 시내버스에 탑승해 줄리아드 학교에 가는데 내 맞은편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았는데 핼러윈 분위기였다. 핼러윈 축제는 분장을 하는 것인데 이분은 리얼리티 그 자체다. 찢어진 바지 입고 한 손에 지팡이 들고 다른 손에 수레 들고 얼굴에는 주름살 가득하고 핏자국도 있고 밴드까지 붙여져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날 보고 웃는 게 아닌가. 잊기 어려운 할아버지다. 삶이 험난할 거라 짐작을 해본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연 보고 집으로 돌아와 세탁을 하려고 아파트 지하에 내려갔다. 그런데 날 보고 웃는 젊은 히스패닉 커플. 말도 안 하고 바디 랭귀지로 말하는데 뭔가 이상한 눈치. 바디 랭귀지가 무얼 의미하는지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해 세탁기 뚜껑을 열었다. 아파트 지하에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세탁기가 6대 있는데 설마 전부 고장 난 거는 아니겠지란 마음에 하나씩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전부 사용 중. 바로 그 커플이 전부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내게 지금 세탁을 할 수 없단 내용을 바디 랭귀지로 표현하려고 했나. 롱아일랜드에 살다 플러싱으로 이사온지 꽤 오래되어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혼자서 다 사용하면 다른 이웃은 어떠하겠는가.
뉴요커들이 대개 바쁘다(요즘 바쁘지 않은 사람 없겠지만). 나도 꼭 세탁을 해야겠는데 차도 없는데 어떡하란 말인지. 저녁 8시 반까지 세탁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정말 난감하다. 아파트 지하에서 처음 본 커플이라서 이사온지 얼마 안 된지도 모른다. 여기 살면서 처음 봤다. 말 안 해도 그렇지. 그래서 말했다. 너도 바쁘고 나도 바쁘다. 그러니 다음부터 서로 조심하자. 너 혼자 다 사용하면 다른 사람 힘드니까 조금씩 나눠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웃었다. 그녀 남편은 고개를 돌리고 안 척을 하지 않았다. 일방통행한 사람을 보면 답답하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르니까 더 답답하지만 대개 난 침묵을 지킨 편이다.
뉴욕 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레터가 날아왔다. 지난번 방문할 테니 집에 있어달라고 해서 그날 아들이 외출도 안 하고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방문하지 않았다. 레터 내용은 우리 집에 방문해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없어서 할 수 없었으니 만약 처리되지 않으면 매달 추가로 100불 요금을 내야 한다고. 정말이지 미국 서비스는 형편없다. 횡포다. 우리가 집에서 기다렸는데...
뉴욕이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문화면은 천국이지만 하루하루 살기 참 버거운 도시다. 지금 매달 평균 뉴욕 오두막 전기세는 한국 60평대 아파트 3배다(물론 뉴욕에 온 지 세월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우린 냉장고만 사용하고 전기불 켜고 노트북만 사용한다. 티브이도 거의 안 켠다. 그런데 비싼 전기요금 봐라. 집에 세탁기도 없다. 왜 전기 요금이 비싼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왜 정부에서 전기회사를 운영하지 않는지. 뉴욕에 와서 자본주의 색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자본주의!!! 뉴욕은 싼 게 없다...
삶이 미치도록 슬프니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도 참고 견디고 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우울증에 걸릴지도 몰라. 매일 즐거움을 찾는다.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산책하고 가끔씩 시간 내서 갤러리와 미술관에 방문하고.
삶은 어차피 묘지로 가는 길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거의 대부분이지만
즐겁게 살아야지.
안개 낀 뉴욕의 아침은 아름답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