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하늘을 바라본다. 겨울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듯. 내일모레는 하얀 눈이 온다고 하고 내가 사랑하는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도 생각이 나고 아다모 하니 오래전 파리에 여행 갔던 기억도 떠올라.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다. 꿈꾸던 파리 여행 가서 에펠탑도 구경하고, 개선문도 구경하고, 샹젤리제 거리도 걷고, 에펠탑 앞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에펠탑 전망대에 오른 엘리베이터에서 밤에 내리니 공포의 분위기 감도는 흑인을 만나 놀랐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그 유명한 모나리자 그림도 봤지. 방문객이 너무너무 많아 그림을 보는지 사람을 보는지 분간도 잘 안되고 멀리 보이는 모나리자 그림은 사이즈도 작고 유리로 덮여 있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노트르담 성당에 가서 기념사진 촬영하려 하니 하필 비가 내려 사진도 못 찍고 서둘러 떠났던 기억도 나고, 밤에는 센 강 유람선을 탔는데 얼마나 피곤했던지 아름다운 파리 야경을 보는 대신 잠이 들고 말았지. 다시 여행 가면 절대 그런 후회할 일은 안 할 텐데 생이 어디 뜻대로 되나. 지나고 나면 후회를 하고 그런다. 우리 여행팀 가이드는 파리에 유학 가서 10년 지냈다고 했는데 단발머리 2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는 바바리코트를 입고 나왔다. 10년 동안 무슨 공부했는지 안 물어봤네. 아름다운 청춘 바치며 공부했을 텐데 지금은 파리에서 살까.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갔을까. 거의 20년이 되어가니 그도 늙어가고 있겠다.
다시 파리 여행 가면 거리거리를 걸으며 구경할 텐데 센 강변에서 산책도 하고, 오페라도 보고, 뮤지엄 순례도 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곳도 찾아다니고. 언제 그럴 기회가 올까. 운명의 바늘은 어디만큼 가고 있을까.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던 궁궐을 떠나오니 마법이 펼쳐졌다.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오니 아무것도 없는 사하라 사막. 사하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법을 배우는 게 바로 이민. 아름다운 런던, 파리, 베를린, 프라하, 로마, 베니스 등을 여행할 적 내가 뉴욕에 살 거라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운명이 날 이리 데리고 왔나. 운명이 뭘까. 폭풍이 불지 않았다면 난 결코 이 아름다운 뉴욕을 알지 못하고 눈을 감았을 텐데.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처음 본 마리아 칼라스. 너무 낯선 이름이라 이게 뭐지 하면서 호기심 가득했었지. 그때 오페라가 뭔지도 몰랐어.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칼라스는 뉴욕 맨해튼에서 탄생했다. 오늘 정오 무렵 메트(오페라) 웹사이트에 접속해 토요일 공연 스케줄 티켓 확인하니 저렴한 티켓은 이미 매진이고 어떤 티켓은 거의 500불에 가까우니 센 강 유람선 탈 때처럼 눈을 감아야지. 뉴욕에 세계의 부자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데 내가 부자처럼 살 수 있겠어. 알라딘 마법 램프가 내게 백지 수표를 가져온다면 가능할까. 라스베이거스에 여행 가서 카지노에 갔는데 손이 덜덜 떨렸지. 와르르. 난 돈만 쓰다 그냥 포기하고 나왔다. 잭팟이 내게 절대 올 리 없을 걸 미리 알아버렸어. 그때 한국에서 미국 여행 온 교수와 작가 부부 만나 술 마시며 이야기도 했는데 너무 오래전 이야기다. 언제 우리 가족이 서부 여행을 했나. 까마득한 세월이야.
어제와 오늘 세상의 창을 닫고 조용히 집에서 지내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달리면 마법의 성에 도착하는데 내가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데 아직 몸도 회복이 되지 않아 조심스럽다. 지난주 토요일 성 패트릭 데이 지하철을 타고 마법의 성에 가서 신세계를 봤지. 그런데 시간 죽이는 벌레도 많이 만나고. 아이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에서 7호선을 타고 달렸다. 내 옆에 앉은 극성 엄마도 보면서. 아들이 이제 12개월 정도 지난 것으로 보이고 아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흥미 있어 하는데 엄마는 가방에서 Brain Quest를 꺼내 아들에게 계속 물으면 아들은 고래를 설레설레 흔들고. 얼마 전 일가족 3명이 자살한 한국 기사도 생각이 나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면 정말 공부를 잘했을 텐데 어찌 그런 비극의 종말을 맞았는지. 행복은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돈도 전부가 아닌데.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을까. 이제 막 꽃이 필 시기인데 저 하늘로 가버리면 얼마나 슬픈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나.
지난 토요일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내려 환승할 생각인데 아 글쎄 그 역에 도착해 7호선에서 내렸는데 지하철 운행을 안 하는 눈치. 다시 7호선에 타야 하는데 이미 만 원이라 빈자리는 없고. 아, 순간의 결정이 나의 기분을 다운 다운시키지 뭐니. 그래도 할 수없어. 무한 메트로 카드도 구입하지 않아 더 조심스러운데. 1회 2.75불이면 얼마나 비싸. 이제 나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 미리 스케줄 만들었는데 지하철역이 틀려지니 다시 스케줄 만들어야 하고 무한 교통 카드는 없으니 더 복잡. 머릿속은 컴퓨터만큼 빨리빨리 회전해야 하는데 내 머리가 컴퓨터 따라갈 수 있니. 내 선에서 적당히 해결해야지. 암튼 고민 고민하다 5번가에서 내렸다. 성 패트릭 데이가 5번가에서 시작하니 몇 블록 걸으면 볼 수 있겠다 싶어. 그런데 다시 시간 죽이는 벌레를 만났지. 경찰이 도로를 다 막아버렸어. 와, 짜증 도수가 올라간 순간. 이를 어떡해. 할 수 없지. 경찰과 싸울 수도 없지. 애비뉴 오브 아메리카로 걸었지.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센트럴파크 쪽을 향해 서서히 올라가다 도로를 보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멀리서 버스로 단체팀이 도착해 버스에서 짐을 빼고 준비하는 중.
경찰은 멋진 말을 타고 순회를 하고 말발굽에도 초록색이 보여 놀라고 예쁜 말이라 나도 타고 싶더라. 거리 사람들은 초록빛으로 분장을 하고 초록색 목걸이를 걸고 머리띠를 하고 티셔츠를 입고 초록색 클로버 스티커를 얼굴에 붙이고. 분장을 하지 않은 난 맨해튼에서 유령에 속할 거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러다 나도 모르게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갔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가게 있는 곳에서 진입하면 크리스티 경매장이 나오고 축제를 보려고 맨해튼에 온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 5번가에 가기도 너무 힘들 거 같아서 난 축제 대신 경매장에 갔다. 아시아 작품 전시회를 좀 보고 중국인으로 짐작된 사람들은 경매에 참가하려는지 열심히 작품을 보고 있었다. 이태리 여행 가서 아들이 유리 제품을 깨버려 어쩔 수 없이 배상한 기억도 났다. 크리스티 경매장에 전시된 물건은 정말 비쌀 텐데 누가 깨버리면 배상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도 했다. 젊은 백인 바리스타는 내게 향기로운 카푸치노를 주고 "마담"이라 부르니 이제 나도 나이가 많이 든 모양이야. 마음은 20대처럼 젊은데. 하트 모망이 그려진 카푸치노를 마시고 다시 갤러리를 구경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보여 놀랐다. 난 두 자녀 키울 때 북 카페나 갤러리에 가는 거는 상상조차 못 하였는데 요즘 세상은 많이 달라졌나. 축제 대신 난 경매장에 가서 커피 마시고 도자기와 그림 구경하고 있으니 좀 철이 없나.
크리스티 경매장을 나와서 카네기 홀로 걸어갔다. 무한 교통 카드가 없으니 튼튼한 두 다리가 고생을 했지. 그날 저녁 카네기 홀에서 플라멩코 댄스와 노래 공연을 하니 얼른 박스 오피스에 들려 표 한 장 구입했다. 아들 보고 볼 거냐 물으니 친구들과 영화 본다고 하니 내 거만 구입했다. 그런데 여기도 시간 죽이는 벌레가 있었다. 난 시간 죽이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직원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난 표 한 장 구입하는데 무려 20분 정도를 기다렸다. 아이고 내 시간 하면서 기다렸다.
다시 축제를 보러 가야 하는데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갈 리 없고 카네기 홀에서 5번가를 향해 걷다 나도 모르게 갤러리에 갔다. 우와 정말 좋은 전시회. 천정에 팀파니가 매달려 있는데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갤러리는 조용하니 더 좋고. 굉장했지. 잠시 후 3명의 가족이 들어와 구경하는데 그들도 나처럼 좋은 모양이야. 회색빛 카펫 바닥에 누워 천정을 보며 음악을 듣고 있더라. 나보다 더 좋은 모양이지. 난 갤러리에 가서 바닥에 누운 적은 없는데. 악센트 강한 불어를 사용하니 프랑스에서 여행 온 관광객인지 궁금도 했지. 그 후 몇몇 갤러리를 더 구경하고. 축제도 봐야 하는데 딴짓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래도 성 패트릭 데이 축제를 봐야지. 1년에 딱 한 번 뿐이니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5번가로 갔다. 난 트럼프 타워와 티파니 앤 컴퍼니 빌딩 근처에서 축제를 봤다. 군중들이 많아 좋은 자리는 이미 꽉 차서 멀리서 구경을 하고 백파이프 소리와 북소리를 들으며 축제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갔다. 15만 명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고 하니 멀리멀리서 온 모양이야. 의상도 멋지고 잠시 축제의 분위기에 잠수했다. 정말 굉장한 축제. 뉴요커들은 아주 바쁘게 사는데 축제는 왜 그리 많이 열리는지. 또 축제를 보기 위해 거리로 온 군중들도 많고. 휠체어를 타고 온 분도 계시고.
그런데 오후 2시 반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열리는 클래식 기타 공연도 보고 싶어서 축제를 보다 도서관으로 걸어서 갔다. 그날 맨해튼 미드 타운을 나 혼자 점령했지. 발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아직 청춘인 모양이다. 바흐와 슈만 기타 곡을 잠시 감상하다 뒤를 돌아보니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본 90세 할머니가 서 계셔서 얼른 자리를 양보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대학 시절 들은 클래식 기타 음색은 아니었다. 그분도 음악을 사랑하는데 클래식 기타 공연이 흔하지 않으니 도서관에도 온 듯 짐작했다. 토요일 오후 도서관에서 공연을 보는 뉴요커들. 정말 굉장해.
잠시 링컨 센터 메트 오페라 하우스 옆 자작나무 숲 아래서 휴식도 하고 유모차를 밀고 어린 딸과 시간을 보내는 젊은 아빠도 보았다. 맨해튼에 멋진 아빠가 정말 많아. 어린 자녀랑 놀아주는 아빠 얼마나 멋져. 우리 가족은 두 자녀 어릴 적 아빠 구경하기도 힘들었는데. 아빠는 늘 새벽 종소리를 울리고 집에 왔다. 그래서 내가 "새벽 종소리"라 별명을 지어 불렀다. 종소님 빨리 오시네요, 하면서. 새벽시간이니 얼마나 빨리 온 거야. 어느 판사 집 부인은 남편이 새벽 우유 배달한 시간에 온다는 말하는 이야기도 K에게 들었지. 재판이 새벽에도 열리나. 새벽까지 무얼 하고 우유 배달한 시각에 돌아올까. 남의 집 이야기는 안 척하면 안 되지. 다 알아서 할 테니.
잠시 휴식을 하다 카네기 홀 근처 일본 갤러리에 가서 다시 전시회를 구경하다 아시아 아트 신문을 읽었는데 한인 작가 김기린 화백에 대한 글이 보였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노 화백. 5세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교육도 받지 않은 분이라 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파리에 가서 유학을 했으니 얼마나 특별한지. 난 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 화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시와 클래식 음악을 아주 사랑한 분이라고.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플라멩코 댄스와 노래 공연을 봤다. 그날만큼은 좋은 좌석에서 보는 게 좋았을 텐데 아쉽게 좋은 자리가 아니라 무대를 잘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내 앞자리에 앉은 분은 혼자 열심히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니 뒤에 앉는 난 정말 무대가 안 보여 짜증이 났으나 참을 수밖에. 공연을 보고 지하철을 타러 지하철역에 갔는데 홈리스가 손에 1불 지폐를 들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나도 종일 여기저기 움직여 피곤하니 홈리스 옆 빈자리에 잠시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홈리스가 와서 비켜 달라고 하니. 얼른 자리를 양보했다.
오늘도 맨해튼에서는 많은 이벤트가 열리는데 맨해튼에 가지 않으니 조용하게 하루가 지나간다. 난 브루클린 식물원 매그놀리아 꽃 제전을 기다리고 있는데 올봄 눈 폭풍우가 자주 찾아오니 작년처럼 보기 힘들까. 봄이 되면 황금빛 수선화 물결도 매그놀리아 꽃도 벚꽃도 봐야 할 텐데 뉴욕은 언제 봄이 찾아오려나. 한꺼번에 밀린 메모 기록하니 장문의 편지가 되어버렸어.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 시도 떠올라. 목련 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2018년 3월 19일 늦은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