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첫날. 믿어지지 않아. 세월이 너무 빨라. 이제 마지막 남은 한 달을 보내면 새해가 오고. 매일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아쉽기만 해.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마는구나.
어제 11월 마지막 날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아파트 근처 호수에 산책을 하러 갔다. 파란 하늘에 솜사탕 구름이 보여 날 행복하게 했지. 하늘로 달려가 솜사탕 구름을 잡으면 좋겠는데 하늘은 저 멀리. 호수에서 갈매기, 백조, 청둥오리 떼와 기러기떼가 산책을 하고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낙엽이 가득 떨어진 공원에서 몇 바퀴 달리고 호수가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는 뉴요커도 보고. 집에서 왕복 7마일 황금 연못에도 다녔는데 올가을 너무 바빠 오페라 한 편도 안 보고 넘어가고. 호수에서 집에 돌아오다 낙엽 속에 핀 노란 민들레 꽃도 보고. 세상에 겨울이 찾아오는데 봄에 피는 민들레 꽃이 보여. 봄이면 언덕에 피는 노란 민들레 꽃이 마음을 환하게 해주지. 이해인 수녀님의 시 '민들레의 영토'를 읽을 적 난 노란 민들레 꽃을 자주 보지 않았는데 뉴욕은 민들레 꽃과 제비꽃 천지.
지난 한 달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낼 레터 쓰느라 너무 바빴지. 오늘 아침 산타할아버지가 내가 보낸 레터를 잘 받았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선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올까. 굴뚝을 타고 선물을 가져와야 할 텐데 집에 굴뚝이 없어서 선물을 못 보냈다고 하면 어떡하지. 홀리데이 시즌 맨해튼은 황금빛 하얀빛 붉은빛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이고 며칠 전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마스 점등식을 했는데 천사들 장식도 채널 가든에 보일 텐데 아직 방문하지 못했어. 삭스 앤 핍스 백화점 레이저 쇼도 아름답고 보러 가야 하는데. 몸도 천 개로 나누고 하루도 24시간이 아니라 1000시간이면 더 많은 일을 할 텐데. 욕심이 많은가.
호수에서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외출 준비를 하고 석양이 지는 하늘을 보며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플라자 호텔 근처에서 내려 어둠이 깔린 센트럴파크를 바라보고 나의 목적지는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 어제 제16회 New Song Music Performance & Songwriting Competition Finals 대회가 열리고 해마다 보곤 하는 행사.
2017년 우승자 CRYS MATTHEWS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 우승자 단 한 명을 선발하는데 5천 명이 지원했다고 하고 그 가운데 10명을 뽑고 어제 7명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낯선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1차에서 3명을 선발하는 동안 작년 우승자가 노래를 불렀다. 작년 1차만 보고 집에 돌아갔는데 올해 욕심을 부렸지. 마침 아들은 친구 만나러 가서 늦게 돌아올 거 같고. 5천 명의 경쟁을 느껴보고 싶었다. 무명의 가수가 세상에 나오기 정말 어려운 일. 가슴이 두근두근. 잠시 후 1차를 통과한 3명이 노래를 부르고. 과연 누가 될지 가슴이 떨렸는데 드디어 발표. 그 흑인 여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오래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등반하시고 돌아오면서 분홍빛 목도리와 꿀을 선물로 가져다주었는데 그분을 뵌 지 벌써 10년도 훨씬 더 지났어.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얼마나 달라졌을까. 집안도 재벌급 수준. 그분도 엄청난 재력가. 그때 결혼 안 하고 싱글로 지냈는데 지금 결혼했을까.
지금 맨해튼에서 매일 공연을 보곤 하지만 10년 전 난 죽음 같은 공부를 했지. 명성 높은 대학원이라면 한국 학생들도 많을 텐데 무명의 대학이라 한국 학생 그림자도 볼 수 없었지.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로 공부를 한다면 그래도 더 나을 텐데. 친구들은 취미 생활을 하는 중년. 난 낯선 나라에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와서 낯선 외국어로 공부를 하기 시작. 매일 학교에 픽업하러 가고 집안일과 식사 준비하고 나머지 시간은 전공책과 씨름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 수년 동안 매일 반복되고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 하고 그때는 롱아일랜드에 사니 맨해튼 생활과 아주 거리가 멀고 죽음 같은 터널을 통과하는 시점. 한국 학생을 만나 답답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했는데 다 지난 일이다. 지금 다시 시작해도 힘든 일 같아.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고 사하라 사막에서 오아시스 발견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년 전 어린 두 자녀 혼자 키우느라 역시 힘들었지. 결혼 후 여자의 삶을 많이 달라져가지. 물론 개인마다 다르고. 교육학을 전공한 난 어린 두 자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뉴욕에 와서는 40대 중반 공부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을 스스로 했지.
링컨 센터에서 붉은빛 파란빛 보랏빛 조명으로 빛나는 무대에서 부른 노래를 듣고 가슴이 뛰고 아들이 친구 만나러 가서 늦을 거 같아 밤늦게까지 공연을 보고 링컨 센터 지하철역에 갔는데 거리 음악가가 플루트를 부르고. 그런데 지하철이 말썽을 피워.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했지. 오래오래 1호선을 기다렸지. 늦게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 역에 도착. 7호선에 탑승하고 강익중의 '행복한 세상' 아트가 있는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를 기다렸지. 마침 비가 내려. 겨울비였나.
음악에 취하고 비에 취하고 추억에 취하고 날마다 시간은 흘러가.
오늘은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피아노 대회를 볼 예정.
아, 가슴이 떨려.
지금 이 순간에도 피아니스트들은 연습을 하고 있겠지.
겨울 햇살이 창가로 비춘다.
모두 모두에게 행복한 겨울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