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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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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Nov 15. 2020

계약직이 내게 남긴 긴 여운.

형체 없는 굴레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길 바라며…

그동안 조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근무했고 성과도 좋았기에, 내 능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권리를 당당히 요구했었다. 또한, 나와 조직 간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때 늘 내 삶의 가치, 행복이 우선이 되었다. 자만이 아니라, 적어도 부품이 아닌 중심으로 살아가는 나만의 법칙 같은 거였다. 그래서 내게 정규직이냐, 계약직은 절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지난 공기업 계약직 2년은 신분의 차이가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트릴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줬다.


공기업 전문관 취업은 느닷없이 찾아온 운이었다.

2016년 당시, 나는 여행에서 막 돌아와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하던 일을 계속할 건지, 아님 직종 전환을 해볼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기 떄문에, 2년 계약직 전문관 자리는 되면 좋고, 안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되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거였다.      


그 어떤 부담도, 욕심도, 거리낌도 없었다. 현실로 막 돌아온 한 사람의 혈기왕성한 의욕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첫 출근의 기분을 기억한다.  

지금까지 에이전시 입장에서 주어진 과제만 보았는데, 메인 그라운드에서 나의 경험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마치 힘든 PT 후, 얻은 새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나에게 이곳 생활은 아슬아슬 그 자체였다. 에이전시 팀장으로만 거의 6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어떤일이든  내 생각과 의견을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조직문화를 역행하는 고삐 없는 망아지 였다.

눈치 보며, 시키는 일만 잘해도 될까 말까 한 계약직 전문관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내뱉는 모습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2년만 하고 말 거 아니잖아. 계약연장도 해야 하고, 잘하면 정규직 전환도 될 수 있는데, 그냥 팀장님이나 실장님이 얘기하면 ‘네’ 해요. 다른 곳보다 안정적인 회사 다니면 좋잖아. 나 봐봐, 나도 짜증 나고 억울하지만 ‘네’ 하잖아.’ 였다.


사사건건 상사와 부딪히는 나에게 정규직 차장님이 조언이라면 종종 해준 말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물론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안정적인 직장은 맞지만,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그때문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지 모르겠지만, 내 삶의 전환점에서 찾아온 곳이었고, 어떤 일을 하든 이 곳의 기회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다녔던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비전과 맞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녔다. 만약 그때 내게 안정적인 직장, 정규직, 계약연장 등이 중요했더라면, 처음부터 2년짜리 계약직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따라서 나는 여러 눈치 안보고 일에만 집중했었고, 그에 따른 표현들이 당시 조직문화에 맞지 않았던 거다.


그런  내게 걱정한다고 해주신 그분의 조언은 언젠가부터 ‘2년짜리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그냥 조용히 지내렴’ 하는 말처럼 들렸다. 분명 이런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내 상황이 걱정되고, 날 아껴서 해준 조언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계약직 신분들이 느끼는 불안정성을 완화하고자 하는 상호 작용이 그분과 나에게도 알게 모르게 침투되어 버린 거다.


그 당시 썼던 메모들을 보면, 살아온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로 참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이상한 나라에 와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 속에 철저히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있다면, 점점 더 내 색이 뚜렷해짐을 느낀다. - 2016.9.7     


권력자 앞에서 순한 양이지만, 약자 앞에서 매서운 칼날을 들어내는 이중성. 갖은 교양을 떨며 우아한 척하면서 뱉어내는 천박한 말들.자리보전을 위해서라면 가식 웃음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그 속에서 서열과 복종은 자리보전과 승진을 위해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하지만, 결국 난 그분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튕겨 나왔다.     



그렇게 2년이 흐른 지금. 나는 어떤가?


다시금 에이전시로 돌아와 그때의 일은 잊고 당당한 내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때 무너진 자존감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 같다.  가끔 공기업 홈페이지에서 그들의 이름을 검색하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 문화에 편승했던 사람들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더 좋은 자리에 가 있는 걸 보면 마음 한쪽이 헛헛해지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맞고, 그들이 틀렸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데,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이름을 보면, 오히려 내가 틀리고 그들이 맞았다는 것 같아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내 삶의 방식이 부정당한 느낌이고, 쓸데없는 자존심만 내세운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다운된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이 구차한 감정과 상처를 극복하고 싶어 수 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반복하고 있지만, 한 번씩 찾아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컨트롤하긴 쉽지 않다. 나름 자신하는 멘탈 건강이었는데,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걸 보면 그때의 상처가 꽤 깊었나 보다.  


과연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건 과연 뭘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조직도에서 그들의 이름을 검색하며, 지난날의 무너진 자존감을 붙들고 있을수도 없다. 그래서 늦어지만, 지금이라도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일을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그 첫번째로 그때의 내 감정을 마주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적어본다. 대중을 향해 이렇게 나의 감정과 생각을 던져버리면 조금은 홀가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날의 기억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순간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감정이 오늘의 행복과 감사를 망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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