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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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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Jan 10. 2021

마흔, 중장기 마스터플랜 수립 중

자신감이라 생각했는데, 자만감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마스터플랜을 수립할 때가 있다. 수많은 기초 자료와 인터뷰,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분석하여 짧게는 3년, 길게는 5~7년 단위의 단계별 홍보 플랜을 구성한다. 하루, 아니 몇 시간 단위로 변화되는 시대에서 3년, 5년, 7년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브랜드의 위치를 긴 호흡을 갖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건 드 넓은 인식의 바다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성을 잡아주는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삶도 마찬가진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의 소용돌이를 만나는 시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다잡고 적어도 어디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본다는 것에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나 역시 한때 그랬다. 한 번씩 찾아오는 소용돌이를 마주할 때마다 숨 고르기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지 등을 치열하게 고민했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찾아온 긍정의 힘으로 또 몇 년을 열정적으로 살았다. 스물아홉 살, 왠지 30대가 되면 하는 일마다 잘 풀릴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서른 살이 되면 비상할 거라며,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열정미 가득 풍기며 살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되짚어 보는 순간들이 점점 사라져 버렸다. 개인적으로나, 하는 일에서나 시곗바늘이 돌아가니까 흘러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무소유인 건지, 무기력인 건지.. 그렇게 마흔의 문턱을 무방비한 상태로 넘어버렸다.


그렇게 인생무상의 마음으로 마흔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정신 차려보니 나의 40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늘 항상 입버릇처럼 next plan을 고민해야 한다고 해놓고서 아무런 고민이 없었던 거다. 언제, 어느 때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데, 적당한 사회적 위치와 연봉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엔 나쁘지 않았기에, 마치 미지근한 물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지금의 따뜻함과 편안함에 취해버린 거다.


경력 15~16년 차의 40대 초반의 이직러라.. 생각만으로도 너무 무겁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아직 해야 할 일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해 첫 번째 일로 나의 40대 이후의 삶에 대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스스로를 SWOT 분석했다.


S. 10년 이상의 경력, 이해력이 높고...

W. 게으름, 끈기 부족, 작심삼일.....

O......

T. 네트워크 부족....


암담했다.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의 장단점이 뭔지, 나의 기회가 어떤 건지 등을 생각하는데도 한참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잊어버렸다. 이것저것 시작한 건 많은데 취미 만렙처럼 벌려놓은 일만 많을 뿐, 제대로 시작하거나 혹은 끝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한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것 같다. 내 삶에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만감이었나 보다.


마흔. 어떤 불안요소가 찾아올지 모르는 나이면서도 어떤 불안요소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준비해 둔다면, 앞으로 닥친 불안요소를 수습하는 삶이 아니라, 내게 닥칠 불안요소를 예방하는 삶이 될거라 생각한다. 후회는 이제 그만! 내게 2021년이 마지막 모멘텀이라고 생각하고 긴 호흡으로 스스로를 마주해 보려한다. 이제 진짜 나의 NEXT PLAN을 향한 준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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