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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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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May 06. 2023

내가 만든 불안감에 갇혀있다

아무도 가둔 적 없는 그곳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

창업한다고 퇴사한 지 벌써 두 달. 하루가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참 빠르게 흘렀다. 


처음 한 달, 쉴 새 없이 찾아든 현타에 우울감이 바닥을 쳤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이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자질구리함. 여유로운 것 같으면서도 여유롭지 않은 상황. 무엇하나 맘 편할 곳이 없었다. 시작과 함께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공유 오피스 작은 방 한 칸에서 복작되고 있는 현실이라니... 그렇게 하루에도 열두 번은 오르락내리락하는 멘탈을 부여잡고 한 달을 보냈다. 


기분 전환 겸 찾은 미용실.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왜 걱정을 사서 하냐?'는 원장님 말에 아차 싶었다. 일 년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직 한 달 밖에 안되었단다. 그 시간 동안 난, 아무도 가둔 적 없는 불안감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멘탈만큼은 자신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멘탈이었다니... 잡초인 줄 알았는데, 온실 속 화초였나 보다. 


무슨 일이든 성과를 얻기까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 뻔하디 뻔한 말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다. 회사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분명 내 프로젝트 성과인데, 이직 시 작성한 포토폴리와 달리 지금 내 회사의 성과나 실적으로 사용하긴 어렵다. '창립한 지 아직 1년도 안된 신생회사'라 말을 해도, 결국 현재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성과가 중요하다. 내 경력이 내 회사의 경력이 될 수 없는 이상한 한 끗 차이로 내 설명은 길어진다.


차리리 내가 업계에서 정말 유명한 사람이라면 조금은 나았을까?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PR에 진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 출발을 했다면 나았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과거, 창립한 지 1년이 조금 안된 회사에서 5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참 열정적으로 일했다. 규모와 상관없이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밤새 머리를 맞대었고, 노력 끝에 프로젝트 하나를 수주하면 뛸 듯이 기뻤다. 함께 했던 동료들과 일하다 마시는 맥주 한잔이 그렇게 달콤했다. 그렇게 회사는 조금씩 성장했고, 지금은 16년 경력의 나름 괜찮은 회사가 되었다. 


남의 회사에서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했는데, 내 회사 일인 만큼 그때의 열정 다시 한번 쏟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열정을 쏟기엔 너무 지쳐버린 건지, 이제와 처음부터 뭔가 다시 시작하기엔 두려운 나이가 된 건지, 벽돌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쉽지 않다. 아니,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것 같다. 예전엔 내가 안 해도 됐는데, 지금은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조직 안에서 쓸데없이 책임지는 게 싫었는데, 이제는 모든 책임이 나에게로 온다. 매서운 들판 앞에 홀러 선 기분이다. 


근데 지금의 이 모든 감정은 결국 내가 만든 불안감이다. 생각과 다르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무언가를 해야 하니까, 내 안의 괴리감에서 오는 현실 부적응기 같은 거.


바닥에 떨어진 잘린 머리카락을 보며 다시금 생각한다.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이렇게 부서지는 멘탈이라면, 진짜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칠 때 어떻게 버티고 서 있는단 말인가? 다잡자. 다잡자. 다잡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심신 지친 상태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우선 바람에 몸이라도 맡기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각도 마음도 정리될 수 있다. 이 길 끝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스스로를 믿고, 한 걸음씩 내 딛는다면, 아직은 찾아 못한 나의 넥스트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도 가둔 적 없는 불안감에서 더 이상 갇혀 있지 말고, 이제 밖으로 나오자!


그렇게 잘린 머리카락과 함께 멘탈을 재정비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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