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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May 03. 2020

성공에 대한 기준

누구나 좋아하는 일로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지 않는다.

이십대에 했던 고민을 삼십대에도 하더니, 마흔이 된 지금도 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미래에 대한 갈망은 과연 언제쯤 마무리되는 걸까?


해 볼 만큼 했고, 또 이룰 만큼 이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기회가 된다면 직업을 바꿀 생각도 있기에 지금 나의 위치에 대한 미련도 후회도 없다. 근데 왜 자꾸 과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걸까? 현재 내가 원하는 건 번듯한 직장도, 그럴듯한 직함도, 특별한 프로젝트도, 남부럽지 않은 고연봉도 아닌데 말이다. 


서른 중반, 열일곱에 그렸던 꿈의 목표에 도달했다 생각했는데, 그다음이 없었다. 경주마처럼 오롯이 한곳만 보고 질주하고 나니, 성취감과 허전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이때의 허전함을 다른 목표로 달래줬어야 했는데, 결국 이어 달릴 목표를 찾지 못한 삶에 대한 갈증만 깊어갔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다른 공간, 다른 문화, 다른 일상!

그곳에서 많이 보고, 듣고, 만나다 보니 ‘이거다!’ 싶은 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치관이 생겼다. 그래서 귀국하고 나면 머지않아 나의 Next 목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지 5년... 여전히 난 NEXT 목표를 찾지 못하고 계속 같은 공간을 맴돌고 있다. 예전처럼 이 일을 마냥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다보니 새로운 일을 찾다가고 결국 제자리인 거다. 그러다 보니 없던 미련도 생기고, 내려놨던 욕심도 불쑥불쑥 치솟아 오른다.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지만, 수년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채 삶에 대한 갈증만 깊어갈 뿐이다.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 골목길


2015년 가을, 세상 모든 것엔 존재의 이유가 있다며 꾸밈없이 그릴 줄 아는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넘치는 재능 소유자였지만, 고집 세고 괴팍한 성격 탓에 당시 주류 문화에 어울리진 못했다. 현재 그의 재능이 재평가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지만, 살아생전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빈센트 반 고흐’ 바로 그다. 


익히 알고 있던 고흐를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된 건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의 자화상을 보면서부터였다. 살짝 찌푸린 미간, 높고 각진 콧날, 굳게 다문 입술은 인자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괴팍한 꼰대 같아 보였다. 


‘굳이 날 인정하지 않아도 좋아, 난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인정받기 위해 내 뜻을 저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그림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었던 만큼 더 잘하고 싶었을 거다. 잘하고 싶은 만큼 자신감도 생기고, 인정받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니, 꼿꼿한 성격에 화도 많이 나고 조바심도 났을 거다. 그러한 고흐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자화상을 통해 느껴지는데, 당시,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했던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나 역시도 좋아했고, 나름 재능 있다고 생각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지만, 스스로 가둬버린 목표와 한계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베르쉬르우아즈에 잠든 반고호으와 동생 태오 묘지


그렇게 한동안 고흐의 자화상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의 ‘고흐의 발자취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찾은 곳은 고흐가 잠든 곳 ‘오베르쉬르우아즈’였다. 동네 곳곳마다 고흐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외롭고 지친 고흐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동네였다. 


반 고흐 <오베르 교회> 작품 배경인 오베르 교회


고흐가 머물던 ‘라부씨 여관’을 시작으로 고흐 그림의 배경지가 된 동네를 작품을 따라 한적하게 걷다 보면, 강퍅했던 마음이 치유받는 것 같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찾아온 작은 시골마을에서 오롯이 그림에 대한 순순한 마음으로 붓을 들었던 고흐의 마음이 동네 곳곳에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고흐가 꿈꿔왔던 성공한 삶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마을에서만큼은 정말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반 고흐 <까마귀 있는 밀밭>의 배경이 된 곳


나 역시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하지만, 잘하려고 할수록 욕심도 생기고, 미련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것이 본질인지 모른 채 눈앞에 놓인 허상을 쫓기 바빴다. 그랬던 내게 그날의 '오베르쉬르우아즈'의 따뜻한 온기는 적어도 내게 힘을 빼는 법을 알려주었다. 


오베르쉬르우아즈의 어느 골목길

 

5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생각과 상황이 겹치다 보니, 여행을 시작했던 순간부터 한국에 돌아왔을 때 수없이 결심했던 그 마음이 모두 희미해져 버렸다. 어떤 일을 하든 적어도 다른 사람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내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는데, 지금 나는 다시금 본질을 잃어버린 채 눈앞에 놓인 허상을 쫓아가고 있다. 



옛 동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행복한 삶을 살겠다 결심했던 그 순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미친 듯 올라오는 열등감을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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