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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Dec 20. 2020

서툰 사랑법

내게도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랬던 그곳에서...

흰 회색 도시 위로 적갈색 단풍이 물들었다. 고즈넉한 가을 향기가 물씬 풍기는 도시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사랑에 서툴렀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널 닮은 예쁜 아이도 있겠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은 부디 표현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미켈란젤로 광장 위에서 바라본 피렌체 전경



다른 듯 닮은 상처를 갖고 있던 우리. 상처를 회피하던 나와 다르게 그 친구는 늘 사랑이 고팠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했는지, 서툴기만 했던 스무 살의 감정은 애매모호 한 친구로 멈춰 섰다.      


그 후로 몇 년,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던 어느 날. 휴대폰이 울렸다. 


친구들에게 가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반가움과 설렘. 그리고 다시 시작된 애매모호 한 감정들. 


한 두 번의 통화가 만남으로, 그 만남이 긴 여운이 되어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풋풋한 썸이라고 하기엔 서로에게 숨기는 감정이 너무 많았다. 사랑이 고팠던 그와 사랑을 믿지 않았던 나. 우린 늘 불안하고 아슬아슬했다. 처음 만난 그때나, 다시 만난 이때나 우리는 여전히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몹시 추웠던 그해 겨울, 신촌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다. 사랑을 믿지 않았기에 그냥 스치는 감정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에 새겨진 긴 여운은 한 번씩 서늘한 바람이 되어 불어왔다. 그리고 어느새 그 바람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와 내 모든 걸 쓸고 내려갔다. 사랑이었다. 뒤늦은 후회. 늘 그렇듯 뒤늦은 후회로 찾아오는 아픔은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만 한다. 그렇게 사랑을 믿지 않았던 어리석음으로 인해 한동안 무너져 버렸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나는 피렌체를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늘 안타까운 타이밍으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줬던 이들이지만, 적어도 피렌체에서만큼은 서로의 감정에 솔직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사랑을 믿지 못하는 나에게 피렌체는 파랑새 같은 도시였다.     


그런 피렌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고즈넉한 분위기와 도시 전체를 감싸는 검붉은 빛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디서든 보이는 두오모 성당의 모습은 누구든지, 어떤 모습이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피렌체는 혼자보다는 둘이 더 어울리는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두오모성당 쿠폴라에서 바라본 피렌체


피렌체에서 머물었던 약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그동안 유럽여행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을 재회했다. 지리적 위치, 여행 시기와 경로들이 겹쳐서 그럴 수도 있지만, 파리, 뮌헨, 스위스, 밀라노 등 여러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피렌체에서 모여들었다. 그래서였을까? 피렌체 곳곳에서 말도 안 되는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을 많이 마주했다.     


#두오모 성당 앞에서..

영화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길 바랐나 보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거지, 한국에서도 우연히라도 마주칠 수 없던 그를 이 먼 타국 땅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허무맹랑 꿈을 꾸다니.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미련으로 남아 가슴 깊이 자리했나 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 알면서도 기대해본다. 그리고 기다려 본다. 


그 후로 또 몇 년. 난 지금도 사랑이 서툴다.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지만, 결국 제자리걸음이다. 그래서 가끔 그가 생각날 때가 있다. 미련이나 아쉬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냥 그는 나처럼 제자리걸음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사랑하며 사길 바랄 뿐이다. 


피렌체 베키오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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