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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소장 Nov 29. 2023

7. 세조는 왜 왕이 되고 싶었을까?

조선 왕에 관한 27가지 궁금증

 정통성이 완벽했던 단종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른 세조, 그는 왜 조선의 왕이 되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불안한 왕권이 문제였다면서 그동안 정도전 태조 태종 세종 문종이 이루어 놓은 업적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고려 말 상황으로 되돌려 놓은 세조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되기 전 수양대군     


 수양대군은 세종이 왕이 되기 전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세종이 왕이 되고 형 문종은 세자가 되어 궁궐로 들어가게 되었고 동생 안평대군은 처음부터 궁궐에서 태어났기에 수양대군만 어린 시절을 궁 밖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모도 학문도 인품도 완벽한 형과 천재적인 예술 감각을 가진 동생 사이에서 수양대군은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세종은 자기가 왕자 시절 나랏일에 참여하지 못했던 사실이 아쉬웠는지 능력 있는 아들들에게 일을 할 기회를 주게 되는데 형과 동생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문종과 마찬가지로 집현전 학사들(정인지, 신숙주 등)과 친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나 문종이 죽으며 김종서 황보인 등 고명대신들에게 힘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진 집현전 학사들과 수양대군은 손을 잡게 되었죠. (이를 반대하는 집현전 학사들도 물론 많았습니다.)     


-한명회와의 만남     


 사실 수양대군이 한명회라는 인물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종과 문종이 살아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을 수양대군을 부추긴 것이 한명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어린 나이 왕위에 오른 단종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수양대군이 역모를 일으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종친으로서 안평대군과 함께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역모를 실행할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와 있기도 하거든요.      


 한명회는 칠삭둥이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당시 칠삭둥이는 생존 확률이 낮았기 때문에 죽은 아이라 생각하고 이불에 둘둘 감싸서 한쪽으로 치워 놓았는데 그런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죠. 그렇게 평생을 살아남아 임금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된 인물이죠.      


 고려에서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면 좋은 관직을 가질 수 있었는데 조선에서는 오직 과거에 합격해야만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명회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잘하지도 못해서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는 음서제를 이용하여 경덕궁 궁지기라는 한미한 자리를 맡아 일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한명회에게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개경 출신 사람들이 한양에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도 개경 출신이니 당연히 참석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단 관직에 있다고 무시한 것이죠. 그날 이후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한명회에게 꿈을 실현할 기회가 생깁니다.      


 공부 머리는 없었지만, 잔머리가 잘 돌아가기로 유명했던 한명회에게는 권람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략결혼을 해서 부인이 있었는데 옆집 처녀에게 반해 고민하고 있었고 한명회는 꾀를 내어 그 처녀를 권람이 첩으로 삼을 수 있게 도와주어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고 하죠. 권람은 이후 한명회를 수양대군에게 소개해 주었죠. 그리고 한명회의 인생은 변하게 됩니다.     


 수양대군은 어려서부터 무협지를 좋아했다고 해요. 전쟁 영웅들의 아찔한 승부를 즐기던 그의 취향은 아버지인 세종과 형 문종에게는 없는 것이었는데 12살의 조카가 왕이 된 상황은 그에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들게 했죠. 수양대군은 마침 한명회를 만나게 되었는데 첫 만남부터 둘은 마음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왕이 되고 싶었지만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는 여러 방법을 제시합니다. 무장들을 포섭하기 위해 활쏘기 모임을 자주 가지고 그들에게 술과 안주를 사며 환심을 얻고 친해졌다고 하죠. 그리고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게 되면서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오른팔이자 1등 공신이 되어 활약을 시작합니다.    

 

-경연 대신 회식을 가진 세조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고 단종의 세력을 모두 몰아낸 자리에 남은 건 일부 집현전 학사들과 한명회 등 공신들이었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목표로 했던 세조는 신하들과 정책을 의논하는 자리인 경연을 폐지 시키고 집현전을 없앴습니다. 세종과 문종이 되돌려 놓은 의정부의 역할을 다시 축소 시키며 육조가 직접 왕에게 보고하는 육조직계제를 시행하게 되죠. 그리고 모든 결정은 여러 번의 난을 진압한 공신들과 함께하게 되는데 그들이 혹시나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까 불안해서 자주 회식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공신의 수가 너무 많아 나눠줄 땅이 부족해지자 과전법을 직전법으로 바꾸어 현직 관리에게만 나누어주었는데 어차피 여러 번의 공신 책봉으로 땅이 많아진 신하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고 하죠. 일 잘하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백성을 위한 일을 추진하던 시대는 사라지고 측근들과 정치를 하는 시대가 오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공신들의 힘이 또 비대해지자 종친에게 힘을 주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다져놓은 조선을 흔들어 놓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죠. 유교의 나라에서 불교를 사랑해 원각사를 짓고 10층 석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온몸이 가려운 증상에 시달렸고 왕으로 지내는 내내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정인지와 세조     


 정인지는 세종 시대 인물로 기억하지만, 사실 세조와 친분이 더 큰 인물입니다.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비상하고 글을 잘 읽었다고 하는 정인지는 13살에 성균관에 입학하고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하는 등 천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술을 좋아하고 뭔가 자꾸 빼먹어 혼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강직한 친구들과 달리 술에 물 탄 듯 살아온 덕에 최고의 자리인 영의정에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양대군과의 인연은 정인지가 세자시강원에서 일하던 때로 거슬러 가는데 그때 세자는 문종이었고 그 옆에 수양대군과 인평대군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고 하죠. 정인지의 전문 분야는 수학과 천문학으로 학문이라면 빠지지 않는 세종도 정인지에게 물어볼 만큼 계산 분야에서는 최고였다고 합니다. 천문학 프로젝트의 완성인 <칠정산 내, 외편>과 세금 정책의 핵심인 <공법 사업>이 정인지의 작품이었죠. 물론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으로도 유명하고요.      


 세종의 핵심 인재이던 그는 계유정난에서 수양대군 편에 서게 되며 함께 일했던 집현전 학사들과도 그 운명이 달리하게 됩니다. 세조가 육조직계제를 부활시키는 바람에 역할이 축소되긴 했지만, 영의정 자리에 오르며 한명회와 함께 핵심 세력이 되었지요. 그러나 술버릇이 좋지 않던 정인지는 술자리에서 여러 번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단종의 유배지로 궁녀를 보내자는 의견에 반대한 적이 있었는데 꿈에 세종이 나와서 배신자라고 욕했다던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었는지 술자리에서 세조에게 어린 조카를 그렇게 죽여야만 했냐고 소리쳤다가 탄핵 소동에 휘말리기도 했다고 하죠. 그러나 세조는 끝까지 정인지를 감싸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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