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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소장 Dec 15. 2023

12. 인종은 왜 굶어 죽었을까?

조선 왕에 관한 27가지 궁금증

 조선의 왕 중 가장 재위 기간이 짧았던 인종, 몸이 약했던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운 불행한 삶을 살았던 왕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신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인종은 왜 불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엄마 장경왕후 윤씨의 죽음      


중종에게는 세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후궁은 더 많았지만) 우선 첫 번째 왕비였던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반정으로 왕비가 되었지만 7일 만에 쫓겨나게 됩니다.


 중종과 단경왕후의 사이는 좋았지만 신씨가 반정의 원인을 제공한 신수근(연산군의 처남)의 딸이라 중전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였죠. 신하들보다 힘이 약했던 중종은 어쩔 수 없이 단경왕후를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왕비를 맞이하는데 이분이 바로 인종을 낳은 장경왕후 윤씨였습니다. 하지만 인종을 낳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었죠. 


그래서 왕비의 자리가 비어 있으니, 단경왕후를 다시 불러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실 중종에게는 정식부인이었던 왕후보다 더 사랑하는 후궁 경빈 박씨가 있었습니다. 인종보다 훨씬 먼저 태어난 경빈의 아들 복성군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 복잡한 사정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갓 태어난 어린 인종은 궁궐에서 자라지 않고 어느 재상가에 맡겨 길러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상가에 사정이 생겨 거처를 여러 번 옮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와 애착이 형성되어야 할 어린 시절 인종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죠.     


하지만 인종은 세 살 때 천자문을 이해할 정도로 영특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인 중종은 그 말을 믿지 못하여 직접 궁으로 불러 시험해 보았고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죠.


그래서 인종은 이례적으로 여섯 살에 세자 책봉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조선의 안정적인 왕위 계승을 위해서기도 했죠.    


그리고 중종은 경빈을 총애했고 첫 번째 아들 복성군도 좋아했지만, 경빈은 (집안이 배경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하네요.) 조선의 왕비가 될 수 없었고 복성군은 세자가 될 수 없었죠.


신하들은 이들을 견제하고 인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중종은 세 번째 왕비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녀가 바로 문정왕후였죠.


문정왕후는 인종을 친아들처럼 대했고 사이가 좋았었지만,

시간이 흘러 문정왕후에게서 진짜 친아들이 생긴 후 변하기 시작했죠.     


- 대윤 vs 소윤     


인종은 점점 더 신하들이 원하는 인재로 잘 성장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괴이한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세자가 먹다 남긴 음식을 아랫사람들이 먹었다가 식중독을 일으킨 게 두 번이나 되었고 중종 22년 세자의 생일날 누군가 죽은 쥐의 사지를 찢고 눈을 불에 태워 동궁전 바깥쪽에 걸어둔 사건(작서의 변)과 중종 28년 인종과 중종을 목각인형에 저주의 글을 써서 죽이려 했다고 몰아간 목각인형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사사되었죠.     


그러나 인종의 비극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위협이 되었던 경빈과 복성군이 죽었고 이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김안로(세자파)가 권력을 잡게 되지만, 문정왕후가 궁궐에 들어온 후 17년 만에 왕자를 생산해 내면서 이야기가 더 복잡해지게 되죠.     


자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 기름을 부은 건 중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종을 지키려는 신하들 (외삼촌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 세력) 과 훗날 명종이 되는 경원대군 ( 윤원로, 윤원형 형제 특히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세력)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중종은 경원대군을 예뻐하고 윤원형을 승진시킵니다.


중종은 정말 연구가 필요한 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하들의 갈등은 커져만 갔습니다. 중종의 애매한 결정들로 서로를 향한 미움과 불만이 늘어가고 있었죠.


 그러던 중 세자의 처소에 불이 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세자는 도망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문정왕후가 자기가 죽기를 바라니 살고 싶은 의지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문종이 애타게 찾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조선의 왕 중 가장 짧은 8개월의 재위 기간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중종이 죽고 자연스럽게 세자였던 인종은 조선의 12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인종을 지지하던 외숙부 윤임(대윤) 세력에 의해 왕이 될 수 있었죠.


그러나 효심이 깊었던 인종은 문정왕후의 차가운 태도에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정왕후는 인종의 인사도 받지 않고 만나면 자기와 경원대군을 언제 죽일 거냐면서 사람 피 말리지 말고 죽이려면 빨리 죽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네요. (후대 문정왕후가 미웠던 신하들이 사심을 넣어 더 나쁘게 표현한 것도 같지만)      


인종은 어느 순간부터 물도 마시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는지 먹을 것을 거부하는 인종을 살리기 위해 궁인들 손에 염분을 묻혀 입 안에 넣었지만, 그 손을 깨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몸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겠죠. 결국 인종은 경원대군에게 후사를 잇게 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승하합니다.      


인종의 삶을 돌아보면 왕세자라는 특별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운 삶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왕 중 가장 인성이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받는 인종은 왕이 되고 난 후 자기를 위협했던 복성군은 죄가 없으니 억울함을 풀어주라고 했고 아버지가 버린 조광조의 신원도 복원해 주라고 했습니다.


 새어머니인 문정왕후와 동생 경원대군도 미워하지 않았죠.


 그래서 만약 인종에게 아이가 있었더라면 스스로 삶을 내려놓은 것으로 보이는 행동들을 안 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인종은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자식을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이 소윤들의 야심을 더 부채질했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학문이 뛰어나고 판단력과 인성이 훌륭했던, 그래서 신하들과 유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인종의 죽음은 너무나 아쉬운 장면입니다. 다음 왕이 된 명종과 문정왕후 그리고 선조로 이어지는 조선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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