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까미노 제5일 차 (Pamplona to Puente La Reina, 25.3km; Sept. 24, 2017)
팜플로나의 밤은 깊었지만, 내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져 갔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는 곧 내 마음의 무게였고, '이 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밤 10시 반쯤 타이레놀 두 알을 삼키고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새벽 1시 반에 거짓말처럼 눈이 떠졌다. 더 이상 잠들 수 없음을 직감하고,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을 켠 채 묵묵히 여행 일지를 써 내려갔다. 내일은 일요일, 짐을 부칠 우체국은 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무게를 그대로 짊어지고 24km 떨어진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가야만 했다.
날이 밝고 팜플로나를 벗어나자마자, 순례길은 어젯밤의 고민이 사치였다는 듯 육체의 고통으로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들판 사이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순례자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9월 말의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고, 그늘 한 점 없는 흙길 위에서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바로 눈앞에 가파른 언덕이 떡 하고 버티고 있었다. 바로 까미노 길에서 유명한, 일명 '용서의 언덕'이었다.
이 언덕은 몹시 가팔라서 걷기 힘들고 첫 구간은 그나마 비교적 완만한 경사이지만 마지막 약 30분 정도의 구간은 길도 좁고 급경사여서 올라가기가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니다. 숨차게 오른 정상에는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고 거기는 순례자들의 필수 포토죤이 되어 있다.
까미노 먼 길의 첫 관문이 자기 육체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피레네 산맥이라면 두 번째 관문은 영적인 것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발을 들여놓게 되는 나바라(Navarra) 지역에 있는 첫 도시 빰쁠로냐(Pamplona)와 와인의 고장 리오하(Rioja) 평원 사이에 이 ‘용서의 언덕’(Alto del Pardon)이 자리잡고 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도 출발 사흘 혹은 나흘째는 반드시 용서의 언덕을 올라야 한다.
< 과거'라는 짐>
이곳에 서면 ‘용서의 언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순례자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별들의 땅 산티아고까지 온전한 순례를 마치려면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의) 길을 되돌아보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과거’라는 돌덩어리들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 같았다.
등 위에 올라탄 약 12kg의 순례보따리가 육체의 짐이라면 아마도 까미노 길을 가는 데 그에 못지않게 무거운 마음의 짐이 아마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의 짐들, 미움, 원망, 미련, 집착 등이 아닐까. 그래서 순례길 초기에 용서의 언덕이라는 두 번째 관문이 버티고 있는 것 아닐까. 인생에 미움과 원망의 짐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무리 먼 육체의 단련 길을 걷는다 해도 마음과 영혼의 자유를 얻지는 못한다는 의미일까? 진정한 자아와의 대면을 위해서 스스로 가장 먼저 벗어야 할 가면이 (자신을 포함) 용서하지 못하는 아집이라는 것인가?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얻겠다고 시작한 길이었던가. 지금 이 순간, 걷는 행위는 그저 고통일 뿐이었다.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의 세포가 ‘여기서 멈추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자신에 대한 시험이, 가장 혹독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정점에 달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답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모든 생각을 멈췄다. 왜 걷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발이 얼마나 아픈지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대신 오직 내 발소리와 숨소리에만 집중했다. 뜨거운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상냥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무거웠던 발걸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비워내자, 비로소 길 자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을 그렇게 걸었을까.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해 '알베르게 하쿠에(Albergue Jakue)'의 문을 들어섰을 때, 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오늘은 정말이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하지만 순례길의 신은 언제나 최고의 보상을 가장 힘든 순간 뒤에 숨겨두는 모양이다.
그날 저녁, 알베르게 식당에서 우연히 합석하게 된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와 친구가 되었다.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그는, 나의 지친 기색을 살피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우리는 좋은 음식과 와인을 나누며 순례길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다. 육체와 정신의 한계에 부딪혔던 하루의 끝에서, 나는 의사 친구를 만나는 특별한 처방을 받은 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산책에 나섰을 때, 나는 비로소 이 마을의 심장과도 같은 '여왕의 다리'(Puente de Reina)를 마주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설 때는 지친 나머지 정신없이 지나쳤던 다리였다.
11세기, 나바라의 자비로운 여왕 도냐 마요르가 위험한 강을 건너야 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놓아주었다는 이 다리는, 수많은 길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기도 했다.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비로소 하나의 물결이 되어 산티아고로 향하는 것이다. 문득, 오늘 내가 만난 이탈리아 친구와의 인연도 결코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수백 년 전, 한 여왕이 순례자들을 위해 자비로 길을 열어주고, 흩어진 길들을 하나로 모아주었던 이곳에서, 지친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고통으로 가득했던 하루의 끝에서, 나는 여왕의 다리가 품어온 '연대'와 '치유'의 정신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