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까미노 제7일 차 (From Estella to Los Arcos, 21.4 km; Sept. 26, 2017)
'북쪽의 톨레도', '순례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던 에스테야에서의 하룻밤은 달콤했다. 하지만 순례자는 다시 길 위에 서야만 한다. 7일 차의 아침, 나는 '별의 도시'를 등지고 21.2km 떨어진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의 맛있는 식사와 훈훈한 길 위의 우정으로 새로운 기운을 충전한 출발은 힘찼으나,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밤새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매 발걸음이 고통 그 자체였다. 어제 깨달은 'Let it go'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현실의 고통은 이토록 집요했다. 나는 이 길이 마치 내 인생의 어떤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그대로 복사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것이 바로 나의 인생까미노 'Camino of My Life'다.
첫 일주일이 가장 힘들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내 몸과 발이 이 길의 흙과 돌, 바람과 태양에 적응하는 이 첫 번째 관문에서 대부분의 순례자가 포기하고 돌아선다고 했다. 나 역시 그 '포기'의 문턱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바로 그 절묘한 타이밍에, 순례길은 첫 번째 선물을 내밀었다. 첫 100km 지점을 통과한 것을 축하라도 하듯, 이라체(Irache) 수도원의 유명한 '와인 샘(Fuente de Vino)'이 나타난 것이다.
'이거 실화? ^^'
수도원 벽 한쪽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진짜 붉은 포도주가 공짜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와인이라니. 하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순례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도 조가비 껍데기에 와인을 받아 들고, 함께 있던 순례자들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Salud(건배)!" 고통스러운 길 위에서 만난 이 파격적인 환대는, '포기하지 마, 이 정도는 즐겨도 괜찮아'라는 길의 속삭임처럼 달콤했다.
와인의 여운도 잠시, 길은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ín)으로 향하는 약 3시간의 구간은, 그늘 한 점 없는 포도밭과 밀밭 사이를 하염없이 걷는 길이었다.
특히 첫 13km는 마을도, 도로도, 사람도 없는 외진 길의 연속이었다. 이곳이 바로 순례자들이 부르는 '별들이 바람에 흐르는 길'이었다. 이름은 더없이 낭만적이었지만, 현실은 뜨거운 태양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침묵 속에 걸어야 하는 고행이었다. 드넓은 공간 속에서 유일한 동반자는 오직 정적과 내 발소리뿐이었다.
'No Pain, No Glory'. 며칠 전 알베르게 담벼락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올랐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토밭을 보며 지침, 목마름, 비 오듯 흐르는 땀줄기와 싸우고 있을 때, 나는 이 문장의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세 시대, 로스 아르코스로 향하는 길은 지금처럼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지칠 대로 지친 순례자들이 아무리 걸어도 마을이 보이지 않아 절망감에 빠지곤 했었는데, 그때 마을의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ía) 꼭대기에 있던 '수탉의 종(bell of the rooster)'이 울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 종소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거나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순례자들에게 '마을이 여기 있다'라고 알려주는 유일한 이정표였다고 전해진다.
끝없이 펼쳐지던 황토밭, 'No Pain, No Glory'를 되뇌며 걷던 그 길의 끝에서 나는 마침내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다. 중세 시대, 지친 순례자들은 아무리 걸어도 나오지 않는 이 마을을 향해 울려 퍼지던 '수탉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힘을 냈다고 한다. 오늘날 그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이 내 마음속에서 그날의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발이었다. 물집이 잡히면 소독된 바늘과 실로 과감히 터뜨리고 물을 빼내야 한다. 하지만 매일 25km 가까이 걸어야 하는 까미노 일정은, 그 상처가 아물 시간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다음 날, 아물지 않은 상처 위를 다시 딛고 걸어야 한다. 그러면 상처는 더 덧나고, 최악의 경우 일정을 포기해야 하는 재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이 길의 관건은 열정이 아니라, 그저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slow and steady)' 걷는 것뿐임을.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나는 통증을 견디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저 꾸준히 발을 내디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고통 없이는, 영광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