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추억에(9)

-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by 디본

9. 까미노 첫 일주일을 살아남고, 와인의 땅으로

: 제8일 차 (Los Arcos to Logrono, 27.7km; Sept. 27, 2017)


1) Arcos의 아침, 'Rise and Shine!'


이제 순례길, 첫 일주일이 지나고 두 번째 주로 들어서는 첫날이 밝았다. 로스 아르코스의 아침, 어둠 속에서 '수탉의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순례자들을 절망에서 구해냈다는 그 종소리가 왠지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Rise and Shine, 오늘도 가야 할 길이 멀다."



20170927_080213.jpg 아침 알베르게 카페내부 - 각종 언어의 인삿말들이 보인다



발바닥은 여전히 불에 덴 듯 화끈거렸지만, 7일간의 사투 끝에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걷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팜플로나 이후 첫 대도시이자, 스페인 최고의 와인 산지 '라 리오하(La Rioja)'의 수도인 로그로뇨(Logroño). 27.7km, 까미노의 하루 평균 걸어야 하는 거리보다 조금 긴 거리였다. 동네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으면서 마음을 단디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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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템플 기사단의 비밀을 지나


길은 로스 아르코스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끝없는 들판으로 이어졌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상쾌했지만, 첫 번째 오르막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산솔(Sansol) 마을을 지나고, 신비로운 마을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ío)에 다다랐을 때, 나는 걸음을 멈췄다.



20170926_133603.jpg 순례길 중간중간에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자연색감 - 발은 고생하지만 눈은 내내 호강 중



20170927_092613.jpg 저기 마을이 보인다! 무심히 걷다 보면 불현듯 눈앞에 마을이 나타나면 안도감이 밀려온다.



마을 한가운데, 8 각형의 기이한 성당(산토 세풀크로 성당)이 서 있었다. 십자군 전쟁의 템플 기사단이 지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 나는 성당의 돌벽을 만지며 생각했다. 수백 년 전, 성지를 지키던 기사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그들에게도 나처럼 발바닥 통증이 있었을까? 어쩌면 이 길은, 21세기의 나에게도 '성지'를 향한 '전투'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20170927_165615.jpg 지쳐 쓰러져 자는 순례자 -낮잠 자기에 명당인 성당 건물 안


3) 경계를 넘어서: 성인(聖人)이 놓은 다리를 건너다


길고 긴 여정의 가장 힘든 순간은, 풍경이 변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몇 시간을 걸어도 똑같은 붉은 흙밭과 올리브나무뿐이었다. 제7일 차 '별들이 바람에 흐르는 길'이 오늘은 '태양이 내리쬐는 길'이 되어 나를 시험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길가에 큼지막한 표지판이 보였다. 'LA RIOJA'. 드디어 '나바라(Navarra)' 주를 떠나 '라 리오하(La Rioja)' 주에 들어선 것이다! 피레네산맥으로 시작된 험난한 나바라 길을 8일 만에 내 두 발로 건넜다는 거대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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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나(Viana)의 거대한 성곽을 마지막으로 통과하고도, 로그로뇨는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에브로(Ebro) 강이 앞을 가로막았고, 그 위로 장엄한 '푸엔테 데 피에드라(Puente de Piedra)', 즉 '돌의 다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이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었다. 11세기, 순례자들의 안전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성인(聖人)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와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가 직접 건설을 도왔다는 전설이 깃든 곳. 거친 나바라를 통과한 순례자가 풍요로운 라 리오하 주로 들어서는 이 신성한 관문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경건한 마음으로 건넜다.


Puente de Piedra de Logroño.jpg Puente de Piedra



4) '거위 게임' 한가운데 서다


다리를 건너 도시의 구시가지로 들어서자, 나는 성당 앞 광장에서 기이한 광경을 마주했다. 바닥 전체에 거대한 '주사위 놀이판'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까미노에 얽힌 가장 신비로운 전설, '거위 게임(Juego de la Oca)' 판이었다. 템플 기사단이 까미노 순례길 자체를 암호화하여 만들었다는 비밀 지도. 전설에 따르면 '다리에서 다리로 건너뛰는' 칸은, 우리가 5일 차에 건넜던 푸엔테 라 레이나(여왕의 다리)에서 오늘 건넌 로그로뇨의 이 '돌다리'를 상징한다고 했다.


나는 거대한 게임 판 위에 서서 잠시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길을 그저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그리고 힘겹게 걷고 있었지만, 역사적으로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거대한 '게임'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것이고, 지금은 8일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다음 단계로 '점프'해낸 것이었다.



5) 순례자를 위한 천국, 라우렐 거리


알베르게에 짐을 던져놓고, 나는 곧장 '라우렐 거리(Calle Laurel)'로 향했다. 27.7km를 걸어온 순례자의 발은 처참했지만, 마음만은 '게임'의 다음 단계를 클리어한 승자처럼 들떠 있었다.


라우렐 거리는 순례자를 위해 존재했던 이 도시의 역사를 증명하는 듯했다. 거리는 이미 와인잔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차 축제 같았다. 나는 바(Bar)에 기대어 핀초스 하나와 이 지역의 명물인 '리오하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20170927_165034.jpg Alloh ~~^^ 순례자들에게 친절한 스페인 현지인들



street-with-restaurants-in-night.jpeg 부드럽고 풍미가 좋은 Rijoa Wine과 입맛 돋우는 온갖 Tapas가 넘치는 밤의 Laurel 거리


붉고 향긋한 와인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27.7km의 고통과 '거위 게임'의 비밀이 하나로 녹아들었다. 고통의 땅 나바라를 내 두 발로 건너온 자, '게임의 다리'를 통과한 순례자에게만 허락된, 이 달콤하고도 짜릿한 보상. 나는 8일 만에 처음으로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하며, 이 떠들썩한 도시의 밤에 기꺼이 취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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