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 까미노 제12일 차(Tosantos to Agés, 23.5 km; Oct. 2, 2017)
10월 2일 월요일 아침 7시. 토산토스(Tosantos)의 작은 알베르게를 나서는 공기가 제법 차갑다. 문득 달력을 보니, 지금쯤 고국 한국은 따뜻하고 풍성한 '추석' 연휴가 한창일 때다. 가족들은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시간이건만, 나는 지구 반대편 낯선 땅에서 배낭 하나 짊어지고 홀로 길 위에 서 있다.
명절이 주는 묘한 향수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부터 시작된 광활한 메세타 평원이 주는 압도감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짙은 고독이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이 쓸쓸함조차 순례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끈을 고쳐 매고,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을 가슴 한켠에 묻은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어제 토산토스까지 이어졌던 메세타의 평탄한 길은, 오늘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를 지나면서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 악명 높은 '오카 산맥(Montes de Oca)'이 시작된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대신, 울창한 참나무와 소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는 깊은 산길이 이어졌다.
중세 시대에는 산적들이 출몰해 순례자들을 위협했다는 이 숲은, 지금은 지독한 정적만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오르막의 거친 숨소리와 자갈 밟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세상. 이 절대적인 고요를 견디기 위해 나는 MP3 플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귀를 채우는 익숙한 선율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깊은 숲이 주는 적막감에 잡아먹혔을지도 모른다. 음악은 고된 오르막을 밀어주는 손길이자,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유일한 말벗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오카 산맥의 정상 부근,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닦으려던 참이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소박한 나무로 지어진 휴계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쉬어가라고 만들어 둔 그곳에는 반짝이는 은색 명판 두 개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무심코 들여다본 그 명판에는, 이 까미노 수례길 위에서, 혹은 이 길을 그리워하며 천국으로 떠난 두 아일랜드 여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첫 번째 여인, 브레다 오닐(Breda O'Neill, 1925-2015).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자신을 '자랑스러운 티퍼러리(Tipperary, 아일랜드의 지명) 여인'이라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적힌 문구가 내 가슴을 쳤다.
"I want no rites in a gloom filled room. Why cry for a soul set free"
"어둠 침침한 방에서 장례를 치르지 말아요. 자유로워진 영혼을 위해 왜 우나요."
평생의 삶을 마치고 떠나는 순간, 그녀는 죽음을 슬픔이 아닌 '영혼의 해방(Soul set free)'이라 불렀다. 200km의 메세타 평원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던 나에게, 90년의 인생을 살아낸 선배가 "이 모든 고통과 짐은 결국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두 번째 여인, 폴라 고먼(Paula Gorman, 1963-2016).
브레다가 떠난 지 1년 뒤, 53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 아마도 브레다의 딸이거나 아주 가까운 가족이었으리라. 그녀의 명판에는 남겨진 이들의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For yes, her beauty did attain its noon: she did influence and love so many people. And they in turn flowered. Suaimhneas Síoraí"
"그래요, 그녀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했었죠. 그녀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좋은 영향을 끼쳤고, 그 사랑과 영향력은 (이 땅에서) 차례로 꽃을 피워냈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누군가의 죽음이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꽃을 피우게 했다는 말.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여전히 세상에 남아 꽃이 되고 숲이 되었다는 뜻일까.
한국은 지금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추석이다. 지구 반대편 오카의 숲속에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두 아일랜드 여인의 '성묘'를 대신하고 있었다.
브레다와 폴라. 1925년생 노모와 1963년생 딸(로 추정되는) 두 여인. 어쩌면 그녀들은 생전에 이 까미노를 함께 걸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 길을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를 위해, 남겨진 가족들이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이 숲속에 영혼의 쉼터를 마련해 준 것일지도.
'자유로워진 영혼'이라는 브레다의 문장이 자꾸만 입안에 맴돌았다. 발바닥의 물집도, 어깨를 파고드는 배낭의 무게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결국은 나를 얽매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내 영혼이 해방되기 위한 의식(Rites)이 아닐까.
나는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명판 앞에 조금 부었다. 한국식 약식(略式) 성묘이자, 먼 길을 걷는 동료 순례자로서 보내는 존경의 표시였다.
"브레다, 폴라. 당신들의 영혼이 이 아름다운 숲에서 영원히 자유롭기를. 그리고 나 또한 이 길의 끝에서 당신들처럼 진정한 자유를 만날 수 있기를."
숲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군가의 끝은, 누군가에게는 다시 걸을 힘이 된다. 오카의 숲은 그렇게 삶과 죽음, 고통과 자유가 하나로 이어지는 신비로운 길이었다.
숲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내면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땀에 젖은 채 숲길을 걸으며 문득 한 문장이 뇌리를 스쳤다.
"Getting closer to God is getting closer to Yourself!"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당신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랬다. 나는 무언가 대단한 신을 만나기 위해, 혹은 거창한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고통을 견디며 껍데기 같은 허영과 욕심을 벗어던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진짜 나'와 마주하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기도이자, 이 순례길이 나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였다. 숲은 나에게 그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그토록 깊고 고요했나 보다.
5) 평화의 마을 아헤스, 그리고 산 라파엘의 위로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 수도원을 지나, 숲이 끝나고 시야가 트일 무렵,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 아헤스(Agés)가 그림처럼 나타났다. 22.5km를 걸어온 내 몸은 천근만근, 발바닥은 불이 난 듯 뜨거웠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알베르게 산 라파엘(Albergue San Rafael)' 간판이 구세주처럼 보였다. 배낭을 내려놓고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누이자,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왔다.
샤워를 마치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아헤스는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의 작은 식당 'La Taberna de Ages'에서 3.5유로짜리 햄버거 하나를 시켜 먹었다. 추석 명절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고된 하루 끝에 만난 이 소박한 음식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달콤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하늘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몸은 부서질 듯 아프지만, 마음만은 꽉 찬 보름달처럼 충만하다. 고독했던 숲길도, 그리운 추석의 기억도, 모두 이 길 위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물어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부엔 까미노(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