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너무 케케묵은 얘기이긴 하지만, 앤디 윌리엄스가 작곡한 영화 [Love Story](1970)의 주제곡은 멜로디도 아름답지만 가사도 한 편의 시다. “Where do I begin to tell the story of how great a love can be, the sweet love story older than the sea...”(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임을 말해줄 수 있으려면, 바다보다 더 오래된 러브스토리 말입니다.) 무엇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라는 첫 구절이 애잔한 감정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벌써 오래된 추억이 되었다. 지금부터 8년 전이니까. 생의 한 단계를 마감하면서 장장 800km가 넘는 순례길을 걷기엔 임계치에 달한 연식과 육체를 이끌고 용기를 내어 떠났던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 걸을 당시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과 추가로 작성한 후기들을 모아 나만의 작은 책으로 출간하려고 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기'라는 도둑은 어김없이 내 손과 발목을 묶어놓고 놔주지 않았다. 절박한 마음에 그나마 띄엄띄엄 페이스북에 올렸던 스토리들을 다시 수정 보완하고 여기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재수 끝에 브런치 작가의 문을 열게 된 기념으로.
몇 번일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시리즈로 나누어 올리려고 한다. 이런 류의 까미노 후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무수히 많은 걸 알기에 망설여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만의 스토리와 정감의 기억들을 쓰고 싶었고 이렇게 하는 것만이 그나마 흐려진 내 추억의 시간들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될 것 같아서 용기를 내게 되었다.
:까미노 제0일 차(@Saint-Jean-de-Pied de Port; Sept. 19, 2017)지
생장 마을은 사실 내가 걷게 된 France Camino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역사와 의미에 있어서 다른 까미노길의 종착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산티아고 까미노의 먼 여정은 피레네 산맥아래 작은 국경 마을 프랑스의 ‘생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 파리에서 출발할 때는 나는 그 마을을 그냥 긴 여정의 이른 출발을 위해 하룻밤 묶고 가는 역관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도착해서 보고 알게 된 생장마을은 보기에 아름답고, 알수록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었다.
생장 마을은 원래 근처의 생장르보((Saint-Jean-le-Vieux)라는 마을이 영국의 리처드 1세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난 후 12세기 후반에 다시 건설되어 Saint-Jean, Pied de Port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리처드 1세의 아버지 헨리 2세는 한 때 자신을 배반했던 아들과 그 편을 들었던 남작들에 대한 징계차원에서 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게 하였고 거기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리처드 1세가 ‘사자왕’ (Richard the Lion heart)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역사가 서려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아울러 마을 어귀에 있는 성야고보의 문 Port de Saint Jacques은 UNESCO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크다. 이러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의 건축학적 미와 바스크스타일로 지어지고 꾸며진 도로와 집들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생장 마을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생장 마을은 사실 내가 걷게 된 France Camino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역사와 의미에 있어서 다른 까미노길의 종착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Le Chemin de Puy 까미노는 프랑스 Puy en Velay에서 출발해서 생장 마을에 이르는 약 700km의 여정인데 그 길을 걷고 나서 계속해서 프랑스 까미노(약 800 km)를 걷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걸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장은 실제로는 년간 약 33만 명의 순례객이 찾는 산티아고 까미노 중에서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출발점이다.
생장 마을에 오후 3시 반쯤 도착한 후,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풀고, 까미노 순례 Passport를 수령한 후 마을을 잠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녁 6시 반쯤 마을 아래 레스토랑에 가서 다른 순례자들 무리에 어색하게 혼자 자리를 잡고 그래도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다시 숙소에 들어와 다음 날 함께 떠날 배낭을 단단히 챙겨둔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