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추억에(2)

: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by 디본



2. 까미노 첫째 날, 피레네의 아침이 밝다

:까미노 제1일 차(Saint-Jean to Orisson, 19.4 km; Sept. 20, 2017)



1) 드디어 첫째 날의 여명이 밝아오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생장의 돌길 위로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성문 바깥쪽 어귀로 모여들었다.


부산할 법도 한데, 아침 공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정적을 깨우는 것은 저마다의 긴장된 표정과 간간이 터져 나오는 습기 찬 기침 소리뿐. 누구도 불필요한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나 역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앞으로 걸어야 할 800km라는 숫자의 무게가 벌써부터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서둘러 길의 방향을 잡는 발걸음 소리들만이 조금씩 빨라지는 리듬을 탈뿐이었다.


<출발 선에서>



2) 첫 번째 통과 시험 - 피레네 산맥


생장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은 첫날부터 우리에게 가장 힘겨운 관문을 내어준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르는 해발 1,400m의 피레네산맥. 사람들은 이 길을 일명 ‘나폴레옹 루트’라 불렀다. 험한 만큼 중세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지만, 내게는 이 험난한 장거리 일정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시험하는 첫 번째 테스트처럼 느껴졌다.


<시작부터 가파른 피레네 오르는 길>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정에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귀에 들리는 것은 거친 내 숨소리와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뿐이었다. '꼭 이 길로만 가야 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3) 힘들 길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


물론 산맥을 우회하는 다른 길도 있다고 했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나폴레옹 루트가 폐쇄되어 반드시 그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절경이 힘든 생각을 잊게 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고개를 돌리자, 발아래로는 내가 출발했던 생장 마을이 장난감처럼 펼쳐져 있고, 산허리에는 밤새 내린 이슬을 머금은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이 길을 선택한 보상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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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구름에 덮인 생장 마을>


<양들의 침묵 @피레네>


<어떤 순례자는 출발 지점에서 자신의 몸을 뉘었다>




4) 긴 장정을 위한 숨 고르기 - 오리손 알베르게


얼마나 올랐을까, 저 멀리 산등성이 위에 쉼터처럼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오리손(Orisson)' 알베르게였다. 출발 후 약 8km 지점. 첫날부터 무리하고 싶지 않은 많은 순례자들이 저곳에서 하루 숨을 고르고 가는 곳이다.


나와 함께 출발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순례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분명 저곳을 예약해 두었으리라. 수요가 많아 성수기에는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 잠자리 하나 겨우 차지할 수 있다는 그곳. 거의 6시간 이상의 오르막 등정 후 드디어 나도 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여기 오리손 알베르게의 오랜 전통 중의 하나가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이 식당 홀에 모여 약 1시간 정도 소위 타운홀 미팅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각자 무슨 사연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여기서 이루고 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자신만의 스토리를 풀어놓고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단, 참여가 의무는 아니어서 한국에서 온 아저씨 들 - 미국 LA 교포 두 분과 나 - 은 그냥 경청하는 청중으로 만족을 하고 다른 순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거의 반 이상은 가톨릭 신자들인 거 같았고 그분들은 진짜 종교적인 순례에 가치를 두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다른 사연을 안고 왔지만 모두가 같은 소원을 품고 이 길 위에 서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눔을 통해 나는 이 길이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수많은(1년에 약 30만 이상)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모이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대들의 순례길에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묵언으로 빌어볼 때쯤 까미노 첫째 날의 해가 저물고 있었다.


<생장 마을 출발 약 8km 지점 피레네산맥 중턱에 자리 잡은 Orisson Alberge>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공동식사를 하기 전 자기 자신들의 사연을 나누는 community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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