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추억에(3)

: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by 디본

3. 바람의 언덕에서 다시 길을 묻다.

:까미노 제2일 차(Orisson to Roncesvalles, 18.6 km; Sept. 21, 2017)


1) 피레네 산속에서의 첫 번째 아침


오리손(Orisson) 알베르게의 아침은 고요한 규칙 속에서 밝아왔다.


전날 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처음 만난 이방인에서 길 위의 동료가 되었다. 저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각자의 사연을 풀어놓으며 국경도 나이도 없는 유대감을 나눴다.


"아침 6시 이전에는 샤워 금지!" 알베르게 관리자의 유쾌한 경고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었다. 타인을 위한 배려, 공동체를 위한 작은 양보. '인간은 자기 욕심을 버리는 만큼 위대해진다'는 잠언이 새벽 공기 속에 스며드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까미노의 에티켓이자 첫 번째 교훈이었다.



001.png <피레네 산맥의 동트는 새벽, 장엄하고 숙연하다>


오전 8시,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한 후 드디어 문을 나섰다.


어제 미처 다 넘지 못한 피레네의 능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장장 세 시간을 가파르게 치고 오른 뒤, 다시 두 시간을 험하게 내려가야 하는, 순례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험한 코스였다.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2) 다시 산맥을 오르다


다시 길 위에 서다. 사실 우리 인생 자체가 항상 길 위에 서 있는 것 아닐까?


"길을 오를 때는 발뒤축의 힘으로, 내려갈 때는 다섯 발가락의 밸런스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걸음의 원칙을 되새겼다. 이것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었다. 그간 살아온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나 자신을 길 위에 세우는 의식이었다.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존엄(dignity)을 되찾기 위한 고행이자 수행이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뒤에서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운동 치료사(therapist)라고 소개한 프랑스 청년이었다. 그는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왔다. 알아듣기 힘든 프랑스식 영어였지만, 그의 밝은 에너지가 무거운 발걸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우리는 한참을 동행하며 서툰 언어로 서로를 응원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 때마다 거대한 피레네의 높은 자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진 능선과 푸른 초원. 저 멀리 보이는 저 언덕을, 나는 기필코 넘어야 했다. 길게 늘어선 내 그림자는 이 거대한 풍경 속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였지만, 나는 분명히 길 위에 서 있었고, 내 두 발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저 언덕을 넘을 것이다!>


<나폴레옹 루트의 깔딱 고개>


3) 바람의 언덕에 서서


마침내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언덕의 정상에 섰다. 프랑스 쪽에서 불어오는 대서양의 습기 찬 바람 그리고 산맥을 만나 다시 더 거세진 피레네의 바람.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바람의 언덕'이라 불렀다.



<바람의 언덕에서 잠시 쉬어가는 사이>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서 잠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몰라 나는 문득 손에 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천 년의 순례길 위에서 최첨단 기기로 길을 확인하는 이 아이러니. 나는 길 위에서 다시 길을 묻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질문은 더 이상 스마트폰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내 인생의 발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


4) 론세스바예스로의 급하강길


정상을 지나자 아슬아슬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를 알리는 낡은 이정표가 보였을 때,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파른 내리막 경사길, 1시간 15분'. 남은 거리는 고작(?) 3.6km. 숫자가 주는 위안이 이토록 클 줄이야. 드디어 산맥너머 밑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원 알베르게에 도착,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둘째 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의 둘째 날, 나는 온몸으로 피레네를 안았고,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과 대화했으며, 바람의 언덕에서 마침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고 두 발은 고통스러웠지만, 내 마음은 어제보다 한 뼘 더 단단해져 있었다.


unnamed.png <Alberge de Peregrinos Orrega Roncesvalles>


<1, 2층으로 되어 있는 숙소 내 Bunk Bed, 2층에 배정받으면 그날 잠자리는 이등칸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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