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까미노 제3일 차(Roncesvalees to Zubiri, 21.4 km; Sept. 22, 2017)지
새벽 4시, 론세스바예스 성당의 새벽을 깨우는 성스러운 종소리가 어스름한 불빛의 창문을 넘어 귓전을 때렸다. 어제 가파른 ‘나폴레옹 루트’를 숨 가쁘게 넘어온 순례자들의 지친 몸을 깨우는 소리.
1,200명을 수용한다는 거대한 알베르게는 아직 어둠 속이었지만, 침대 곳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헤드랜턴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며 저마다의 순례를 위한 조용한 준비가 시작된다. 오늘의 목적지는 21.4km 떨어진 작은 마을, 수비리(Zubiri)다.
론세스바예스를 등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은 깊고 아늑한 숲으로 이어졌다. 피레네의 거친 숨결 대신, 안개가 덜 걷힌 촉촉한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길 양옆으로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들은 마치 세상의 소음을 막아주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고, 덕분에 길 위에는 오직 나와 내 발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다른 순례자들의 스틱 소리뿐이었다.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이 평온함은 순례자에게 주어진 값진 선물과도 같았다. 바로 그 고요함 속에서, 문득 순례길 내내 반복될 첫 번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이 길에서 무엇을 사색하고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부르게테의 안개 낀 숲을 지나고 에스피날의 고요한 오솔길을 걸으며, 복잡했던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하루. 앞으로 한 달 가까이 이어질 이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어떤 마음으로 걸어야 할지, 그 첫 질문을 던지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목적지인 수비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가벼워졌지만, 아침 일찍부터 쌓인 피로가 발바닥부터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겠지’ 하는 아니한 생각이 고개를 들 때쯤, 길은 마지막 관문처럼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슬며시 내밀었다.
피레네의 악명 높은 고개를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짐을 던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와 달리 ‘쉬어가는 날’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례길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 교훈을 숨겨두고 있었다. 수비리에 다다르기 전 넘어야할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쉬어가는 날’이라 여겼던 순례자의 마지막 힘을 시험하는 듯한, 만만치 않은 고갯길이었다. 바로 그 순간, 헐떡이는 숨결 사이로 평범하지만 강력한 진리가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 좋은 것은 언제나 가장 힘든 순간 바로 뒤에 숨어 있구나.’ 그렇게 마지막 힘을 짜내어 언덕의 정점에 섰을 때, 거짓말처럼 저 아래로 오늘의 목적지, 수비리 마을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수비리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안도감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을 입구 표지판 앞에서 땀에 젖은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곧장 강물이 흐르는 다리 쪽으로 향했다.
이미 몇몇 순례자들이 신발을 벗고 강가에 앉아 다리를 식히고 있었다. 나도 그들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를 벗었다. 양말을 벗은 발은 엉망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강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그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는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이 맛에 걷는 거지!
찌릿한 냉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오며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열기와 피로를 단숨에 앗아가는 듯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다리의 이름은 '푸엔테 데 라 라비아', 광견병을 고치는 기적의 전설이 깃든 '치유의 다리'였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은 아픈 동물을 낫게 하려는 간절한 믿음으로 이 다리를 찾았다고 한다. 오늘, 나는 지친 순례자의 몸을 위로받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방법은 달랐지만, 고통 끝에 찾아온 이 장소가 간절한 '치유'와 값진 '보상'의 공간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론세스바예스의 안갯속을 출발해 사색의 숲을 지나, 만만치 않은 언덕을 넘어 수비리의 강가에 이르기까지. 까미노 3일 차의 21.4km는 내게 ‘걷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가장 평온한 길 위에서는 가장 깊은 질문을 만났고, 가장 힘겨운 오르막의 끝에서는 가장 값진 휴식을 얻었다.
나는 그날, 수비리의 강물에 지친 발을 담그고, 수백 년 전 아픈 동물의 치유를 간절히 빌었던 옛사람들의 믿음 위에 나의 작은 깨달음을 조용히 포개고 있었다. 안락함이 아닌 한계의 끝에서 비로소 진정한 성찰과 휴식이 시작된다는 것. 앞으로 남은 길 위에서 몇 번이고 다시 꺼내볼, 그날의 소중한 이정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