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까미노 제26일 차(Ponferrada to Villafranca del Bierzo, 28.4km; Oct. 16, 2017)지
10월 16일 월요일 아침. 어제 늦은 오후 찬란한 햇살 아래 위용을 뽐내던 템플 기사단 성의 실루엣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폰페라다를 빠져나가는 길은 생각보다 현대적이었다. 콜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의 깔끔한 주택가와 포장된 도로를 지날 때만 해도 대도시의 여운이 남아 있었지만, 새 신발 살로몬은 아스팔트 위에서도 든든하게 내 발을 지탱해 주었다.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을 때, 길 한쪽에 놓인 소박한 무덤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화려한 비석도, 거창한 묘비도 없었다. 그저 돌 몇 개와 작은 십자가, 그리고 누군가 두고 간 빛바랜 꽃다발이 그곳이 한 순례자의 마지막 안식처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꿈꾸며 이 길을 걸었을 그. 아마도 그는 목적지에 닿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길 위에서 영원한 순례자가 되기로 한 것은 아닐까. 족저근막염의 통증을 견디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나의 고통이, 그가 남긴 고요한 안식 앞에서 숙연해졌다. 삶과 죽음은 이토록 한 끗 차이로 길 위에 공존하고 있었다.
정오를 지나 도착한 카카벨로스는 무덤가에서 느꼈던 적막과는 대조적으로 활기가 넘쳤다. 이곳은 비에르소 강(Rio Cua)과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비에르소(Bierzo) 와인의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마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긴 직선 도로와 낮은 돌집들, 그리고 곳곳에서 느껴지는 삶의 냄새들. 피에로스(Pieros)의 언덕을 오르며 뒤돌아본 풍경은 비에르소 분지 속에 푹 안겨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무덤가에서 느꼈던 삶의 유한함이, 이 활기찬 마을에 이르러 '지금 이 순간을 걷고 있다'는 생생한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오후 4시를 넘길 무렵, 마침내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좁고 깊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 입구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마치 중세의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했다. 육중한 돌담과 짙은 회색 석판 지붕들이 이어지는 거리. 빗물에 씻긴 듯 반짝이는 돌길을 따라 걷다 보니 왜 이곳이 '작은 산티아고'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지이자, 지친 순례자를 위한 따뜻한 요람 같았다.
내일의 고비를 준비하며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테라스에서 산맥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를 맞았다. 내일은 까미노 프랑스 길의 마지막 고비인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를 넘어야 한다. 오늘 길 위에서 마주한 죽음의 그림자와 비야프랑카의 견고한 돌길이 준 에너지를 모아 내일의 오르막을 준비한다. 새 신발 살로몬을 정성껏 닦으며, 내일 마주할 갈리시아의 거친 산들을 상상해 본다. 삶이 허락하는 한 계속 걷겠다는 다짐을 하며, 비에르소의 깊은 밤 속으로 잠겨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