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까미노 제27일 차(Villafranca del Bierzo to O Cebreiro, 28.4km; Oct. 17, 2017)지
10월 17일 화요일, 비야프랑카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르막 언덕길 저만치 앞에 한 순례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유난히 키가 큰 그 순례자는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양손에는 스틱이 아닌 두 개의 목발이 들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둑거리며, 목발이 지면을 찍는 금속성 소리에 맞춰 온몸을 던지듯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도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발뒤축의 묵직한 통증 때문에 '오늘 이 험한 길을 어떻게 가나' 걱정하며 걷던 나의 고민이 순식간에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누구보다 단단한 의지로 언덕을 정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순례는 다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의지로 하는 것이라고. 그 '길 위의 거인'이 보여준 침묵의 행군은 오늘 내가 마주할 그 어떤 오르막보다도 강렬한 용기가 되어 내 심장을 두드렸다.
낮 12시경, 길은 발카르세 강을 따라 형성된 깊은 계곡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머리 위로는 웅장한 고속도로 교각이 지나가며 현대 문명의 속도를 뽐내지만, 발아래 흐르는 강물 소리는 순례자의 느린 걸음에 박자를 맞춰준다.
길가에 늘어선 이끼 낀 돌담과 울창한 밤나무 숲은 갈리시아가 가까워졌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페레헤(Pereje)와 트라바델로(Trabadelo)를 지날 때, 공기는 한층 습해지고 싱그러운 흙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이 평화로운 계곡 길은 앞으로 닥칠 거대한 오르막을 앞둔 마지막 축복과도 같다.
어제 '작은 산티아고'라 불리던 비야프랑카의 고즈넉한 돌길은 순례자에게 더없이 포근한 요람이었으나, 오늘 내가 마주해야 할 길은 까미노 프랑스 길에서 가장 험난하다고 알려진 오 세브레이로의 산맥이다.
출발 전, 신발 끈을 다시 한번 고쳐 맨다. 아까 마주친 그 목발 짚은 순례자를 생각하며 마음의 끈도 함께 조인다. 며칠 전 구입한 살로몬 트레킹화는 이제 제법 내 발의 굴곡을 익힌 듯하다. 비록 통증이 여전히 나를 위협하지만, 저 높은 곳에 숨겨진 갈리시아의 첫 마을을 향한 갈망이 통증보다 앞선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라스 에레리아스(Las Herrerías)를 지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급경사를 올라 산 중턱의 라 파바(La Faba)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으며 숨을 고르기 위해 들른 이곳에서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주황색 조끼를 맞춰 입은 한 무리의 순례자들. 그들의 등에는 'Anders Bekeken (Walking Blind)'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시각 장애인 순례팀이었다. 앞사람의 배낭끈을 잡거나 밧줄로 서로를 연결한 채, 보이지 않는 눈 대신 온몸의 감각으로 이 험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육체의 눈이 없더라도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그리고 이 길을 볼 수 있다는 그들의 침묵시위 같은 행군. 몰리나세카에서 산티아고까지 2주간의 일정으로 걷고 있다는 그들 곁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앞이 훤히 보이는 나조차 통증에 찡그리며 걷는 이 길을, 그들은 오직 서로에 대한 신뢰와 지팡이의 감각만으로 넘고 있었다. 과연 그들이 이 험한 오 세브레이로를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Walking Blind 팀과 점심을 마치고 오후 1시를 넘기며 산세는 더욱 거칠어졌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비에르소 분지가 아득한 전설처럼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저 아래 세상에서는 내가 가진 통증과 불평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 구름과 가까운 높이에서 나는 깨닫는다. 아침에 마주친 목발 짚은 순례자, 그리고 라 파바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 팀... 이 길 위에는 육체의 한계를 정신의 위대함으로 뛰어넘는 거인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나의 고통은 그들의 용기 앞에서 작아졌고, 그 겸손함이 나를 다시 위로 밀어 올렸다.
라 파바(La Faba)의 가파른 숲터널을 지나고 라구나 데 카스티야(Laguna de Castilla)를 넘어서자, 길가에 세워진 투박한 돌기둥 하나가 나를 멈춰 세운다.
"GALICIA"
피레네를 넘고 메세타를 가로질러, 발의 통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달여의 시간들이 이 돌기둥 하나에 응축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순례의 마지막 장(章)에 들어섰다. 카스티야의 붉은 흙길을 뒤로하고, 이제는 갈리시아의 푸른 숲길이 나를 인도할 것이다.
오후 4시를 넘길 무렵, 드디어 해발 1,400m의 정점에 도달했다. 약 3시간여의 힘겨운 등산 끝에 도착한 O Cebreiro는 산 정상에 있는 마을. 죽을힘을 다 해 올랐다. 이번 까미노 여정 중 가장 힘든 코스 중 하나였다.
안개 사이로 둥근 초가지붕을 얹은 석조 가옥 '파요사(Palloza)'들이 그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냈다.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거친 돌집들은 오 세브레이로가 문명의 끝이자 영적인 세계의 시작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마을 끝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라 레알(Santa María la Real)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14세기, 거친 눈보라를 뚫고 미사에 참석한 한 가난한 농부의 믿음을 비웃던 신부 앞에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 살과 피로 변했다는 '성체의 기적'이 깃든 곳. 성당 안의 고요한 공기는 산을 오르며 거칠어졌던 나의 호흡을 단숨에 잠재운다. 이곳에 까미노의 상징인 '노란 화살표'를 만든 엘리아스 발리냐 신부님이 잠들어 계신다는 사실이 묘한 감동을 더한다.
오늘 내가 걸어온 28.4km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는가?"라는 아침의 물음에, 온몸으로 대답하며 올라온 길이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걷던 사람들, 목발로 산을 오르던 사람들. 그들과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밤이다. 안개 냄새를 맡으며 나는 비로소 완주에 대한 확신을 가슴 깊이 새긴다. 산티아고는 이제 정말 멀지 않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호사로운 싱글룸을 잡고 파김치가 다된 무거운 몸을 뉘었다. 지난 4일 동안 불편한 잠자리로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그래서 오늘은 무려 40€라는 엄청나게 큰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저녁식사와 함께 시킨 와인 한 병 마시고 죽은 듯이 잠 한번 자고 싶었다.
까미노는 정말 Big Heart가 필요하다. 고독괴 힘듦 그리고 자기와의 끝없는 독백, 낯선 곳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다 이겨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