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추억에(34)

: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by 디본


34. 유칼립투스 향기에 취해, 산티아고의 문턱에 서다

: 까미노 제33일 차 (Ribadiso to O Pedrouzo, 22.3 km; Oct 23, 2017)



1) 리바디소의 이별, 그리고 아르수아의 아침


10월 23일 월요일. 이소(Iso) 강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을 잤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리바디소의 돌다리를 건너며, 이 아름다운 마을과 작별했다.


제33일 차 여정은 리바디소를 떠나, 산티아고 입성 전 ‘마지막 베이스캠프’인 오 페드루소(O Pedrouzo)로 향하는 날이다. 이날은 유칼립투스 숲이 뿜어내는 알싸한 향기에 취하고, 치즈의 고장 아르수아(Arzúa)를 지나며,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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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오르막을 넘어 도착한 첫 번째 마을은 아르수아(Arzúa). 이곳은 '북쪽 길(Camino del Norte)'과 '프랑스 길'이 합류하는 지점이라 순례자들로 더욱 활기가 넘쳤다.


아르수아는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치즈의 고장(Queso de Arzúa-Ulloa)'이다.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를 지나며, 부드럽고 크리미한 맛으로 유명한 이곳의 치즈를 상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마을 카페에서 진한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 한 잔으로 카페인을 충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2) 초록의 터널, 유칼립투스 숲길을 걷다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유칼립투스 숲이었다. 갈리시아 지방을 상징하는 이 거대한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들이 부딪치며 파도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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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강렬한 건 '향기'였다. 숲 전체가 거대한 아로마 테라피장 같았다.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알싸하고 상쾌한 박하향이 걷는 내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기분. 그 초록의 터널을 통과하며 나는 산티아고를 맞이할 몸과 마음의 정화를 마쳤다.



3) 영원한 젊음의 샘, 산타 이레네(Santa Irene)


숲길을 걷다 만난 산타 이레네 마을. 이곳엔 작지만 신비로운 전설이 깃든 예배당(Ermita)과 샘물이 있다.


예배당 옆 '성녀 이레네의 샘(Fuente de Santa Irene)'은 치유의 물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이 물로 씻으면 피부병이 낫고 해충을 막아주며, 무엇보다 '영원한 젊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순례자들 모두가 홀린 듯 멈춰 서서 물을 마시거나 얼굴을 씻었다. 나 역시 33일간의 여정으로 그을린 얼굴을 씻으며, 육체의 젊음보다는 내일 마주할 산티아고 앞에서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image.png Fuente de Santa Irene


4) 최후의 전야(前夜), 오 페드루소


오후 3시 무렵, 오늘의 목적지 오 페드루소(O Pedrouzo)에 도착했다.


이곳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불과 20km를 남겨둔, 순례자들의 '마지막 대기실' 같은 곳이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 산티아고 대성당의 정오 미사에 참석하려는 순례자들로 마을은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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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유적지는 없지만, 마을 전체에 흐르는 공기는 남달랐다. 모든 이의 얼굴에 '해냈다'는 안도감과 '내일이면 끝'이라는 섭섭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800km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생장 피에드포르의 설레던 첫날밤, 피레네의 높고 험한 산맥, 메세타의 광활함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갈리시아의 비...


그 모든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살로몬 신발 끈을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설렘과 아쉬움으로 뒤척이는 '최후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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