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 까미노 제34일 차 (O Pedrouzo to Santiago de Compostella, 19.4 km; Oct 24, 2017)
10월 24일 화요일. 오 페드루소의 아침은 짙은 회색빛이었다. 34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 화창한 햇살을 기대했건만 하늘은 대신 가는 빗줄기를 내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게 갈리시아지."
마지막으로 배낭을 꾸린다. 매일 아침 반복했던 이 익숙한 동작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손끝이 떨려온다. 배낭을 판초 우의로 덮고, 빗속으로 첫발을 내디뎠고 얼마가지 않아 순례자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무리들 중에는 나처럼 출발지부터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있었고 일부는 크레덴셜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인 사리아부터 출발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빗줄기는 조금씩 더 굵어졌다. 흙탕물이 튀어 바지가 젖고, 신발은 무거워졌지만 발걸음만은 가볍다. 중간 경유지 라바코야(Lavacolla)를 지났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에 들어가기 전, 이곳 개울에서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마음을 정갈히 했다고 한다.
오늘 나에게는 개울물 대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지난 한 달간 길 위에서 쌓인 땀과 먼지, 그리고 내 안의 욕심과 오만함을 이 빗물이 씻어내려 주기를. 나는 고개를 들어 얼굴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나만의 정화 의식을 치렀다.
산티아고를 5km 남겨둔 지점, '환희의 언덕'이라 불리는 몬테 도 고소에 올랐다. 맑은 날이면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여 순례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는 곳. 하지만 오늘은 안개와 비 때문에 시야가 흐릿하다. 비록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저 안개 너머에 나의 별(Compostela)이 기다리고 있음을. 흐릿한 실루엣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다 왔다. 정말 다 왔다."
지루하고 힘들었던 도심을 지나 마지막 터널(아치)을 통과하자, 시야가 확 트이며 웅장한 산티아고 대성당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오브라도이로 광장이다. Km 0. 더 이상 나아갈 화살표가 없는 곳. 800km의 끝.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비에 젖은 바닥의 차가운 감촉보다,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무언가가 더 강렬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해냈다." 발바닥의 물집, 작열하던 태양, 끝없는 고독, 그리고 스쳐 간 수많은 인연들. 그 모든 순간이 이 광장 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성당의 두 첨탑이 빗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수고했다, 잘 왔다"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5) 순례자 증서, 그리고 아쉬운 이별
어디로 갈지 몰라 물어물어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가서 젖은 크리덴셜(순례 여권)을 내밀었다. 마지막 도장이 찍히고, 내 이름이 적힌 완주 증서(Compostela)를 받아 들었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그 무게는 지난 34일간 짊어졌던 배낭보다 더 묵직했다.
다시 광장에 나와 그간 동행했던 몇몇 낯익은 순례자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군중들 속에서 서성이다 예약해 놓은 숙소로 찾아가 뜨거운 샤워로 피곤을 푼 후에 정말 오랜(거의 한 달)만에 편안하고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