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추억에(39)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by 디본

39. 까미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2)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억겁은 ‘사방 십리에 쌓은 돌산을 선녀가 하늘에서 백년에 한 번씩 내려와 비단치마로 스쳐 그 돌산이 다 닳아 없어질 때 까지 걸리는 시간’(반석겁)이라고 한다. 찰나를 살고 가는 인간의 시간지표로는 ‘영원’(eternity)과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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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순례길이 마력을 가진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길 위에서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하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많은 낯선 옷깃들을 수없이 스치게 될 뿐만 아니라 어떤 인연하고는 몇 날 며칠을 동행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연이 더 고아한 것은 아무런 전 이해관계도 없었고 아울러 어떤 후 이해관계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냥 길 위에서 만나 길 위에서 끝나는 ‘유성’과 같은 인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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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 위에서의 이런 우연들은 둘 이상 그룹으로 걷는 것보다 혼자 걸을 때 더 많이 자주 만나게 된다. 혼자 걸으면 외롭고 고독하긴 하지만 동시에 자기 (좌, 우)옆은 항상 열린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기대하지 못했던 만남과 동행들이 이어질 수 있다.


이태리에서 온 의사 빈센시오는 까미노 첫 일주를 지난 어느 날 걷다가 옷깃을 스치게 되었는데 말이 통해 3일 정도를 같이 걷고 도착해서 저녁 식사도 같이 하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몇 겁의 인연을 쌓게 되었다.


내가 새벽에 숙소를 나와 어둠가운데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만난 에드워드는 북캘리포니아 1번 하이웨이 옆 보데가 베이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백인 할아버지다. 길을 걸으면서 나눈 미국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에 관한 얘기들은 깊이가 있었고 그날 새벽 어둠의 공포를 잊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진지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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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며칠 후 그와 나는 다시 레온의 숲 길을 같이 동행하게 되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의 종교적 경험을 얘기하면서는 그 키 큰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있었다. 서로 생면부지 간에 이루어지는 진심과 우정의 교감이었다.


프랑스의 은퇴 기자이자 여행작가인 올리비에 베르나르는 [나는 걷는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항상 혼자 걷는다. 함께 가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나는 (내가 너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혼자 고독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켜왔다... 걷는 것, 그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성찰의 흐름을 끊어서는 안 된다. 걸으면서 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세상은 나를 향해 다가온다.”(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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