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James Irvin (미, 캘리포니아)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까미노 27일째였던 것 같다. 그 전날 Alchemist artist Hippi Antonio의 집에서 불편한 하룻밤을 머물고 새벽에 나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조그만 헤드랜턴을 켜고 걸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새벽 동트기 전 어둠 속에서 이름 모를 마을과 산속을 1시간여 헤맨 끝에 겨우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그 공포감을 잊기 위해 정신없이 걷고 있던 때 아무도 없는 새벽길 저 앞에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걷고 있는 키 큰 할아버지 순례자를 만난 것이다.
그는 자기도 새벽 5시에 일어나 걷고 있는데 자기가 처음 만나는 뻬레그리노라고 했다. 서로 반가움과 안도 속에 몇 마디 나누다 그가 건넨 것은 부스러진 초콜릿 몇 조각. 그리고 한 시간여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걸었다.
북켈리포니아 하이웨이 1 도로변에서 커피숍을 운영한다고 하는 그는 철학자였다.
엔지니어링이 전공인데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이 지극히 풍부한 사유가였다. 평범해 보이는 그가 상상하기 힘든 깊이와 균형감 있는 생각과 태도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미국이 더 지적으로 발전해질 필요가 있다는 그의 혜안.
새벽 아침 그리고 2시간여 함께 걷기 후에 드디어 또 다른 대도시 Sarria에 도착. 내가 그에게 모닝커피 한잔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카페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Antonio Casa에서 불편한 하룻밤을 같은 방에서 지낸 스웨덴 말뫼 출신 Matheus 즉 Matt를 우연히 만났다. 셋이서 카페에서 합석.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알고 보니 James와 Matt는 이미 까미노 길에서 나보다 먼저 만나 서로 깊은 얘기를 한참 나눈 사이였다.
이것이 까미노 순례길의 신비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목적지와 방향을 항해 걸어가면서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다시 반갑게 만나게 되는 신비. 자기 스스로도 신기한 조우들. 이것이 인생인 거 같다. 걷고 또 걷는 먼 여정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우연히 만나고... 그러나 한 번 만나고 다시 못 만나게 되는 순례자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인생이 누구는 자꾸 만나게 되고 누구는 한번 스쳐가고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인가? 오직 신만이 아는 신비, 헤아릴 수 없고 다 헤아리려 하면 생각만 복잡해지는 인생의 길. 그 길에서 만난 까미노의 사람들. 그 깊이를 생각하면 괜스레 쓸쓸함마저 밀려온다.
Vincencios, Albert (밀라노, 이태리)
또 다른 만남. 그와 우연히 길을 걷게 된 것은 까미노 5일째 대도시 Pamplona에서 출발 Puente La Reina로 걷는 길에서. 아침 일찍 도시를 벋어나기 위해 열심히 걷고 있을 때였다.
이탈리아 출신 방사선과 의사인 그와 한 며칠을 동행했다. 다음날 Puente la Reina에서 Esteilla로 향하는 길, 도중에 우연히 다시 만나 오랜 시간을 같이 걸었다.
그의 이름은 Vincencios 나이 65세. Vincent의 이태리 이름. 많은 얘길 나누는 중 서로 통했다. Esteilla 숙소 잡고 산책하다가 다시 만나 저녁을 같이 했다. 저녁 같이 하면서 두 시간여를 대화 나누면서 서로 많은 공감을 하게 되었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가슴에 와닿는 많은 얘기들... 생면부지 외국인과 어디서 이렇게 깊이 있는 얘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인생에 대해, 까미노를 걷는 의미에 대해.
그가 자신이 도정에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까미노 여정중 죽은 자의 비석에 쓰인 묘비명 - '여기 까미노 길 위에서 내 인생을 마감하다'. 그는 그 묘비 앞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에게 '내가 당신께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 그럴 수 있었고 자기가 더 고맙다고 했다. 밤늦게 헤어져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너무 행복했다. 고독한 까미노 여정에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고독한 한 마을에서도 마음은 풀리 충만해졌다. 고된 하루의 여정이 눈 녹듯이 풀렸다.
까미노 순례길은 순교자 성야고보의 관이 발견됐다는 땅끝 Fisterre까지 원래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길이었고 8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걸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길이며 지금도 까미노에 참여하는 많은 현대식? 순례자들이 아직도 만들어 가고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