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내내 직업병을 실감한 서비스 기획자의 요상한 감상
늦었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을 봤다.
개봉했을 때부터 보고 싶었지만 여차저차해서 보지 못했고, 뒤늦게 BTV로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나의 직업병만 실감했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하지만 영화가 영화로만 보기에는 굉장히 생각되는 바가 많아서...
잊어먹기 전에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 있다. 스포가 관계없는 영화이지만 어쨌든 있으니 주의해서 읽어달라.
가상현실 게임 속 플랫폼과 생태계
영화 속의 '오아시스'라는 게임은, VR 가상현실을 이용한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RPG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창작자가 죽고 나서도 자생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영화 초반에 게임을 소개할 때 살짝 지나가지만 '마인크래프트'맵에서 힌트를 주고 있는데, 참여자 스스로가 공부를 해서 기술이 생기면 맵이나 공간 그리고 아이템도 만들 수 있는 환경이다.영화내에서도 주인공의 클랜원 중 한명인 H는 여러가지 개인 공간이나 아이템을 수리하고 스스로 로봇도 설계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이용자들에게 돈을 받고 수리를 해주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오아시스'라는 것이 하나의 운영체제라면 각종 맵은 '소프트웨어'처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그 생태계 내에 얹어져 있다는 것. 이 외에 아이템을 검색하고 챗팅을 하는 등의 기능은 기본운영체제에서 제공하는 기능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환경은 코인경제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개인 캐릭터는 코인으로 이루어진다. 전쟁이 일어나는 맵이나 콘테스트 맵에서 게이머들은 서로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이를 통해서 타인의 코인을 획득할 수 있다. 당연히 NPC로 이루어진 몹들을 잡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건 뭐 어느 게임이나 똑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이러한 경제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게임에서 숨겨진 이스터에그 게임을 해결하고 사이버코인을 다량 획득한다. 그래서 여러 아이템을 마구 구매하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햅틱 수트'를 구매했고 이것이 배송되어 오프라인으로 왔다는 점이다.
즉, 게임속의 금액은 명백하게 환금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게임에서 완전히 Game over가 되면 지금까지 얻었던 코인을 모두 잃도록 되어 있는데 초반에 이런 환금성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본 유저는 게임오버 된 뒤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3rd Party 기업의 출현과 거버넌스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설정은 'IOI'라는 기업이다. 게임내의 오아시스는 하나의 시장경제 생태계를 구성한다. 개인은 노력에 의해 생산능력을 가질 수 있고, 코인이라는 시장경제 구조가 갖춰져 있고, IOI라는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아이템을 교환하는 3rd Party 기업이다.
IOI라는 기업은 3가지 차원에서 물건을 만든다. 첫째, 아이템. 둘째, 오아시스 접속 도구, 셋째, 햅틱슈트. 즉, 게임에 관해 온오프라인상의 모든 것을 만든다. 이 모든것이 가능하려면 오아시스는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권한과 OPEN API를 열어줘야한다. 여튼, 원작자의 옆에서 커피나 타며 등급제 사상을 주창하던 소렌토는 기가 막히게 생태계를 이용한 사업을 만들어낸다.
물론 문제는 불법적인 추심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온오프라인상의 아이템을 무제한 제공해준 뒤에 이에 대한 댓가 지불의 문제를 들먹이며 '로얄티센터'에서 가둬두고 아이템 노역을 시킨다. 이 때문에 여주인공 사만다의 아버지는 죽기까지 했지만..(처음에는 약간 통키 아빠가 피구하다 죽은 느낌이 강했으나....) 나중에 보니 폭력적인 형태로 감금 상태에서 노예부리듯이 추심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법적이긴 하더만.. 심지어 드론을 이용하여 대놓고 개인 사찰까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오프라인에서 하는 짓은 죄다 불법일지라도 어쨌든 '오아시스'내에서는 불법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주인공과 클랜이 오아시스의 운영권을 장악한 뒤에 '로얄티센터'를 금지하기 전까지 플랫폼 내에 기업 활동은 열려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거버넌스가 주인공 클랜으로 바뀌고 로열티 센터의 접속을 끊어버렸다. 전국에 몇개나 있다는 로열티 센터를 어떻게 끊은 것인지... (로열티 센터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도 이해 안가는 것이 너무너무 많다. 이것은 좀 나중에 이야기해보겠다.)
플랫폼이 성장하면 그 플랫폼에 기생한 기업들이 등장한다. 중고나라가 성장하니까 대부분의 기업화된 중소 중고 매입 업체가 글을 등록하여 판매를 하고 있고, 유튜브가 성장하면서 수많은 유튜브 기반 크리에이터 기업이 형성되고 있는 것고 마찬가지다. 그 어떤 플랫폼이라고 해도 자유로운 이용권에 대해서 보장이 된다면 기업의 이용을 막을 것인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기업 이용자는 따로 등록하여 B2B로 금액을 내도록 할 것인가? 광고비를 받을 것인가? 그런데 과연 플랫폼에서 무슨 수로 개인과 기업에 속한 개인을 구분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한다. 사실상 이에 대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런 기업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관리하려한다면, 이 생태계는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경제활동을 막는다는 것은 더이상 크리에이터들에게 활동의 이유를 뺐어버린다고 봐야한다. 심지어 리얼월드가 중요하다며 일주일에 2번은 문을 닫는다는 헛소리는 이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를 줄여버린다.
근래에 인스타그램은 갑자기 오픈 API를 통한 인스타그램 등록에 대해 규제를 시작했다. 다양한 경로에서 글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인스타그램 앱에서만 글이 올라오게 했다. 또,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쇼핑몰 툴에 대해서도 규제를 가하고 자사의 쇼핑몰 서비스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짓을 하는 것도, 거버넌스가 모든 서비스를 장악하고 있을 때나 가능하다.
블록체인과 오아시스
영화 속 오아시스는 전세계 이용자가 동시에 하루종일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캐시를 기반으로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시장경제를 갖춘 곳이다. 게다가 이렇게 거버넌스만 장악하면 캐릭터 하나 막는 것쯤 상관없다면 이 생태계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IOI따위가 아니다. 진짜 빌런은 운영집단이다.
운영회사에 대한 존재는 거의 표현되지 않았지만, 예를 들어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빗대서 생각해보자. 이 게임내의 사람들은 10년 넘게 캐릭터를 키워왔다. 그리고 할일 없는 빈민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이 게임만 한다. 여기서 쌓이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페이스북처럼 오아시스의 운영사는 맘만 먹으면 정보를 판매하는 일은 일도 아닐 것이다. 심지어 전세계가 하루종일 몰리고 마지막 전투가 일어나는 맵은 전세계 이용자가 한번에 밀려도 끄떡없는 수준이라면 이건 데이터서버가 클라우드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만약 개인의 리소스를 개인의 디바이스 시스템의 리소스를 활용하는 블록체인 방식이라면 이 부분도 해결되지 않을까? 사실 블록체인의 환경이 아니라면 이렇게 하루종일 모든 사람이 게임만 할 수가 없다. 먹고 자고 돈을 버는 것조차 모두 게임과 연관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게임사가 거의 정부에 준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거버넌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물론 이 위험성이 이 게임의 세개의 열쇠를 기를 쓰고 찾으려는 이유기도 하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운영 기업이 IOI보다 더 미쳐서 날뛰면서 열쇠를 찾아다녔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계약을 원 제작자와 함께 제작한 운영사 대표는 너무나 평온하다.)
이 위험성에 대해서는 엠마왓슨이 주연한 영화 '더 서클'의 SNS 서비스를 보면서 더 뼈저리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영화와비교해 본다면 더 좋을 것 같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3099
근데 오아시스와 그 위의 행성의 관계가 마치 이더리움과 Dapp의 관계처럼 보이는 건 나만 그런가?ㅎㅎ 같은 코인경제 사용까지 같아 보이는것 같지 않나?ㅎㅎ 만약 행성별로 추가적인 캐쉬가 있다면 그건 토큰이고.
VR, 로그인의 기술적 궁금증
영화를 보면서 기술적으로 신경쓰였던 2가지 부분이 있다. 바로 VR과 로그인에 대한 것.
여주인공인 사만다는 IOI에 잡혀가서 로얄티센터가 갇히게 된다. 그리고 골방에 갇혀서 노역자로 게임에 참여해야하는데, 어이고 이게 왠일? 노역자 캐릭터로 로그인된 건 알겠는데 옷만 달라졌고 얼굴 캐릭터 설정은 그대로다?? 심지어 몰래 War zone에서 IOI 직원으로 위장하여 잠입했을 때도 옷만 달라지고 얼굴 설정은 그대로다.
이에 대해서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니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로그인을 생체인식으로 한다. 처음에 진입시에 VR 기기를 통해서 본인인증이 된다는 뜻이라고 봐야한다. 개인에 따라 햅틱 수트가 없이 VR헤더와 장갑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구별가능한 방법은 오로지 홍채나 지문 뿐이다. 이럴 경우 정책적으로 세컨 아이디 운영은 힘들어지고, 거버넌스는 개인에 대한 생체정보까지 수집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둘째, 접속기기가 캐릭터의 상태를 제어할 수 있다. 캐릭터 아이디는 로그인을 과정을 통해 고정되어 있지만 접속기에 따라서 의상과 캐릭터의 위치를 다르게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 부분이 IOI가 안마의자처럼 편안한 접속기기를 만들어 판매하고자 하는 기반이 될 수 있어 보인다. IOI에서 만든 아이템을 활용해서 접속기에 따라 옵션 아이템을 제공해줄 수 있다면 오프라인의 거래를 온라인으로 전이 시킬 수 있다.
두번째로 눈에 띄었던 것은 역시 VR기기 활용에 대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접속 기기의 형태는 4가지다.
1) 주인공 방과 War zone의 직원들이 이용하던 사방 트레드밀(런닝머신) 방식
2) H의 자동차에 설치했던 와이어방식
3) 소렌토의 방에 설치되어있던 안마의자같은 접속기기
4) 길에서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용하는 휴대용 VR
1번과 2번은 햅틱수트와 함께하면서 공간적인 제약을 벗어나서 걸어다니거나 하는 동작이 가능하게 되므로 이해라도 가는데.. 3번은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그렇다면 1,2번 방식에 비해서 어떻게 동작을 인식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4번째 방식은 가장 문제가 많다. 게임내에서 행동을 밖에서도 한다는 것을 길에서도 하고 있다니.. 일상생활과 게임의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UX가 판단이 안된다. 신호등 조차도 못볼텐데 어떻게 걸어다니는거지? 게다가 동작인식은 어떻게 하는지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물론 저 정도쯤되면 지금 있는 VR의 머리아픈 현상도 없어졌겠지만.. 우리의 불쌍한 전정기관을 어떻게 속일 수 있을지. 그리고 저정도 게임할 체력이나 될지 여러가지 궁금한 점이 생기는 부분이었다.
가상현실 쇼핑의 가능성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 속에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에 나오는 게임형 장보기몰이 생각났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97679&no=110&weekday=fri
오래전에 나온 만화지만 요즘 다시 보면서 농담이 현실이 되는 걸 많이 느낀다. 아직 이정도로 게이미피케이션 되진 않았지만 쇼핑의 컨텐츠화는 이미 많이 일어났고, VR이 더 확산된다고 가정하면 레디플레이어원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 장보기는 해야하고 장보기조차 게임 속에서 할 가능성이 몹시 높다.
영화 본 이후의 감상을 너무너무 직업병으로 써버렸지만.. 이 영화는 사실 고전 게이머와 팝콘 컬쳐를 사랑하는 80년대생의 추억을 미래 사회에 버무린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고전게임 덕후가 엄청난 게임을 만드는데 성공하고 이런 덕후를 사랑하는 덕후가 후계자가 되는 이야기다.
결론.. 덕질은 돈이 된다. 그리고 만물의 온라인은 저 영화보다 가까운 미래다. 꼭 2030년에도 답안나오는 VR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코인경제는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