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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May 27. 2018

AI의 시대, 기획자는 없어질까?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지능의 시대

 최근 게임매니아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중인 게임이 하나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인 'Detroit Become Human'이다. 안드로이드가 고도로 발달된 2038년을 배경으로, 엄청나게 다양한 스토리라인과 안드로이드의 인권선언이라는 자극적인 사회상에 아무래도 매우 흥미롭다. 나 역시 이 엄청난 띵작(a.k.a 명작)의 엔딩을 보는 재미에 스트리머들의 트위치 라이브를 1박2일간 보았다. 그러면서 문득 AI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됐다. 


PS4 게임 'Detroit Becom Human'에서 가정용 로봇의 판매장면


강한 AI에 대한 환상


 AI에 대한 기사나 책을 보다보면 머리 속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매번 예시로 나오는 알파고 이야기는 참 놀랍다. 이제는 기보가 없이 알파고끼리 바둑을 두면서 사람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레벨로 진입했다니 무섭게만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의 일자리가 대체되고 효율적이라고 바뀐다는 이야기도 많고 실제 중국에서는 일부 판매원들이 로봇이나 무인기계로 대체되고 있고, 아마존의 물류창고의 키바나 아마존GO의 모습도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표준화된 모바일 UI에서 디자이너와 와이어프레임 그리는 수준은 AI에 의해 대체될 거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게임속 Detroit는 바로 그런 세계관이다. 2038년의 세상은 가정용 로봇이 보급되고 마치 노예처럼 생활한다. 딱 1컷 나왔지만 거지인 인간은 있어도 소위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24시간 불평없이 일하는 수많은 노동력을 안드로이드로 대체하고 있다. 상점 점원부터 공사장 인부까지 안드로이드가 아닌 곳이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20년. 나와 같은 기획자, 특히 '대한민국의 기획자'들은 과연 나중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년이 아니라 고작 몇년만에 실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개발 베이스가 없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이 고민은 굉장히 큰 고민이었다. 아마 은연중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최근 나는 운이 좋게도 책을 몇 권을 보아도 결론이 나지 않던 고민이 최근 여러 실무자들, 그리고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을 희망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나의 무식함에 대한 반성이라고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내가 읽었던 AI에 대한 상식백과 같은 책에서는 AI종류를 2가지로 갈음한다.

 


약한 AI : 특정한 기능만을 처리할 수 있는 AI  ex) 알파고

강한 AI : 인간처럼 모든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AI   ex)터미네이터-스카이넷, DBH게임 속의 안드로이드


 이런 책에서는 현재까지는 '강한AI'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모든 기술이 그런 AI를 구현하기 위해서 나아간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즉, 인간과 유사한 감정과 의식을 지니고 생각을 하는 존재로서의 강한 AI가 결국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것은 '튜링테스트'다. 

 튜링테스트란 1950년대에 엘렌 튜링이라는 사람이 만든 테스트로, 숨겨진 커튼뒤에서 사람이 AI와 대화를 해서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통과된다는 개념이다. 튜링 테스트는 상당히 개념적인 테스트일뿐이지만 5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는 한다. 


https://namu.wiki/w/튜링%20테스트

  

 하지만 과연 튜링테스트를 통과한다고 해서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이론은 인공신경망 분야가 아직 많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인공신경망이 인간의 모든 뉴런의 작용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 하에서 상상된 이론일 뿐이라고 한다. 튜링 테스트 자체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공신경망의 개발은 '인간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 되는 순간, 그 기준을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 인간의 생각과 감정의 작동의 원천이 되는 '의식'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지 그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인공신경망의 기술은 '합리적인 선택을 통한 행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사람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대학의 스튜어트 러셀 교수는 2015년 OECD 회의의 아젠다로 AI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린다. 여기서 핵심은 결국 이 시스템은 인간에 의해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 결과값은 인간이 행복해질만한 결과가 나오도록 프로그래밍된다는 것이다. 즉, AI의 목표는 인간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1 ) Standard AI (and many other fields): Design systems that optimize a given objective. 
     표준적인 AI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의 AI) : 주어진 객체들을 최적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2) Provably beneficial AI:  Design systems that behave in such a way that humans are happy with the results. 
    언젠가 이로운 AI : 인간이 행복해질만한 결과가 나오도록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OECD Agenda 2015, http://www.oecd.org/going-digital/ai-intelligent-machines-smart-policies/conference-agenda/ai-intelligent-machines-smart-policies-russell.pdf



머신러닝은 수학계산이다

 분명 이런 설명에도 안심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대부분의 영화와 게임에서는 '내가 이렇게 프로그래밍 되었지만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생겼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먼 훗날 언젠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가능하려면 지금까지 머신러닝과 딥러닝이라는 기술이 아닌 무언가 새로운 기술이 출현해야만 가능하다. 이 기술들은 자유의지를 만들 수가 없어보인다.

 

 머신러닝의 개념은 말그대로 'learning' 즉, '학습'이다. 그런데 이 학습이란 것은 인간이 배운다는 개념과 다르다. 인간의 배움은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의 배움이란 추상적이다. '자기 전에는 이를 닦아야해'라고 늘상 교육을 받아도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어느날 이가 심하게 썩어서 치과에서 끔찍한 치료를 받은 뒤에 그 필요성을 느끼면 아이는 이닦기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깨우치게 된다. 이건 동물이나 인간만이 가진 학습의 원리다. 

 머신러닝은 이런 종류의 학습이 아니다. 사실상 계산에 가깝다. 나는 공학도가 아니기때문에 인공신경망 공학이 가지는 원리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인공신명망의 학습 방법은 뉴런의 정보전달 방식을 복사해왔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1950년대에 등장한 퍼셉트론(Perceptron)이론에서 텍스트 이미지를 인식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연구의 핵심에는 델타규칙(Delta Rule)이 활용되었다.  

 델타규칙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머신러닝이란 특정 입력값을 넣었을 때 알맞는 결과값이 나오도록 그 로직을 계속 변경하여 중간 계산값을 역산해내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의 모든 데이터는 0과 1의 2진수로 이루어져  있기에 당연히 입력값도 0과 1로 이루어져 있고 출력값도 0과 1로 이루어져있다. 당연히 원하는 값도 0과 1로 이루어져있기에 이 모든 중간과정은 수치로 이루어진 계산식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학습이란 입력한 값에 대한 '정확한 결과값'을 알고 있을 때 가능해진다. 

 자 그러면 '정확한 결과값'이란 누가 알겠는가?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이 설정해준 결과값을 만드는 방법만을 학습한 것이다. 때문에 학습에는 수많은 올바른 데이터가 필요하고, 자연발생된 데이터는 학습에 적합한 데이터가 거의 없기에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어야만 한다. 


 기존 머신러능의 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딥러닝'에 대한 찬양이 등장한다. 수많은 신문기사와 서적들은 딥러닝의 출현이 굉장히 큰 차이를 불러왔음을 떠든다. 딥러닝 이전에 비해서 확실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딥러닝 역시 기존 수학적 계산이 좀더 Deep하게 여러개의 층위로 이루어져있는 것 뿐이다. 즉, 딥러닝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기존에는 계산해야할 값들을 미리 지정해서 역산하게 했다면 딥러닝은 인간이 특정 부분을 지정해주지 않아도 모델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더 많은 데이터를 다루면서도 더 복잡한 산출과정을 시스템 스스로 처리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런 능력은 이전보다 훨씬 덜 정제시킨 데이터에서도 스스로 원리를 찾아내고, 수천장의 사진속의 동물을 일일히 알려주지 않아도 같은 동물들만 모아서 모델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딥러닝이 모델링하기 싫다며 분노를 일으킬 수는 없다. 


  터미네이터와 안드로이드는 프로그래밍된 자신과 싸우는데, 그 프로그래밍은 대체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수많은 기획자와 개발자를 갈아넣어 데이터를 학습시킨다고 해도, 적어도 딥러닝과 머신러닝은 그들에게 감정을 흉내내는 것 이상의 의식을 가져다주기에는 부족하다는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기획자가 해야하는 일은 뭐지?

  

 자, 이제 기획자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최근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여러분야로 사용되면서 수많은 서비스가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어디선가 임원진이 보고왔다며 AI를 도입하라는 미션을 받은 사람들도 많다. 챗봇과 AI의 차이에 대해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대형 회사에서 지원하는 AI 플랫폼이라는 것을 큰 돈들여 써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텐서플로우만 배워도 되는 것인지 혼동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그들이 진짜 AI를 도입하겠다고 무언가 서비스를 생각하게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기획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시나리오와 속성의 작성'이다. 


"AI를 도입했다면서요!! 이런걸 왜 다 써줘야하죠?" 


 이 대사는 모든 AI 도입 서비스를 경험한 기획자들이 한번씩 해야만 했던 대사라고 한다. 이유는는 간단하다. AI는 데이터를 통한 학습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고, 그 학습을 시키기 위해서는 각자 비즈니스와 서비스에 맞는 '올바른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10대의 여성이 '결혼'을 검색했을 때와 30대 초반여성이 '결혼'을 검색했을 때 이미 다른 추론을 한다. 10대 여성은 누가 주변에서 결혼을 하거나 호기심이 생겼나하고 맥락적으로 생각하고, 30대면 결혼을 준비하거나 앞뒀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에게는 이러한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다. 비즈니스로 넘어가면 이런 맥락적인 '상식'이라고 말할만한 것들이 AI에게는 하나도 없다. 이런 것을 누군가는 데이터로 만들고 학습시켜야 한다. 음식에 대한 AI를 만든다고 치면 '초코'가 들어가면 '맛=달다' '색상=검다' 조차도 누군가가 데이터화 시켜줘야한다. 보통 그런 데이터는 아직까지는 국내에는 많이 없다. (해외에서는 데이터 판매자들이 이미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테슬라의 자동운전이 인명사고를 일으킨 것에 대해서, 일부의 사람들은 학습 데이터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한다. 사고를 당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고, 걸어가면서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에 대한 학습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과 자전거를 단번에 알아 채지만, 기계는 사람을 알보고 자전거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학습된 것만을 가지고 피해야하는지 아닌지만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상상도 못한 그런 데이터를 만들어서 AI에게 피해야한다고 학습시켜줬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 이런 서비스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이런 일을 할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당연히 비즈니스와 서비스 목적의식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존재인 기획자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 많이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AI를 테스트하면서 정상적인 결과를 내는 것인지조차 생각해줘야 한다. 오히려 AI가 자유의지를 제발 좀 갖고 스스로 공부하러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귀찮고 힘든 일이다. 


기획자는 자아 정체성 확보가 필요해

 

 당장 AI 서비스를 도입해야할 때 무슨 일을 할지 예상이 간다면, 이제 문제는 자존감의 문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기획자들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UI를 설계하는 사람?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 프로젝트 매니저?


  만약에 기획자의 정체성을 와이어프레임을 잡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AI의 등장만이 문제가 아니다. 챗봇이나 보이스UI와 같은 새로운 UI의 등장 모두가 당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인터페이스 없는 인터페이스'라는 책은 모바일앱으로 정착되어버린 UI적 사고관이 오히려 얼마나 사용자들을 귀찮고 힘들게 하는지 지적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기획자의 근본적인 목적은 'UI'가 아니라 '서비스' 그 자체에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http://www.yes24.com/24/goods/57992748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상무님을 째려봐도 AI 도입은 다가올 것이다. 다만 영화나 게임 속 안드로이드처럼 어떻게 이들과 관계맺고 그들에게 밀려날까봐 벌써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기반으로 했다면, 적어도 내가 가르쳐야할 '아가'를 만나게 될 거니까. 그것도 학습능력이 참으로 더디게 올라오고 같은 내용도 텍스트가 조금만 달라도 수백번 수천번을 알려줘야하는 매우 순수한 아가일 테니까. 여튼 AI가 발달해도 기획자 직업은 안 없어질 것 같다. 그러니까 하나에만 집중하지 말고 비즈니스+테크+UX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서비스기획자/Product manager의 길을 계속해서 준비해보자. 



 그래도 혹시 모른다. 나중에 진짜 진짜 터미네이터나 안드로이드가 나올만한 기술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그 전에 모든 인체의 신비를 뇌과학으로 완전히 해석해낼 수 있다면 말이지. fin. 


매거진의 이전글 저쪽에서도 여기를 뜯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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