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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ul 15. 2018

덕질에 대한 리스펙트

덕질이란 소확행이 성장시킨 기획자 이야기


굴욕적인 첫 덕질의 시작

난 어린시절 소위 빠순이였다.

젝키의 사진을 모으고 텔레비전을 보며 기뻐했다

하지만 어렸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3살 차이나는 H.O.T.팬인 언니는 숙소앞에도 가보고 콘서트에도 갔지만,
난 그런 언니앞에서 조용히해야했다.
이유는 말안해도 알 것이다.

나는 어렸고 젝키의 고별무대였던 드림콘서트에서도 결국 언니를 따라 H.O.T좌석에 앉아서 봐야했다. 굴욕적이었다.


2000년. 이 슬픈 고별무대를 H.O.T.자리에서 봐야했던 소녀팬의 마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덕질앞에서 행동을 생각하다


언니 앞에서 숨조차 죽여야했던 애정하던 그들이 떠나가고, 어느날부터 신화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지같은 어린 마음에 자신의 일에 가치관이 있어보였던 김동완을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가를 하고 싶어졌다.

KMtv에서 작은 청소년 인터넷 방송국을 운영했고 고등학생 대상으로 방송을 도울 요원들을 선발했다. 난 중학생이었지만 신화를 볼 생각에 정성을 다해 방송작가파트로 지원을 했고 유일한 중학생 막내로 당당히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사원증의 위력은 대단했다.
엄마에게 겨우 허락받는 드림콘서트는 저멀리 보이지도 않는 점같은 그들뿐이었지만 당당히 '쇼뮤직탱크'의 뒷무대에 들어가서 무대를 마치고 땀냄새나는 그들을 훔쳐볼 수 있었다.

내가 참여한 인터넷방송은 박경림씨가 진행하는 토크쇼였고 당대 인기가수들이 초대손님으로 많이들 왔다. 그중에는 클릭비나 태사자, 김현정, 클레오 등등 메인급도 있었다.

하지만 신화까지 미처 모시지 못하고 나의 방송은 종영이 되었다.

난 용기있게 그곳에 갔지만 고작해야 중학생이었다. 나의 노력은 말한마디 붙여보지 못하고 주어진 일을 하며 그들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 다였다.


빠순이는 성장했다.

중학생때 깨달은 것은 두가지였다.
첫째, 사원증이란 공권력의 힘은 세고
둘째, 그러려면 무언가 잘하는 것이 있어야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들을 만나면 해줄 수 있을 것을 키우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컴퓨터로 여러 소프트웨어를 닥치는대로 갖고 놀았다. 물론 모든 중심에는 '신화'가 있었다.

포토샵을 배우면 신화사진으로 합성을 했고

드림위버를 배우면 신화사진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컴퓨터 저장공간은 항상 그들의 사진으로 넘쳐났고
난 그 사진으로 무언가를 항상 창작하려고 애썼다.  애정인지 우정인지 모를 나의 마음으로 항상 그들은 마음의 대상이 되었다.




현실 속에서 애정의 대상이 확장됐다


대학에 가고 시야가 조금 넓어졌다.

나의 덕질은 이제 다방면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방송작가가 아닌 뮤직비디오 연출가가 되고 싶어서 여러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프로덕션에서 일하기도 하고 드라마 작가 밑에 있기도 했다. 이유는 말안해도 알겠지만 '신화'때문도 있었다. 결국 그 길은 날 허락하지 않았지만 거기에서 처음으로 프로젝트 기획서 작성을 실무자들에게 배울 수 있었다.


대학에서는 락밴드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에는 학업보다 메탈밴드의 음악을 더 사랑하고 블루스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심취된 선배들이 있었다.

노래를 흉내내는 수준의 나는 공연욕심보다 사실상 음악덕후들이 풍기는 분위기와 공기가 좋았다.

선배들의 공연을 보며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합성을 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특정인물이 아니지만 동아리의 그 공기는 나의 또다른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

동아리에서 내가 공연하는 것보다 그들이 더 화려하게 보이도록 공연을 기획하고 포스터를 만들었다. 대외활동을 하며 배운 것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기획안을 쓰고 2일간 야외설치무대를 만들어서 무료맥주를 나눠주는 공연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나는 무대에 서지도 않았다.

일부는 나의 헌신적인 태도에 저의가 뭐냐며 의심의 눈도 보냈지만, 단지 빠순이로 살아온 내가 보내는 최고의  리스펙트 방식일 뿐이었다.



덕질은 행동하는 애정이다


애정은 나에게 곧 덕질이다. 반대로 말하면 덕질은 행동하는 애정이다.

나의 애정의 대상은 줄곧 확장되어왔다.


좀비영화와 크리처물을 좋아한다. 텔레비전에서 방송을 하면 백번이 재방해도 다 보고만다. 인터넷을 다 뒤져서 내가 모르던 것들은 찾아서 봤다. 조지로메로의 초기작부터 월드워z까지 나는 틈나면 찾아보았다.

가끔 어스름한 밤이면 나무위키에서 크리쳐물을 찾아서 몇번씩 봤던 정보라도 읽어본다.


마블을 덕질하는 이들의 정보를 리스펙트한다. 마블의 영화를 보고 추측하거나 해석하는 이들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만화원작까지도 가끔은 찾아보며 기억하려고 애쓴다. 거대한 세계관을 만든 그들의 세월과 그것을 알아내고 사람들을 애정한다. 만들어진 정보를 모으고 기억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작은 리스펙트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젝키도 신화도 계속 방송에 나오고 나는 따라다니진 못해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선에서 앨범을 구매하고 유튜브라도 찾아본다.

얼마전 H.O.T.의 토토가 콘서트가 방송하던 날, 난 그 옛날 H.O T.의 팬이었던 친구들을 펜션에 부르고 흰풍선으로 방을 채워놓고 밤새 함께했다. 노란풍선도 마음껏 못흔들었던 굴욕적이었던 젝키팬은 이제 먼저 재결합한 가수의 팬이 되었다. 이 이벤트는 덕질의 여유와 자비였다고 할까?


그리고 애정은 직업의 영역으로도 확장됐다.

UX와 기획에만 흥미로웠던 내가 이커머스를 만나서 인생 전체가 흥미로운 덕질이 되었다.

이커머스의 대한 자료를 모으고 관련된 책을 계속 찾아보았다.

관련된 신기술을 찾아보고 UX에 대한 단어가 들어있으면 가리지 않고 구글링했다. 동영상을 보고 아티클을 읽었다. 여전히 재밌고 신기하다. 어느새 일상에서 가장 큰 애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매일이 아니지만 가끔이라도 나의 일이 덕질처럼 느껴질 때 기쁨은 매우 크다.


애정으로 스스로 행동하는 빠순이가 되고 싶었다.

이제는 대상이 추상적이라 나는 글을 썼다. 여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었다.

빠순이가 하던 어린 시절의 컴퓨터 놀이가 온라인 기획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글은 또다른 기회를 계속 만들어주었다.

다양한 사람과 내 애정의 대상을 설명하는 강의는 정말 최고의 기쁨이다.


그렇다. 난 그냥 여전히 빠순이처럼 살고있다.



덕질은  즐겁다. 항상 새롭고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난 끈기가 좋은 편이 아니다. 자주 질리고 산만하다.

하지만 내 애정은 질리지 않는다.

많은 것을 애정하기에 여러가지를 계속 돌려가며 애정을 보낸다. 하지만 한번 애정한 것은 내 인생에서 조금이나마 다른 의미가 된다.


덕질하는 삶은 행동하는 삶이다.

빠순이들은 애정으로 성장한다.

해외 연예인을 좋아하다가 외국어를 잘 하게 되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애정을 쉽게 쌓아가는 태도는 그리고 스스로 뭔가 애정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는 인생을 아름답게 해준다.


요 몇일째 <응답하라1988>을 하염없이 돌려보고있다. 어남류였는데 결말에 충격받고 다시는 안보려고했는데 류준열이 보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팬미팅도 찾아보고 브이앱도 다시 보고 리틀포레스트와 운빨로맨스도 다시 찾아봤다.


옆에서 씹덕이라며 낄낄대는 남편앞에서도 나는 살짝 기대가 된다. 이런 새로운 애정이 또 내 인생을 새롭게 채워줄 수 있을까?

항상 무언가를 애정하는 내 모습을 가장 리스펙트한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도 역시 나에게는 가장 큰 덕질의 대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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