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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속 기억에 남는 명언들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

by 도그냥

누구에게나 인생은 드라마다. 배경 음악이 없어도 어떤 때는 음악이 들리듯 신이 나고 어떤 때는 비까지도 일부러 내려주듯 슬픈 날도 있다.

나의 꽉 채워 8년이란 회사 생활동안 나에게도 무수히 많은 명장면이 있었다. 내가 잘해서 해낸 명장면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내 주변의 누군가의 명대사로 인해 크게 감동받거나 시각자체가 변했던 사건들도 있었다. 문득 비오는 이런 밤에 그런 대사들이 떠올라서 정리해볼까한다.




이종봉 팀장님의 3대 명대사

이종봉 팀장님은 내 회사 생활의 8할은 거의 팀장님으로 같이 보낸 분이다. 작은 팀에 있을 때는 거의 사수처럼 가르쳐주셨고 큰 팀에 있을 때는 정신적 멘토처럼 케어해주셨는데 아무래도 팀장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항상 최고의 팀장님이었다고 말하면 이건 거짓말이고 맞는 부분 맞지 않는 부분은 있지만, 누군가 날 '이종봉 키드'라고 불러도 난 아마 금방 '맞아요'라고 답할 것 같다.

사원은 사고 치라고 있는 건 맞는데
넌 그러면 안돼

한참 프로젝트에 버거워하던 사원시절 팀장님의 말이었다. 팀장님은 기억이 안나는 문장이라는데 난 이 문장에서 기획자의 아이덴티티를 뼈저리게 실감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기전에 솔직히 마음속에 조금은 사원인데 나한테 너무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일더미를 해야하는지 상황은 이해하지만 버거운 마음이었다.

텍스트로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저 말은 강압적이지도 고압적이지도 않았고 굉장히 타당하게 업무의 책임을 수긍시켰다. 왜냐면 업무시간이 끝나고 한시간이상 개발이슈에 대해 한탄을 늘어놓은 것을 함께 상의해주시다가 나온 말이었다.

기획자는 '무언가를 실현시키는 사람'이다. 빵꾸가 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프로답지 못한 태도다. 나는 사원이지매 기획자였기에 프로답게 행동해야한다고 느꼈다. 버거워도 그게 사고치고 나 몰라라해선 안되는 기획자의 무거움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잘 지시하려면
그보다 훨씬 잘 알고 있어야해

한 때 외주기획자가 상주한 상태에서 일을 해야했다. 나보다 기획 경력도 많고 나이도 많은 그들과 일하는 것은 상당히 버거웠다. 사실 일하다보면 개발자나 디자이너 등 협업하는 대상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는 정말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내가 연차가 많이 올라가서 덜하지만 사원때는 거의 그런 날들이었다.

이런 관계적인 부분으로 한참 힘들어할 때 그리고 그 뒤로 대리가 되고 책임이 되는 과정에서 팀장님에게 이 말을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들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싫어서 시스템을 배우려고 했다. 그런데 이 조언을 듣고 난 뒤에는 공부의 기준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알고 싶은 만큼이 아니라 최대한 닥치는대로 더 알려고 노력했다. 정책을 찾아서 외우고 모르는 것은 개발자에 묻고 현업의 입장을 자세히 묻고 닥치는 대로 상황과 내용을 수집하고 정리하려고 한 건 바로 이것때문이었다.
기획자로서 협업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하나라도 더 잘 아는 것이 득이 됐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개발만 이야기하면 난 비즈니스를 이야기하고 디자이너가 UI만 이야기하면 난 DB구조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것이 회사생활 속에서 증명되고 빛을 발할수록 이 조언이 계속 되뇌이게 됐다.

사실 이런 사고관은 팀장님이 몸소 장점으로 가지셨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서 '대한민국 이커머스의 역사'매거진을 정리하게 된 가장 큰 시발점도 미래 이커머스를 예측하기 위해 팀장님이 지시하신 부분이 컸다. 그 공부는 지금 여러가지로 굉장히 자산이 됐다.


가끔은 직장인이 되어야 될 때도 있어

회사의 전략과 기획자로서의 내 생각이 완전히 상반되서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던 날이었다. 팀장님이 날 설득하다 지쳐서 이 한마디를 던지셨다.
그런데 이 말은 묘하게 납득이 간다. 그 뒤로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졌다. 가끔은 기획자인 나와 직장인의 나 사이에서 조율을 하는 타이밍이 생겼다.

이것을 사회에의 타협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이해'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전략이란게 내가 정보가 닿지 않는 곳에서 정치적인 부분이나 여러가지 모순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점과 모두가 UX담당자나 IT일을 하는 사람만큼 디지털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에 가끔은 돌아서 가는 일도 있다는 걸 이해하는 시작점이었다.

이 말 덕분에 참을성이 더 많아졌다. 물론 여전히 화는 내지만. 뭔가 집어치울 정도는 아니라는 것.


후배 노혜민 대리의 명언

혜민 대리에게 나는 그냥 선배일 뿐이다. 사실 사적으로 그녀와 놀러다니거나 할 적으로 친분이 뛰어나게 좋다든가 아니면 매일 연락할 정도의 관계는 못된다.

하지만 나의 회사 생활에 가치를 더해준 사람을 찾으라면 단연코 그녀다. 그녀의 한마디가 결정적으로 나를 더 나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꿈꾸게 만들었다.


선배님이 가는 길이 후배들이 갈 길이에요
그니까 버텨주세요

책임 진급연차를 앞두고 난 정말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인간 관계나 프로젝트 무엇하나 즐겁지도 않았다. 우연히 그녀와 차를 마셨는데 이 말은 계속 가슴에 남았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 기획부서는 대부분 경력직 선배들만 있었다. 내 위에 한두명도 모두 퇴사해버린 뒤 공채출신 기획자는 내가 가장 선임이었다. 팀장님도 관리직급의 선임도 다들 다른 곳에서 성장해서 온 사람들이고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성장한 사람이 당시까지 책임직급까지 간 사람이 없었다.

저 말을 처음듣고 나는 뭔지 모를 책임감을 느꼈다. 오지랍인 것도 알고 내가 별 것 아닌 사람이란 것도 알지만 뭔가 앞길을 만드는 선배가 되고 싶어졌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커리어를 쌓는 것이 나의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나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에 신입사원 OJT 강좌를 만들어서 진행하고 브런치나 외부활동을 하는 이유중에는 그녀의 말의 힘도 여전히 작용한다. 계열사와 함께 하는 곳에서 더 목소리 높이는 이유도 그녀의 말이 떠올라서다. 우리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기획자도 충분히 인정 받게 하고 싶다. 선배로서 그런 길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밥이나 한끼 더 사주는게 더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그런 다정다감함이 약간 부족한 나라서 항상 마음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녀가 어딘가로 나보다 먼저 가버린다고해도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이 친구는 무조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갈 수밖에 없는 잘하는 기획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줬던 것 자체로 고마울 뿐이다.


임정선 수석님의 명언

기획자로서 마인드를 팀장님에게 배웠다면 대부분의 기획자 실무는 거의 수석님에게 배웠다. 사원때부터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거의 수석님을 따라다녔고 실제 업무를 하는 방식이나 산출물 작성 방식은 거의 수석님께 배웠다.

벌써 책임이지만 아직도 수석님처럼 꼼꼼하게 업무를 해내지는 못한다. 애초에 로직의 이해하는 것은 강해도 문서를 꼼꼼하게 하지는 못하던 편이라 많은 부분 수석님의 조언과 피드백으로 성장했다.

미준, 이 부분은 미준이 해봐

허술하고 정신없는 사원이었던 나에게 처음으로 일을 떼어주실 때 하셨던 말씀이었다. 두근거리고 설렜다.
다른 선배들은 기획된 산출물의 방식까지도 가이드라며 정해줘 버리거나 반복적인 문서 일부를 대신 작성하는 서브로만 쓰고 했는데 수석님의 방식은 달랐다. 기획할 수 있을만큼의 범위를 아예 나눠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이 얼마나 대단히 참을성이 있는 교육방식인지 놀랍다. 가져오는 기획안에 대해서는 항상 끝까지 듣고 논리적으로 토론을 해주셨다. 사실 그냥 지시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귀찮은 방법이었을 텐데 수석님은 언제나 조용히 친절하셨다. 때문에 어떤 기획을 해도 이런 저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서 준비할 수 있었다.

지금 외부에서 기획교육을 하면서 정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감하고 있다. 동일한 주제에서도 모든 사람의 생각과 기획안이 모두 다르게 나온다. 그걸 인정하고 존종해 주는 것은 수석님에게 일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방식인 것 같다.


미준, 요즘 좀 기획이 깊어진 것 같아

대리 말년차였나, 수석님께 기획안을 이리저리 설명 드리는데 이 말을 들었다. 기뻤다.

기획을 하면서 자신의 수준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획 직무의 특성상 잘하고 있는지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렇게 평소 믿고 의지하는 상사에게 듣는 작은 칭찬은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도 기억에 확 남는다.

'잘 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나를 춤추게 한다.




이렇게 지인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실명으로 기록한 것이 누가 될까 겁이 난다. 하지만 내 삶에서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기록해 보면서 '나'를 만들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이라도 동일한 무게로 와닿는건 아니다. 더 좋은 칭찬도 더 의미깊던 충고도 흘러보낸 것도 많다.
그저 내가 필요한 순간에 영화처럼 슬로모션처럼 남아있는 이 명언의 순간들이 아마도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나에게 유효할 것 같다. 마치 내가 누군지에 대한 자기고백같은 글이다. 나도 앞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조심히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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