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서비스 나오지 않는다
패스트캠퍼스에서 서비스기획 스쿨의 요약버전인 5일짜리 토요일 클래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름하여 ‘웹/앱 서비스 기획 유치원’. 스쿨이 직무 전환을 위해서 석달을 온전히 투자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라면, 이런 토요일 클래스는 직장인들이 짬을 내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을 듣고 수업에 나갔다. 기획 의도는 스쿨보다 더 입문 교육이었고 직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부터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의실의 풍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미 기획을 하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연차가 꽤 있는 개발자들.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연차도 훨씬 높은 사람들이 줄줄이 앉아있는 강의실을 예상하지는 못했었다.
“저는 서비스 기획이라고 해서 아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대한 부분을 기대했는데요.”
내용이 맘에 안들면 여차하면 환불할 것 같은 자기소개에 당황되긴하면서도. ‘서비스 기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흔한 혼동이긴 했다. 강사가 처음 목표와 다르게 온 수강생을 맞춰줄 필요는 없지만 모든 수강생의 경력과 기대치가 중구난방이라 수강생들에게 의견을 물어 난이도를 대폭 조정했다. 처음에는 서비스기획자가 하는 프로젝트 업무 실무만 설명하는 커리큘럼이었지만 프로덕트 생애주기 관리관점의 수업으로 바뀌었다. 나 역시 계속 공부하는 입장이기에 팀장님께 보고를 드리듯 조심스럽게 남은 4주를 이어갔다.
먼저 ‘서비스 또는 프로덕트’의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외의 강의나 저서에 비해 국내의 프로덕트의 개념은 보편적이진 않다. 외주 하청 위주로 발전된 시장에서 프로젝트는 곧 돈이었다. 시장분석과 진입전략, 그리고 하고 싶은 형태는 곧 기능개발에 위한 ‘공수’라고 부르는 기간과 인력투입 기준으로 환원되어왔다.
프로덕트는 하나의 이용자가 하나의 목표(또는 TASK)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의 묶음이다. 이런 점에서 프로덕트를 서비스라고 치환해서 불러도 무방해보인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연히 서비스란 점원이나 종업원이 무언가를 해주는 대면업무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물론 대가없이 제공해주는 편의를 위해 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 기획에서 말하는 서비스란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용자에게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덕트 전체를 총칭한다. (개발자에게 서비스는 또 다른 의미지만.)
이런 여러 서비스 또는 프로덕트가 모여서 하나의 비즈니스가 작동하도록 만든다. 사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앱APP’은 하나의 프로덕트가 아닐 수도 있다. 네이버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이러한 프로덕트 혹은 서비스의 생애주기를 관리한다. 프로덕트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서비스 또는 프로덕트의 생애주기(PLC, product life cycle)라고 하면 보통 도입-성장-성숙-쇠퇴의 4가지 단계가 있다. 어떤 프로덕트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익의 관점에서라면 적절한 시장 대응진입을 통해 최대한 성장을 빠르게 시키고 성숙기간을 늘려서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런데 수강생들에게서 나오는 질문은 대부분 어떻게 새로운 서비스를 떠올릴 것이냐에 집중되고는 한다. 국내의 온라인 시장에서 일하다보면 모든 회사가 프로덕트의 앞의 2단계, 도입과 성장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크고 특히 도입에 대한 부분만 8할은 신경쓰는 것 같다. ‘국내 최초’라는 단어는 홍보에서 엄청난 자존심이 걸린 문제고, 게다가 남들 가진 것을 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각 회사는 직원들에게 신기술 리스트나 메가트렌드를 들여다보며 숙제처럼 새로운 차별화 서비스를 내놓으라고 한다. 많은 대기업들은 젊은 신입사원들을 모아놓고 외부 강의나 교육을 몇일 진행하고 몇일 내에 그럴듯한 신규 사업을 내놓으라고 흰종이에 검은 글씨로 아이디어를 써놓으라고 종용한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자고 일어나서 떠오른 구체성이 전혀 없는 아이디어를 UX와 개발팀으로 보낸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치중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서비스 기획을 훌륭한 아이디어쯤으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진짜 뛰어난 서비스 아이디어만 있으면 신규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성공적은 프로덕트는 천재에게서만 나올까?
나는 기획자를 정의하면서 전략기획과 서비스 기획이 다르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전략 기획자가 비즈니스의 제안 자체에 집중한다면 서비스 기획자는 구현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의 전문영역은 좀 다르다.
전략기획은 흔히 경영전략이론에 이론을 둔다. 4P나 3C라든가 STP전략, SWOT분석 등 기존에 만들어진 시장과 이미 기업이 발을 들여놓은 시장을 기준으로 자사의 역량을 사용하여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략기획자들은 사업적 업계동향과 투자관계에 밝고 적절한 비용과 수익의 기준을 계산하여 BEP를 넘어 수익을 만들 방향성, 즉 기초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공식을 제시한다.
서비스 기획자의 업무는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시스템적으로 설계하고 구현되도록 하는 사람이다. 큰 방향의 전략을 쪼개서 여러개의 프로덕트 단위로 나누고 각각의 프로덕트를 실행할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를 설정한다. 즉, 이번에는 말과 공식으로 되어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정말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둘의 업무는 서순이 있기 때문에 전혀 겹치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서비스 기획의 구현이 고려되지 않은 전략설정은 전략을 실행하는 단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만약 ‘기존보다 영타겟을 대상으로 UX가 편리한 온라인뱅킹’이라는 전략이 도출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영타겟의 정의와 분석을 전략기획에서 진행하고 영타겟에게 현재 잘 먹히는 벤치마킹 대상도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영타겟에게 편리한 UX를 시스템적으로 설계하고 만드는 방법은 전략기획이 제시하기 어렵다. 어떤 UI가 개선되어야하고 기술은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는지는 완전 다른 분야기 때문이다. 또한 전략자체가 기술을 거론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AI를 이용하여 최적화된 큐레이션을 제공한다’라는 전략이 있다면 구현의 문제가 굉장히 많이 남는다. 결국 전략에서 구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시차가 발생하게 된다. 멋진 설명에 비해 막상 써보면 다소 초라하고 어설픈 용두사미식 서비스들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차를 최소화하기위해 구현될 형태를 전략을 설정할 때부터 디자인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른바 ‘디자인 씽킹’ 혹은 ‘UCD(User Centered Design)이다. 전략이 아니라 고객의 불편한 점이나 평소 느끼지 못한 불편사항인 서비스적 실패지점(Pain Point)을 발견해내는 것에서 출발하여 프로세스적으로 어떻게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계해내는 방법론이다. 특히 산출물 자체를 프로토타입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아 단 기간에 그럴듯한 서비스 아이디어를 뽑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또한 기존 자사 역량을 바탕으로 한 전략방식보다 서비스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어내야하는지 더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구글벤쳐스의 서비스 기획방식으로 유명한 ‘스프린트’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구성된다. 개선 또는 아예 새롭게 만들어내려는 서비스를 5일 안에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서 인사이트를 얻는 방식이다.
물론 전략 기획자의 영역은 서비스 기획자가 아닌 전략 기획자에게 전문성이 있다. 때문에 구글 스프린트 방식에서도 처음 구성을 조직할 때부터 자사와 시장에 대한 분야별 전문가와 의사결정이 가능한 사람으로 구성하기를 추천한다. 결국 새로운 서비스가 제대로 나오기 위해서는 시장과 수익전략, 그리고 그것을 서비스로 만들어내기 위한 시스템적 프로세스가 모두 기획되어야한다.
하나의 비즈니스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분석을 통해 만들어낸 전략과 수익구조, 그리고 이것이 시스템적으로 반영된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 이런 개념을 모아놓은 개념이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다.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은 ‘비즈니스 모델 캔바스’라고도 불리는 9블럭모델이다. 이 모델은 기업이 파트너와 내부의 역량을 활용하여 서비스 고객에게 어떤 채널과 방법으로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정리하고 이 과정에 필요한 비용과 수익을 정리한다. 정말 많이 고민하고 잘 활용한다면 활용도가 높은 프레임이지만 단순하게 활용한다면 그저 전략기획안에 1쪽을 차지하는 것에서 끝이 난다.
과거에는 모든 서비스가 파이프라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기업은 단방향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주어진 서비스를 이용하기만 했다. 서비스가 좋거나 7마케팅비용을 많이 투자하면 유입 트래픽은 올라갔다. 하지만 웹2.0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상의 모든 서비스는 연결되었고 SNS의 출현은 서비스의 성장공식을 바꿨다. 마치 오프라인의 입소문처럼 SNS를 통해 재생산되는 정보를 ‘네트워크 효과’라고하며 서비스의 성장이 가속화 되기도 하고 아예 사장되기도 한다. 때문에 요즘의 온라인 서비스는 아예 이 외부 네트워크 순환은 고려하여 계속 서비스 사용 및 유입 순환을 시키는 구조를 고려하여 설계하고 있다.
대표적인 순환구조의 예시는 제프베조스가 그린 ‘아마존의 플라잉휠’이다. 냅킨스케치로 유명한 이 그림은 비즈니스모델이 작용하면서 서비스가 성장하는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양면플랫폼 서비스일 경우 이런 구조는 더욱 중요해진다. 대표적인 플랫폼 서비스인 우버의 선순환도를 보면 서비스의 성장을 고려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읽어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성장까지 고려한 서비스를 설계한다면 이러한 생태계 구성에 대한 디테일한 전략이 들어간 시스템을 기획해야한다. 여기서 데이터의 축적과 활용의 방식은 중요해진다.
하지만 모든 선순환이 단번에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한 가설과 고객의 움직임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이럴 때 성장과 서비스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가설과 다른 부분은 빠르게 찾아내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변경해서 대응해야하는데 이를 ‘피봇팅’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LeanUX가 보편화되면서 더 대중화되었다. 빠르게 구현가능한 핵심적인 부분만 프로덕트(MVP, Most viable Product)로 구현하여 가설을 검증하고 시장의 진짜 상황에 맞춰서 개선해 나간다. 빠른 문화적 변화속에서 과거처럼 5년~10년 뒤를 예측하여 심사숙고한 비즈니스모델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국 빠른 실행과 성장을 고려한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바를 프로세스로 구성하여 시스템의 형태로 기획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비즈니스모델만 잘 녹여낼 수 있으면 신규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걸까?
유휴차량 자원을 이용해 공급자와 수요자의 시장을 만들어서 매칭시키는 우버모델은 세계적으로 성공이 검증된 모델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이런 모델이 없다. 소카와 그린카와 같은 시간단위 차량 임대서비스가 있지만 이는 개인 공급자가 아니라 모든 차량의 공급자는 기업이다. 이런 차이는 국내 시장의 법적인 규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개인이 차량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이 불법이다. 그 유명한 우버조차도 우리나라에서 결국 손을 뗐던 이유다. 누가 생각해내지 못했기때문에 서비스가 없는 것이 아니다.
사업단위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내의 온라인 사업은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영향을 받고 결제서비스가 있다면 전자상거래법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에도 영향을 받는다. 전략과 아이디어는 화면 UI 기획을 하는 시점에도 법적인 여러가지 검토사항을 반영해야한다. 어떤 시장과 사업이냐에 따라서 더 많은 규제와 익혀야하는 규정들이 많다. 국내의 법은 해야할 것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하면 안되는 것을 정해놓은 Opt-OUT방식의 법제이고 특히나 정보데이터 관련해서는 전세계의 최고 수준의 규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이런한 것을 구현하는 시점에서 자세히 검토하고 시스템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똑같은 아이디어도 디지털세상의 법칙에 맞춰서 구현되기 위한 법칙이 있다. 서비스 기획자는 이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세상에 없던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프로덕트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까지 설명을 하고나니 한 수강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모든 서비스 기획자들이 저렇게 알고 일을 하나요?”
“그렇진 않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경영학과 시장경제를 익혀야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듯이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안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이디어보다는 고민의 깊이가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서비스를 성장시키기 위해 디지털 환경을 이해하고 노력한다면 분명 같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비스를 성공으로 이끈 사람들은 서비스기획자라는 직무명이 없이도 분명 내가 설명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지 않았을까. 이렇게 떠드는 나 스스로는 서비스를 만들면서 얼마나 오랜 시간공부하고 깊게 고민해왔는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여튼 이건 분명하다.
맨땅에 좋은 서비스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손쉽게 하는 왕도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