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서비스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약간 머쓱한듯 답변이었다. 이제 입사한지 얼마되지않은 신입 주니어 기획자에게 요즘 뭐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과제처럼 특정한 서비스들에 대한 회사변 서비스를 모아서 벤치마킹을 한다고 말한다.
벤치마킹한 자료를 달라고 해보면 파워포인트든 엑셀이든 예쁘게 캡쳐하고 중요포인트도 정리해서 보여준다. 선배가 보여달라고 했으니 누가 봐도 가로세로 그리드 딱딱 맞춰서 예쁘게 정리하느라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쁘고 사랑스럽지만 물어보게 된다.
어떤 기준으로 정리한거에요?
좋다고 생각한 것들을 위주로 정리했어요.
이 벤치마킹은 왜 하라고 했을까?
바로 자사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럼 벤치마킹의 산출물은 무엇을까?
바로 자사 서비스의 개선 기획에 도움이 되어야한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다.
좋다고 생각한 것들의 조합은
최고로 좋은 서비스일까?
UX서적 중에서 고전중에 고전인 <사용자 경험에 미쳐라!>에서는 리모콘의 예시가 나온다. 최초의 리모콘은 아주 단순했다. 볼륨, 채널, 전원 정도가 있었다. 그러다가 직접 번호를 누르게 버튼이 추가되고, 즐겨찾기가 생기고, '이전'버튼이 생기고 점점 좋다는 기능들이 추가된다. 네모 안에 버튼이란 기능이 너무 빼곡하게 들이차면 사람들은 버튼의 위치를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버튼에는 중요도에 따라 강약이 조절되고 플립을 만들어 비교적 덜 중요한 버튼들을 숨기게 된다.
우리의 벤치마킹이 눈에 보이는 좋은 기능들을 수집하는 일이 되면 리모콘의 갯수처럼 기능의 수는 늘어난다. 나중에 다시 MVP를 따지며 기능을 자르려고 해도 어쩐지 아쉬움이 들어 플립 속에 감추어서라도 그 기능을 냅두고 싶어진다. 그 기능까지 완벽히 소화하는 것에 감당이 안될 지경인데 말이다.
벤치마킹의 목적을 고려하였을 때 가장 최악의 벤치마킹은 3가지 특징을 가진다.
유사한 서비스를 리스트업한다.
고객입장에서 기능의 좋은 점과 나쁜 점만 비교한다.
현재 자사 서비스와 기능적으로만 비교한다.
이러한 벤치마킹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기능더하기'의 시작이다. 조사한 시스템이 5개면 5가지 장점을 더한다. 결국 최고의 기능의 조합은 가장 복잡한 아류작일 뿐이다.
벤치마킹은 쓸모 없는가?
이러한 실수들은 벤치마킹을 무시하는 경향을 낳는다. 하지만 하늘아래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란 없다. 여러분이 선택한 UI도 분명 어디선가 보았기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다.
벤치마킹이란 원래 복제나 모방과는 다른 개념이다. 타사의 혁신 기법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자사에 적합한 형태로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벤치마킹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고민할 때 기능이란 목적이 아닌 수단인 것을 생각해본다면 서비스기획을 위한 벤치마킹은 수단을 선택하게 한 목적을 찾는 것이 함께 진행되어야한다.
서비스기획의 핵심은 기능 구현이 아니다.
서비스기획자는 3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
첫째, 서비스 프로세스를 통해 서비스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서비스가 달성하고자 하는 과업의 기반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작동하도록 해야한다.
둘째,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설계해야한다.
셋째, 서비스에서 발생되는 데이터를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피봇팅할 수 있어야한다.
다른 서비스를 볼 때 이 3가지를 추론해낼 수 있다면, 벤치마킹 대상의 서비스의 비즈니스모델, 데이터구조, 선순환구조와 비교해 내가 취해야한 기능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기준이라면 꼭 완전히 동일한 서비스를 늘어놓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어진다.
예를들어 커머스는 커머스하고만 비교하고 웹툰앱은 웬툰앱하고만 비교할 필요가 없다. 넷플릭스와 퍼블리는 서비스 프로세스(정기결제후 무제한 이용)가 같고, 유튜브와 스푼은 선순환구조 (구독을 기반)에서 서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심한 순간에 돌아다니다가 광고를 만나는 인스타그램 광고와 유튜브광고도 방식은 다르지만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반면에 비슷한 기술(가상 메이크업) 기반의 서비스라도 B612와 유캠메이크업은 단순 셀카와 화장품유통이라는 점에서 큰 맥락적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아예 카테고리 자체가 달라도 카카오가 가진 멜론과 카카오톡의 관계와 V앱과 제페토의 관계는 인프라적인 차원에서 비교가 가능해진다. 거대 협력계열사로서 말이다.
즉, 벤치마킹은 키워드정도만 가지고 시작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사 서비스에 대한 가설과 규격을 바탕으로 비슷한 논리구조를 가진 다른 서비스를 통해 혁신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어야한다.
벤치마킹을 할 때 꼭 체크해야할 4가지 차원
비슷한 논리구조의 여러가지 서비스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뽑아냈다면 이제는 각 서비스에 대해서 조사를 해야한다. 이때 4가지 차원에서 검토를 해야한다.
첫째 비즈니스를 분석하라.
수익구조와 비즈니스적 목표, 타겟, 전략을 알아야한다. 서비스 이해의 핵심 배경지식이 된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CEO나 창업자의 인터뷰를 보는 것이다. 서비스의 시발점과 지향점을 모두 알 수 있고 동시에 봐야할 포인트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듣기 서비스임에도 네이버 오디오클럽과 스푼은 타겟도 방향상도 다르다.
둘째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데이터를 추론하자.
온라인 서비스는 서비스 프로세스에 맞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앞에서 파악한 비전을 배경으로 용도를 추론해낼 수 있다. 선순환구조까지도 파악해볼 수 있는 접근방법이다.
셋째, UI에서 서비스 가설을 찾아내자.
비슷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네이티브앱으로 개발하고 누군가는 웹으로 개발한다. 전자는 변화가 거의 없는 고정적인 서비스고 후자는 역동적인 변화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웹툰앱과 넷플릭스에서 다음화로 넘어가는 방식은 몰아보기를 유도하는 넷플릭스와 미리보기를 유도하는 웹툰이 분명 다를 수 있다. 이런 UI의 차이는 사용자에 대한 서비스 가설과 운영계획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서비스운영에서 인력과 비용에 대해 추정하자.
전체 서비스의 프로세스를 사용자 입장에서 보고나면, 해당 서비스에 숨겨진 운영 프로세스와 이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한다. 예를 들어, 세탁특공대와 같은 세탁대행 앱에서 주문후 세탁물 수거의 편의성만 볼 것이 아니라 세탁물을 수거 시키기 위한 수거지시와 수거절차, 그리고,검수등록을 통해 세탁비용 고지방식 등 뒷단 프로세스와 이에서 발생될 유류비와 인건비를 생각할 수 있어야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벤치마킹의 시작은 자사의 비즈니스모델과 데이터구조, 상황, 서비스의 방향성을 정한 뒤 적합한 대상을 논리적인 동질성을 기반으로 찾아내야한다.
이런 식으로 선정한 서비스를 단편적 고객의 시작이 아닌 4가지 차원에서 비교해보고 나면, 이제 정말 구조적으로 따라가고 싶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 오히려 기존에 쓰던 서비스에서도 새로운 모습과 숨은 기획의도를 발견해낼 수도 있다.
벤치마킹을 한다고 아류작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준있는 벤치마킹은 유사한 서비스임에도 혁신작품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벤치마킹은 아는만큼 보인다.
아는 게 없는 인턴이 좋아보이는 것들을 모은 걸로 서비스를 기획하지 말자.
인턴에게 동종서비스를 많이 보고 많이 쓰게 하는 것은 '이용후기'과제가 되어야지 '벤치마킹'과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선배가 수준있게 분석한 벤치마킹 자료를 주고 인턴의 시야를 넓혀주면 인턴이 알아서 더 많이 보고 성장하려고 애쓰지 않을까.
요즘 신입은 많이 똑똑하다(고 믿는다)